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성가정 축일-가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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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8-12-26 ㅣ No.12

성 가 정 축 일 ( 가 해 )

 

          집회서 3,2-6.12-14  골로 3,12-21  마태 2,13-15.19-23

       

       1998. 12. 27.

 

오늘은 힘들고 어려웠던 1998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이며, 성탄 대축일 후에 맞는 주일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성가정을 기억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주일로 지내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다짐하며 우리 생활 모습을 돌이켜 봐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억누른다고 생각할 때,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가 돌아봐야 할 자세는 더욱 더 필요합니다.

 

가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이 가정(家庭)이라는 글자의 뜻인지, 사랑과 인내를 비롯한 인간의 관계인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루는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살지는 않습니다만, 성당이라는 단체도 커다란 가정으로 본다면, 여러분들이 작은 가정에서 느끼고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성당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울고 웃게 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우리의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중요성을 생각해보고 우리의 가정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태오가 전하는 오늘의 복음 말씀은 시초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한 가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 순탄치 않았던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갓 태어난 어린 예수의 가정을 가리켜 우리는 거룩한 가정, 성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마리아의 순종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요셉이,  또 한번 가장으로서 마리아와 아들을 데리고 불확실한 장소를 이집트를 향하여 아기가 태어났던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던 천사의 소식을 듣고 아무런 확증도 없는 빈손으로 말입니다.  보통의 인간으로서 천사에게 묻고 따지고 싶은 소리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그저 가슴에 품어놓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묵묵한 요셉을 우리는 오늘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도 하느님의 무수한 부르심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요셉처럼 움직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우리가 더 잘 압니다.

 

엊그제 어떤 신문에는 장인을 두드려 팬 사위가 구속됐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서 돌이 되었는데, 장인이 잔치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인이 축하해 주지 않으니 물론 기분이 나빴겠죠. 또한 좋은 의도이겠지만 자식을 잘되라고 혼내는 것을 부모가 그 자식을 위하여 선생님의 뺨을 갈긴 일도 발생합니다.  또 한가지, 숙제를 해 오지 않아서 꾸중하고 혼내던 선생님이 폭력교사로 몰려 112차가 출동하고 선생님이 학교에서 연행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물론 사건은 이렇게 저렇게 마무리 되겠지만, 그런 소식을 듣다보면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려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말이 좋아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참 사랑인지, 자신만을 위한 사랑인지, 다른 사람도 생각한 사랑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요셉이라고 왜 후회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무척이나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기에 복음사가는 요셉의 그런 고민과 갈등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올바른 가정인가?  어떤 가정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가정이겠는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 집회서에는 자녀가 부모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내면서 부모의 역할을 해 보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거쳐간다고해서 누구나 다 완벽한 역할을 소화해내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람에 따라서, 그가 하는 정성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3년간의 학업을 거친 사람이 같은 시간 안에 같은 내용의 시험지를 받아들지만, 그가 이루어내는 결과는 달라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훗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려고 지금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앞서 했던 일들에 대한 결과이지,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의 뜻을 따르며 살려는 신앙인을 가리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불릴 수는 있어도 누구나 다 합당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만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슬퍼하지 않을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보시니 참 좋았다'고 했던 세상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않는지 그 모습도 뒤돌아 봐야 합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단순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다른 가정을 기억하는 날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 그 가정을 닮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는 가정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가정은 가족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받지 않고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올해의 마지막 주일미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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