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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마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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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31

[성미술 이야기] 마에스타

 

 

- 두초 디 부온인세냐의 「마돈나 루첼라이」, 450x292㎝, 1285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조토 디 본도네의 「마돈나 디 오니산티」, 325x204㎝, 1300~1303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옥좌에 앉으신 마리아’ 제단화

 

마에스타는 옥좌에 앉으신 마리아를 그린 큰 제단화를 일컫는다. 똑같이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렸더라도 작은 그림은 마에스타라고 부르지 않는다. 마에스타가 처음 탄생한 곳은 이탈리아의 도시 시에나에서였다.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려서 시에나는 도시를 마리아에게 바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부터 정치적 결속이나 화해를 기념해서 마에스타 제단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을 낳으신 자』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주님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라는 뜻에서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마리아의 지위가 확인되면서 화가들도 성모와 아기 예수가 함께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마리아의 전성시대는 아무래도 13세기이다. 이때는 마리아 송가가 성당마다 울려 퍼지고, 수많은 대성당들이 「노트르담」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노트르담은 마리아를 높여 부른 존칭이다. 이보다 한 발 앞서 신생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도미니코 수도회가 스스로 마리아의 기사로 자처하면서 마리아 공경에 불을 붙인 것도 한몫 했다.

 

특히 베네딕도 수도회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는 구약성서의 「아가」를 강론하면서 마리아를 어여쁜 레바논의 신부에 빗대는가 하면, 한 술 더 떠서 성서에 나오는 상징이란 상징은 죄다 들추어 마리아에게 갖다 붙였다. 그 바람에 불타는 떨기, 방주, 별, 꽃잎, 양모, 신혼의 방, 성문, 정원, 아침햇살, 야곱의 사다리 등이 모두 마리아의 덕목을 장식하는 수단이 되었다.

 

마리아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성모 제단화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성모가 지금까지의 초월적인 위엄을 벗어 던지고 어머니로서의 자연스런 모성을 찾게 된 것이다. 13세기에서 14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타난 이런 변화는 신기하게도 유럽에 마리아 신학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때부터 아기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입술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고, 때로는 훗날 예수의 수난을 예감하는 슬픈 빛이 어리기도 한다.

 

제단화의 마리아도 처음부터 아기 돌보는 일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수를 남의 아기 다루듯 품에 올려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차츰 익숙해지면서 끌어안는 자세가 자연스러워진다. 또 여느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는 것처럼 뺨을 다정하게 맞대거나, 주책없는 새댁처럼 남의 눈치 상관 않고 젖을 덥석 꺼내서 물리기도 한다. 아기 예수도 마리아의 얼굴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옹알이를 하거나, 실컷 젖을 빨고 나서 세상 없이 잠들기 일쑤다.

 

「마에스타」(Maesta)는 원래 장엄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장엄한 연주법을 「마에스토소」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술에서 「마에스타」는 「옥좌에 앉으신 마리아」의 제단화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금빛 배경이 눈부신 그림 한 복판에 옥좌가 자리잡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아기를 품에 안은 마리아가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마에스타는 어디까지나 경건의 전통과 재현의 관습을 소중하게 여기는 제단화에 속하지만, 성모자의 신성한 격식이 모자간의 인간적인 유대로 옮아가는 변화가 가장 잘 살펴 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두 그림 가운데 왼쪽은 두초, 오른쪽은 조토가 그린 마에스타 제단화이다. 둘 다 이탈리아 화가의 솜씨다. 제단화의 오각형 생김새하며, 그림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얼추 비슷하다. 마리아는 근사한 옥좌에 앉아서 아기를 보듬었는데, 왼쪽 무릎에 아기를 올려두고 두 손으로 다리와 옆구리를 붙들고 있는 자세가 똑같다. 두 그림에서 성모가 금술 달린 진청색 옷을 입고 있는 것, 그리고 아기가 오른손을 들고 축복하는 모습도 쌍둥이처럼 빼 닮았다. 어찌나 비슷한지 두초의 그림을 조토가 혹시 베끼지 않았을까 의심스럽다. 여기서 성모가 입은 겉옷의 진청색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울트라마린을 우려낸 것인데, 그 당시 안료 가격이 같은 무게의 은값보다 비싸서 성모 이외에 다른 성인들은 좀처럼 입어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기 예수의 오른손이 제단화의 중심에 놓인 것도 축복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신과 인간 사이에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화가의 작품에서 다른 점도 눈에 띈다. 두초가 그린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돌려 앉은 모습이다. 옥좌도 비스듬하게 보인다. 살짝 돌려 앉으면 몸의 굴곡이 노출되기 때문에 무척 우아한 느낌을 준다. 마리아는 계단 위에 올려둔 발과 두 무릎의 높낮이가 달라서 마치 벼랑에 기대앉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 조토는 성모자가 앉아 있는 옥좌를 대담한 정면 시점으로 그렸다. 마리아의 자세도 훨씬 묵직해 보인다. 두 발과 무릎이 가지런할 뿐 더러 엉덩이도 듬직하고 허리에도 제법 힘이 들어갔다. 그 동안 꽁꽁 여미었던 겉옷도 시원스레 풀어헤쳤다. 옷주름 아래 넉넉한 가슴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런 변화는 천사들도 마찬가지다. 두초의 천사들은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마치 금박 배경 위에다 가위로 오려붙인 장식처럼 보인다. 옥좌의 귀퉁이를 한 군데씩 붙잡고 있지만, 무엇을 시중하는지 알 수 없다. 허공에 떠서도 땅바닥에 앉은 자세를 취하는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조토의 천사들은 한군데 모여서 웅성대기는 하지만 모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뒤쪽의 천사가 앞쪽의 천사 때문에 얼굴이 가리기도 한다.

 

두초가 그린 마에스타가 재현의 상징성과 대상의 서사성을 전달하려고 했다면, 조토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관계를 포착하고 현실적인 공간을 설명하려고 했다. 조토가 공간을 발견한 것은 아주 작은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성스러운 사건이 우리와 함께 공간을 나누고 몸과 마음이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영역으로 옮겨오면서 미술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 진보의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한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22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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