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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교부들의 신앙: 참회 - 참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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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22 ㅣ No.577

[교부들의 신앙 – 참회] 참회의 길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앞두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를 단식하고 기도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이 경건한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참회’입니다.

 

 

참회의 첫 번째 길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걸어온 길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겨라”(에제 36,32).

 

하느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참회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참회의 구체적인 길이 무엇인지 전하며 그 첫 번째 길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대는 죄인입니까? 낙담하지 말고 참회를 앞당기기 위해 교회로 오십시오. 죄를 지었습니까? 그러면 하느님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 죄를 없애기 위해 죄를 인정하십시오. … 죄를 곰곰이 생각하고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참회에 관한 설교」, ‘둘째 설교’, 2,1).

 

참회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첫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뒤에도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녀였던 카인도 죄를 짓고 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죄를 지은 이후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참회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크나큰 죄악에도 그의 후손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성인이 전하는 참회의 두 번째 길은 ‘죄를 슬퍼하는 것’입니다.

 

“참회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죄를 슬퍼하는 길입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슬퍼하십시오. 그러면 죄가 지워집니다”(‘둘째 설교’, 3,10).

 

지은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 또한 참회입니다. 죄를 짓고서도 슬퍼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같은 죄를 쉽게 반복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곧바로 죄를 지은 자신의 나약함에 슬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하게 됩니다.

 

 

겸손, 자선 그리고 기도

 

참회의 세 번째 길은 ‘겸손’입니다. 성인은 성경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이야기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사이는 의로움을 송두리째 잃고 성전에서 내려왔지만, 세리는 의로움을 얻어 내려왔습니다. … 바리사이는 자신의 의로운 행동을 온전히 망가뜨렸고, 세리는 겸손한 말로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사실, 바리사이의 말은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겸손은 훌륭한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리의 말도 겸손은 아니었으나,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죄인이었습니다”(‘둘째 설교’, 4,25).

 

참회를 통하여 자신이 비천한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회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느님께 바친 기도를 보면 온통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랑밖에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세리는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하느님의 자비만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회하는 세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성인이 권고하는 참회의 네 번째 길은 ‘자선’입니다.

 

“자선은 위대한 것입니다. … 성경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너의 기도와 너의 자선이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 좋게 기억되고 있다’(사도 10,4). 여기서 ‘하느님 앞’이란, 여러분이 온갖 죄를 지었다 해도 자선을 변호인으로 두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 자선은 죄로 지은 빚을 갚습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주님께서 몸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니고 있든지 간에, 여러분이 행하는 자선은 그 죄를 모두 없애 줍니다”(‘셋째 설교’, 1,6).

 

자신의 비천함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자신보다 더 비천한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성인은 자선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없애 준다고 말합니다. 자선을 행하는 대상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도와 드림으로써 우리가 주님께 지은 죄를 갚아 드리는 것입니다.

 

성인은 자선의 또 다른 길로 ‘기도’가 있음을 알립니다.

 

“하루의 모든 순간에 기도하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청하는 일에서 용기를 잃거나 게을러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굳건히 버티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며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계속 기도하며 감사를 드리십시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응답받을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셋째 설교’, 4,15).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뉘우치며 자신의 비천함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리게 됩니다. 기도가 아니면 또다시 죄의 구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 안에는 참회가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야말로 참회의 외적인 표지가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지상에서만 힘을 지니는 참회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태하고 거만한 사람은 자기 영혼을 위해서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고, 참회를 위한 분명한 기간이 길게 주어져도 게을러서 하느님과 화해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사람은 큰 열정으로 자신의 참회를 드러내며 오랜 기간에 걸친 잘못들을 한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다섯째 설교’, 2,5).

 

성인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참회를 위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과 화해하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하고 거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사순 시기에 큰 열정으로 자신의 참회를 드러내어 오랜 기간에 걸친 자신의 잘못을 한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참으로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인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참회라는 치료법은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참회는 지상에서만 힘을 지닙니다. 저승에서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주님을 찾읍시다. 훗날 지옥의 끝없는 벌에서 구원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하늘 나라에 합당할 수 있도록 선한 일을 합시다”(‘아홉째 설교’, 7).

 

* 장재명 파트리치오 - 부산교구 신부로 울산 우정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교부학과 교부 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장재명 파트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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