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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16: 본당 사목과 시노달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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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8-30 ㅣ No.740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16) 본당 사목과 시노달리타스


적극적인 성찰과 나눔으로 공동체 앞에 놓인 장애물 극복해야

 

 

- 지난해 10월 29일 열린 의정부교구 평협 주최 ‘평신도 사도직과 시노달리타스’ 세미나 참석자들이 라운드 테이블 토론을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복음의 기쁨 28항)

 

대부분 신자에게, 신앙생활의 중심은 본당이고 본당이 곧 교회다. 선교, 전례, 양성, 만남, 봉사 등 교회의 거의 모든 중요한 활동을 다 포함하는 것이 본당 사목이다. 성직자가 평신도와 만나고 교회가 세상과 만나는 가장 주된 통로도 본당이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교회의 길과 하느님의 뜻을 찾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이라면, 그것이 가장 잘 실천되고 실현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곳은 본당일 것이다.

 

세계 시노드 사무국은 시노달리타스를 정의하고 설명하려고 크게 애쓰지 않았다. ‘함께 걷는 교회’의 체험을 나눔으로써 신자들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이미 살아오고 실천했던 시노달리타스를 기억해내고 서로 나누도록 이끌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찾도록 격려하였다. 그리고 이를 더 깊이 논의할 수 있도록 10가지의 핵심 주제를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말을 경청했다는 사실을 가장 감명 깊게 느꼈다고 말했다. 지금껏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내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초대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교구, 주교회의, 대륙 회의를 거쳐 보편교회 차원에서 논의되고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하지만 사무국에서 밝혔듯이 이 시노드에서 문헌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의 체험이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문헌을 기다리는 동시에 그 체험이 잊히고 식어버리기 전에 그것을 본당과 교구에서의 변화로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구에서는 본당 소그룹에서 논의한 내용을 취합하고 정리한 후에, 본당별, 지구별로 모은 논의 내용들을 공유했다. 어떤 본당에서는 그 본당의 논의 내용을 복도에 큰 글씨로 게시하기도 하고, 사목 계획에 반영하기도 했다. 교구 경청의 날을 통해, 주보를 통해, 각종 연수를 통해 그 내용을 다시 나누고 논의했다. 그런데도 시노달리타스가 본당 안에서 잘 이해되고 실현되기에 뭔가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사제들이 이 주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본당 안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두게 된다. 그러면 권위주의나 성직주의 등과 연관하여 사제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주제라고 느낄 수 있다. 신자들을 존중하고 그 의견에 경청하는 것은 사목자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이며, 부족하지만 사제들이 이미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또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물론 본당에서의 시노달리타스가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본당 공동체의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같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위해 성령이 바라시는 길을 함께 찾고 일하는 이상적인 지향을 사제들은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사제들은 바쁜 삶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교회 활동에 대한 적극성이 부족하고, 지식과 역량이 부족하고, 제대로 양성되지 못해서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고 함께 걸어가는 길은 험난하고 오래 걸리는 길이다. 사제도 평신도도 더 많은 것을 투자하고 더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본당을 책임지는 사제는 기존의 방법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이끌어가려고 한다. 혼자 지고 가는 것도 힘들지만, 새로운 길로 사람들을 이끌고 같이 가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다.

 

사제들이 본당에서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봉사자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장을 뽑을 때도 최소한의 일만 하면 된다고 달래면서 뽑는다. 그러니 어려운 길을 함께 가자고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당의 사명과 그 길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 본 일이 없다면, 그런 역할과 자리에 초대되어 본 적이 없고 수동적인 봉사만을 요청받는다면 교회와 복음을 위한 봉사의 열망이 불타오르기는 힘들지 않을까?

 

평신도들은 어떤가? 시노드에 참여한 체험이 본당의 변화에 대한 희망과 열의로 연결되고 있을까? 코로나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소그룹 나눔에 참여했고, 이를 위해 본당의 사제들도 많이 협조했다. 또한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기쁨과 희망을 느꼈다고 많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체험이 본당 안에서 무언가를 실천하거나 변화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교회가 경청해 주었음을 기뻐했지만, 거기서 보편 사제직과 공동 책임 등 더 깊은 주제로 연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봉사자도 자주 바뀐다.

 

그래서 대개 본당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사제가 해야 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신자들의 목소리와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평신도에게 기대하는 것은 부담이 되고,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평신도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해도 사제가 마련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자들 사이에서도 경청과 존중이 필요하고 교회의 사명에 대해 함께 공부하거나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들려고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주임 신부가 바뀌면 본당의 모든 것이 바뀐다고 불평하지만, 정작 신자들이 먼저 노력하고 준비할 것은 없을까?

 

사제나 평신도나 시노달리타스를 단번에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시노드의 체험이 그 시작이었다면, 뒤이어 더 깊고 넓은 성찰들이 주어지고 있고, 그것은 개인적인 성찰과 나눔을 통해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그 실현에 있어서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느끼는 벽과 장애물도 우리의 분명한 현실이다. 이것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하나씩 함께 극복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미 실천하고 노력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시노드의 여정과 그 이후에도 시노달리타스를 본당에서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가 지속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는 가능하면 각 본당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함께 참여하여 고민하지 않고 밖에서 주어진 방안으로는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23년 8월 27일,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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