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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모든 것이 제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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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9 ㅣ No.263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모든 것이 제대를 향하여

 

 

하느님의 집을 지을 때 대부분 어떤 모양, 어떤 크기로 지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제대를 어떻게 만들지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성당 건물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제대를 만들려고 하면 제대로 된 성당을 짓기 어렵다.

 

제대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이 초대되는 주님의 식탁(Mensa Domini)이다. 제대는 성당 안에서 가장 거룩한 물체이며, 일치와 존경과 기도와 예배의 초점이다. 성당의 안팎에 있는 어떤 요소도 제대만큼 주의 깊게 지어질 수는 없다.

 

설교대인 강대상이나 신자가 앉는 자리가 훨씬 중요한 개신교 교회당에는 제대가 없다. 희생 제사가 없으니 제대가 있을 리 없다. 성찬상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앞에 영어로 “DO THIS IN REMEMBRANCE OFME(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적어놓고는 단순히 이를 기념할 따름이다.

 

성당에서는 제대로부터 주변의 영역이 퍼져나오고 공간이 자라난다. 제대는 벽에서 떨어져서 사제가 그 주위를 돌 수 있고 회중을 마주볼 수 있어야 하며, 모든 회중이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의 거룩함은 제대의 주변에 전해지고 제대는 회중을 끌어당긴다. 제대 주변이란 제단(sanctuary)의 바닥, 벽, 천장을 말한다. 제단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와 같은 곳이며, 교회의 몸체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희생의 제단을 위해 지어진 자리다.

 

 

제대는 가장 거룩한 물체

 

제단은 높게 만들고, ‘특별한 구조나 장식으로’ 성당의 다른 부분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당의 끝부분을 반원이나 정사각형, 팔각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제단을 두어 회중의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또한 제단 앞쪽에 장대한 아치 모양의 구조물을 짓고 경계를 지었다. 정교회에서는 이코노스타시스로 이 장소를 명확히 나누어 거룩함을 강조했다.

 

성당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대가 작을 때는 제대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확대해 보이게 하려고 제대의 뒷벽을 돌이나 나무, 상아 등으로 만든 조각이나 회화로 만든 스크린 장식을 두거나, 벽에 직접 붙인다. 이를 영어로 ‘레레도스(reredos)’라고 한다. 벽에 붙이지 않고 선반 위에 올려 놓은 것을 프랑스에서는 ‘레타블(retable)’, 스페인이나 멕시코에서는 ‘레타블로(retablo)’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제단 뒷벽 장식의 이미지나 인물이 적을 때는 이를 ‘얼터피스(altarpiece)’라고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든 대성당(바실리카)에는 발다키노(baldacchino) 또는 시보리움(ciborium,닫집) 안에 제대를 두었다. 발다키노는 보통 네 개의 기둥 위에 작은 돔을 얹은 것인데, 본디는 천막처럼 덮는 모양이었다. 제단이 넓을 때는 효과가 있다. 시보리움이란 성합과 성작을 뜻하는 말이면서, 제대 위를 덮는 커다란 닫집 또는 닫집 모양의 덮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제대에 위엄을 주려는 것이지만, 기능적으로 성당의 천장이 높고 청소하기가 어려워서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먼지를 막는 등 제대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올리거나 내릴 수 있게 쇠줄을 천장에 매달기도 하는데, 대축일이나 성당 건물 밖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임시로 제대 위에 닫집을 치기도 한다.

 

제대는 성당 안에서 영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회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고정 제대는 하나의 자연석이어야 한다. 자체의 기초가 있어야 하고 특별히 성별된다. 그러나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품위 있고 단단한 다른 재료로 만들 수 있다. 4세기 이후에는 돌로 만든 제대가 쓰였으며, 6세기 이후에 제대는 돌로 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가능하다면 제대는 가장 좋은 재료로 품위 있고 아름답게 설계해야 하지만, 품질이 좋은 구리나 주철, 아름답게 깎은 나무로도 만들 수 있다.

 

 

일치와 존경과 기도와 예배의 초점

 

제대에서 가장 중요한 면은 수평의 평탄한 돌판인 제대석, 곧 ‘멘사(mensa)’다. 따라서 제대의 윗면은 돌로 만들어져야 한다. 제대석의 표면에는 중앙과 사각형의 모퉁이에 하나씩 예수 그리스도의 오상을 의미하는 다섯 개의 십자가가 새겨지거나 표현된다.

 

초기 교회에서는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관습이 있었고, 나중에는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교회를 짓고 제대를 세웠다. 그래서 16세기 말까지 교회는 제대, 특히 미사의 희생 제사를 위해 축성된 제대에 유해를 모시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였다.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는 성체성사가 그려진 성반, 570년 무렵, 미국 덤바튼 오크스 박물관.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는 성체성사가 그려진 성반’을 보면 두 번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같은 식탁에서 왼쪽으로는 빵을, 오른쪽으로는 포도주를 좌우 각각 여섯 명의 제자에게 골고루 나눠주신다. 모든 하느님 백성을 식탁에 초대한다는 뜻이다. 사도들 또한 나무로 만든 상에서 ‘빵을 나누는 예식’을 행하였다.

 

식탁이 강조될 때는 나무로 된 제대를 둔다. 다만 제대를 단순한 목제 탁자나 추상적인 금속 구조물로 만들면 위엄과 존경의 마음이 줄어들기 쉽다. 간결하고 추상적으로 만든 제대는 일반 식탁과도 구별되지 않을 우려가 있으므로 특히 조심하여야 한다.

 

성당 안에서 바닥에 고착되어 움직일 수 없도록 설치된 제대를 고정 제대라 하고, 옮길 수 있는 제대를 이동 제대라고 한다. 성당에는 가장 우월한 고정 제대 하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하나뿐인 교회의 성체성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당에는 고정 제대가, 그밖의 장소에는 고정 제대나 이동 제대가 적절하다. 이동 제대는 제대석이 아니어도 된다.

 

제단과 회중석을 나누는 난간을 제대 난간(altar rail, communion rail)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낮게 나무나 돌 또는 주철에 조각하였다.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는 이들에게는 제대 난간이 영성체 난간이다. 오늘날에는 제대 난간을 없애게 하고 있다. 그 대신 층을 달리하든지 특별한 구조나 장식으로 제단과 회중석은 구별되어야 한다.

 

제단의 바닥은 제대가 초점이 되도록 때로는 제대와 대비가 되는 유형이나 재료를 사용한다. 대리석을 사용하면 제대가 확장되는 느낌을 더해줄 수 있다. 이렇게 해야 할 정도로 제대는 마치 작은 조각배가 물결을 일으키며 뭍에 닿을 때까지 파문을 일으키듯이 성당의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바닥은 방향성과 분명한 경계가 지어져야 하며, 이 자리가 성당 안의 위계성이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성당 건축의 절정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다. 성당에서 모든 이는 제대를 향해 있고 모든 것이 제대를 위해 있다. 성당을 이루는 수많은 선과 덩어리(매스), 성미술 등은 모두 제대로부터 뻗어나오는 힘 안에 있어야 하고, 눈과 마음을 제대로 이끌어주어야 한다.

 

미사성제가 봉헌되는 성찬의 식탁인 제대는 성당 건축의 절정이다. 그래서 제대는 제단의 중앙에 놓여 있다. 그러면 어떤 성당이 이런 제대의 의미를 잘 나타내는 것일까? 제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은 지난날 고딕 양식의 대성당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스페인 도미니코수도회 신학대학 성당, 미켈 피삭(1952년), 사진: 김광현.

 

 

스페인 건축가 미겔 피삭이 설계한 도미니코수도회의 신학대학 성당(스페인 마드리드, 1952년) 안에는 작은 성당이 하나 더 있다. 정말 간결하고도 위엄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다. 제단은 네 단의 계단 위에 있으나 회중석과 같은 밝은 돌로 되어 있다. 분명한 경계를 두었으면서도 제단과 회중석이 일치를 이루고 있다. 제대의 뒷벽은 화려한 장식이 아닌 목재로 단순하고 과묵한 ‘레레도스’다. 똑같이 목재로 만든 회중석의 긴 의자와 제단의 벽면이 한 몸이 된다.

 

그러나 제대는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회중석 통로의 중심축과도 맞지 않는다. 왼쪽에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모두 스물네 칸 안에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왼쪽 아래 유다만이 식탁에서 얼굴을 돌리고 있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제단의 바닥과 벽을 환히 비추고, 이 때문에 제단의 왼쪽 공간은 훨씬 밝고 넓어 보인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성가족상이 제단의 벽면 왼쪽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였다.

 

왜 그랬을까? 제단에는 이런 구도가 표현되어 있다. 앉아서 제대를 바라보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대각선을 그리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성가족상으로, 다시 십자가와 제대로, 그리고 감실 속의 성체로, 다시 말씀을 봉독하는 독서대 바로 위로 이어진다. 왼쪽 창에서 오른쪽 감실에 이르며 물체는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곧 빛이신 하느님께서(스테인드글라스), ‘빛에서 나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어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몸을 취하시다가(성가족),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앞에(십자고상), 이제는 이 ‘제대’ 위에 오시어 성체로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제대), 날마다 우리를 찾아오시려고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바치고 계심(감실)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제대가 중심에서 비켜서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성당 건축인가!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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