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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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생활 속의 교회법50: 전화로 고해성사를 볼 수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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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8 ㅣ No.412

생활 속의 교회법 (50) 전화로 고해성사를 볼 수는 없나요?

 

 

‘전화로 고해성사를 볼 수는 없나요?’ 혹은 ‘TV를 통해 평화방송의 주일미사 영상을 시청하면서 함께 기도했는데, 주일미사에 참례한 것으로 해줄 수 없나요?’ 하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화나 방송매체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고해성사나 성체성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흔히 전화를 통한 고해성사의 무효성을 주장할 때 ‘개별적인 온전한 고백과 사죄가 자기의 중죄를 자각하는 신자가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정상적 방식을 이룬다.’는 교회법 제960조의 규정을 제시하는데, 이 규정에서 ‘개별적이고 온전한 고백과 사죄’라는 것은 ‘집단적이고 부분적인 고백과 사죄’에 반대되는 뜻이기 때문에(가톨릭교회교리서 1484항 참조) 법 규정이 명시적으로 전화를 통하여 ‘개별적이고 온전한 고백과 사죄’를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교회법 제964조 1항이 ‘성사적 고백을 듣는 본래의 장소는 성당이나 경당’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고해성사는 성당과 경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조의 제3항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고해서 밖에서는 고백을 듣지 말아야 한다.’라 밝히고 있어 정당한 이유만 있다면 고해소 밖에서도 고백을 들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고, 실제적으로 성당이나 경당이 아닌 곳에서 고해성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법이 ‘전화를 통한 고해성사의 무효’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성사는 그리스도의 일이고 신자와 사제를 통해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사는 신자와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In person) 대면할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여도, 우리가 전화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온전히 비인격적인 만남이라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성사는 인격적인 대면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으로 전화를 통한 고해성사의 무효성을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2년 2월 22일 교황청사회홍보평의회에서 발표한 「교회와 인터넷」 9항을 보면 ‘가상현실은 성체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실체적 현존, 다른 성사적 실재, 인정이 넘치는 인간 공동체의 공동 예배를 대신할 수 없다. 인터넷에는 성사가 없다.’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곧 성사집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실체적 현존’이 있어야 하며 가상현실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체적 현존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유효한 성사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헌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가상현실’의 범주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방송과 스카이프와 같은 인터넷 전화 등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현재 교회 안에서 전화를 통한 고해성사는 허용되지 않으며 방송을 통한 미사 시청을 성체성사에 참례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문제는 다른 성사들은 집전자가 성사를 받는 이에게 세례수를 붓거나 성유를 도유하거나 성체를 분배하거나 안수를 하는 행위를 해야만 하고 혼인성사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유효한 거행의 원칙(제1104조 1항, 제1108조)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나 가상현실을 통한 성사가 무효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지 않은 상태에서 고백자가 음성으로 죄를 고백하고 사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고백한 이의 죄를 사해주는 형식으로 유효하게 성립되는 고해성사에 있어서만큼은 앞으로 전화를 통한 성사집전의 유효성 문제를 신학적으로 그리고 교회법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성당에 가거나 사제 앞에 나서기가 귀찮고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침몰하고 있는 배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면서 사제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청하는 순간에 단지 전화를 통한 고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실체적으로 현존하지 않으셔서 고해성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제주 4면, 황태종 요셉 신부(제주교구 사법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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