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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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원 세컨드 - 1초의 무게를 체감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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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8 ㅣ No.49

[영화칼럼] 영화 ‘원 세컨드’ - 2020년 감독 장이머우


1초의 무게를 체감하는 삶

 

 

지구의 자전 시간은 완벽하게 일정하지 않습니다. 지구의 내핵과 외핵, 바다, 대기 등의 움직임에 따라 항상 약간씩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편 공식적인 국제 시간 측정 방식에 사용되는 원자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불변합니다. 따라서 지구의 자전과 원자시계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그 차이를 보정해야 합니다. 국제지구자전좌표국(IERS)은 두 시간 체계 사이의 차이가 0.9초 이상이 되면 ‘윤초’를 적용해 인위적으로 시간 오차를 해소합니다. 윤초가 적용되는 해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을 감싸는 시간에 1초가 더해지거나 빼질 수 있습니다.

 

눈 한번 깜박할 새, 혹은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 정도인 1초는 너무나도 미약하여 금방 사라지고 말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1초의 무게를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적도를 기준으로 시속 1,660km인 지구 자전 속도의 결과로 나의 삶을 아우르는 시간이 1초씩 늘거나 줄 수 있다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거장 장예모 감독의 영화 <원 세컨드>는, 1초라는 시간에 담긴 무게를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비추어 그립니다. 1960년대 중국,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뉴스 영상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딸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주성(장역 분)은 두 달에 한 번씩 영화를 상영하는 외딴 마을의 영화관으로 향합니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마주한 필름 도둑 류가녀(류 하오춘 분) 사이의 인연, 영화 필름이 훼손되자 온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필름을 복구해내는 과정, 어렵사리 상영되는 영화를 감상하게 되자 행복에 겨워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영상 속에서 단 1초 동안 등장하는 딸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 등이 뿜어내는 극적인 분위기가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의 호흡을 가쁘게 합니다.

 

주님의 공현은 주님께서 몸소 인간의 시간 안에 종속되셨음을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시간의 창조자로서 시간을 초월한 주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몸소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성탄과 공현을 기념하며 주님께서 몸소 짊어지신 시간의 무게를 가늠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늠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시간을 우리가 더욱 무게감 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흐르는 1초의 시간을 체감해봅니다. 별다른 감흥 없이 사소하게 흘려보냈던 시간이 극중 영상 속 딸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장주성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훨씬 더 묵직하게 체감됩니다. 그렇게 영화 <원 세컨드>를 통해서 제 삶을 아우르는 1초의 시간을 지구 자전에 영향을 끼치는 자연현상의 무게처럼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유로 우리와 같이 시간의 무게를 체감하며 1초의 시간을 인식하셨을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됩니다.

 

[2023년 1월 8일(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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