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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7: 2세기 (2) 호교 교부 시대 영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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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9 ㅣ No.87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7) 2세기 ② 호교 교부 시대 영성 생활


그리스도교 방패 되어 이교도에 맞선 호교 교부

 

 

사도 시대와 사도 교부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전 세계를 향하여 거침없이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백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리스도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유다교뿐 아니라 이방 종교의 위협에도 시달려야 했고, 로마 제국 공권력의 박해에 직면했으며,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당대 지성인들의 몰이해를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 유스티누스는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야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고,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의 기도로 축성된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림은 디에리 붓츠 작 ‘최후의 만찬’.

 

 

외부 박해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를 적극적으로 알리던 사도 교부 시대와 달리 이제는 반대자들에게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방어 논리를 펼쳐야 하는 시대가 왔기에 이 당시 교부들은 교회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호교 교부로 불렸습니다. 호교 교부는 교회를 향한 외부 박해와 편견을 극복하여 교회를 지키고자 적극적으로 저술 활동을 펼쳤습니다.

 

먼저 호교 교부는 유다교뿐 아니라 여러 신을 믿는 이방 종교와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했습니다. 계시 종교이며 유일신 신앙인 그리스도교는 구약 시대를 포함하는 오래된 종교로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는 점을 알리려 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교를 향한 이방인들의 원색적인 비방과 비난에 귀 기울인 로마 제국 공권력이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했기에, 호교 교부는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로마 제국에게 그리스도교의 무해성을 주장하려 했습니다. 또한 호교 교부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원시적이며 비논리적이라고 폄하하는 당대 지성인들에게 그들이 수긍할 수 있는 철학적인 논리와 학문 방법론으로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대표적인 호교 교부로서 평신도 신학자였던 유스티누스(Iustinus, 100?~165)는 2세기 중반경에 몇몇 작품을 저술했습니다. 또한 익명의 저자가 2세기 중반이나 후반에 저술한 「디오그네투스에게(Ad Diognetum)」도 대표적인 호교 작품으로 꼽습니다. 그 외에, 생애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Athaeneus, ?~180경)와 생의 말엽에 로마 교회가 파문한 타티아누스(Tatianus, 120?~172?) 등이 호교 교부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행히도 대부분 작품이 유실되었고 몇몇 작품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소수의 호교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당시 위험하고 급박했던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보면서 호교 교부 시대에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 호교 교부로 꼽히는 평신도 신학자 유스티누스.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을 기반으로

 

유스티누스는 저서 「제1호교론」에서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을 기반으로 영적 발전을 도모하는 수덕 생활을 설명했습니다. 먼저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은 기존 신자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투신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단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특이 사항은 예비신자를 돕는 기존 신자도 함께 단식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영성 생활을 함께 실천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유스티누스, 「제1호교론」 61,2~3 참조)

 

다음으로 「제1호교론」에서 초대 교회 미사 전례의 발전 단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신영세자가 참석하는 성찬례에서 신자들은 먼저 공동으로 신자들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후 성찬례를 거행하고 예식에 참여하지 못한 신자에게 봉성체도 실시했습니다. 또한 주일 성찬례에는 전반부 말씀 전례에서 성경 말씀과 강론을 듣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예식은 똑같습니다. 유스티누스는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야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고,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의 기도로 축성된,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서 말씀의 묵상과 기도 생활이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유스티누스,「제1호교론」 65~67장 참조)

 

또한 유스티누스는 태초 이전에 로고스이셨던 육화하신 예수님이야말로 구세주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이 이미 모세가 쓴 글 안에 명백히 나타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구약성경은 유다교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예형론(豫型論, Typology)의 관점에서 신약의 그리스도론을 이해하기 위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산이라는 것입니다.(유스티누스,「제1호교론」 63,6~11 참조) 그리스도인은 신구약의 통일성 안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올바른 영성 생활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수덕 생활에서 신비 생활로

 

익명 저자의 작품 「디오그네투스에게」는 영성 생활이 상당히 발전하여 수덕 생활에서 신비 생활로 넘어가는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천상 기원이기에 다시 천상을 향하는 초월적인 영적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타향을 고향처럼 생각해야 하며, 고향을 타향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디오그네투스에게」 V,5 참조) 그리고 불사불멸의 존재인 인간 영혼은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 육신 안에 살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유한한 세상 안에 살면서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희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디오그네투스에게」 VI, 8 참조)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한계는 있지만, 썩어 없어질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초월적인 영성 생활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디오그네투스에게」에서 저자는 우리가 신비 생활을 위하여 하느님을 본받는 것을 하느님께서 바라신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하느님을 본받기 위해서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하는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이웃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곤경에 처했을 때에 돌보아주실 것이고, 이러한 하느님의 역할을 따라 사는 것이 하느님을 본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디오그네투스에게」 X,4~6 참조)

 

게다가 「디오그네투스에게」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순교와 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신으로 인한 헛된 죽음과 형벌을 두려워한다면, 아직 지상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비체험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디오그네투스에게」 X,7 참조)

 

호교 교부는 한시적인 시기에 제한적인 목적으로 활동하면서 작품마저 많이 남기지 못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호교 교부 시대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 여정의 발전에 따라서 수덕 생활에서 신비 생활로 넘어가는 단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향하는 초월적인 영성이어야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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