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극ㅣ영화ㅣ예술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장발 루도비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19 ㅣ No.51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3) 장발 루도비코 (상)


열아홉 살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 그린 ‘신심 깊은 천재’ 장발

 

 

장발 화백이 그린 성 김대건 신부 성화 중 새롭게 발견된 ‘김대건 신부 초상화’.

 

 

장발(루도비코, 張勃, 1901~2001)이 그린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 한 점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 초상화는 장발이 용산신학교(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전신) 교장 기낭 신부 은경축(사제 수품 25주년)을 기념해 그린 것이다. 장발은 동경미술학교 유학 시절이던 열아홉 나이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 두 점을 그렸다. 한 점은 가톨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상’인데, 다른 한 점의 소재가 불분명했었다. 그 베일에 가려졌던 작품이 발견된 것이다. 어떻게 십 대에 ‘김대건 신부상’을 그리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김대건 신부상’은 갓 쓴 양반 복장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었고, 왼손에는 성경을 가슴에 품었다. 김 신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은 꼭 다문 채 정면을 향하고 있다. 표정은 조선 최초의 사제답게 경건하기만 하다. 이 작품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화이다.

 

 

시복식의 감동 성화에 담아

 

장발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형인 장면(요한 세례자)과 함께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조선 순교 복자 79위 시복식’에 참여했다. 이 행사는 장발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장발은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을 장식한 조선 복자 순교 성화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그 성화는 장발이 평생 성화를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성화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벽에 걸려 있는 ‘79위 복자화’이다. 그림의 배경은 성 베드로 대성전이다. 하늘에서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리고 두 천사가 79위의 영광을 노래한다. 가운데는 조선에서 순교한 두 명의 프랑스 신부와 조선교구장이었던 앵베르 주교가 서 있다. 그들을 가운데 두고 조선 순교자들이 모였다. 그림 양쪽 맨 앞에는 소년으로 옥사한 유대철 베드로와 참수당한 동정 자매 김효주 아녜스와 김효임 골룸바가 있다.

 

장발은 시복식에서 받은 감동을 어서 빨리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명동대성당의 제대 벽화 ‘14사도’를 제작했고,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그리고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화를 그렸다.

 

‘14사도’ 그림을 그릴 때 장발은 경주 석굴암을 둘러보고, 내벽의 원형구조와 본존불 둘레의 10대 제자상 입상 부조를 참작했다고 한다. ‘14사도’는 우리나라 불교와 가톨릭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 장발 작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절두산순교박물관 소장.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와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성화는 현재 절두산순교박물관에 있다.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자매를 기리는 성화이다. 자매는 관군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목이 잘려나가는 참수형을 받았다. 이 성화는 자매가 복자로 인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고, 자매는 서울 여의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화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매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다. 언니는 노랑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었고, 동생은 분홍 저고리에 청색 치마를 입었다. 자매가 각각 들고 있는 백합은 ‘순결’의 상징이며, 언니가 들고 있는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뜻하고, 동생이 들고 있는 칼은 ‘참수 순교’를 상징한다. 성화의 배경에는 산이 펼쳐졌고 강이 휘돌아 흐른다. 전형적인 조선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는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전신상으로 그린 성화다. 갓 쓴 조선 선비의 모습으로 오른손은 종려나무를 잡고, 왼손은 성경을 감싸 가슴까지 품어 올렸다.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는 엄숙한 표정이다. 조선의 파란 하늘이 열려 있고, 푸른 산이 저 멀리 보이며 푸른 강이 유유히 흐른다. 좌우대칭의 엄격한 분위기다. 장발은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여러 번 그렸다.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초상’을 그렸다. 또한, 복녀 김 골룸바와 김 아녜스를 소재로 성화도 여러 점 그렸다.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를 그렸고, 평양 서포성모회수녀원의 ‘복녀 김 골룸바와 아녜스 치명’을 그렸다. 또한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를 그렸다.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작품은 꽃이 가득한 길을 두 자매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천국에 있는 순교자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장발은 성화를 워낙 잘 그려서 여러 성당에서 성화 제작 의뢰를 받았다. 그때 그린 작품들이 평양교구 신의주성당 벽화 ‘성령 강림’과 비현성당 제단 벽화 ‘예수 성심상’, 가르멜수녀원 제단화 ‘예수 탄생 예고’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이다.

 

 

성미술전람회

 

장발은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을 창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들로 서울미술가회를 구성해 ‘성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전람회 개막식에는 당시 서울교구 노기남 주교를 비롯해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당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24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전시 작품으로는 장발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세중의 ‘복녀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장우성의 ‘성모자’ 남용우의 ‘성모칠고’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정환의 ‘성모영보’를 들 수 있다. ‘성미술전람회’로 우리나라에 가톨릭 미술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장발은 혜화동성당 설계를 비롯해서 부조 제작을 총지휘했다. 혜화동성당은 우리나라 건축가와 조각가 그리고 우리나라 자본에 의해 설립된 성당이다. 한국의 가톨릭 미술은 이렇게 장발에 의해 시작되고 꽃을 피워나갔다.

 

서울대교구 헤화동성당에서 장발(왼쪽에서 두 번째)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다

 

장발은 인천(당시 제물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3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지완(志完)이었으나 후에 개명했다. 호는 우석(雨石)이고, 가톨릭 세례명은 루도비코이다. 아버지는 인천 해관(현재의 세관)의 직원이었다. 장발은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개항지에서 살았기에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장발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최고의 신식 가정에서 자랐다. 이런 성장 환경은 장발의 신앙과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형인 장면 박사는 민주당 정부의 초대 내각 수반(현 국무총리)을 역임했다. 그의 셋째 아들이 장익 주교이다. 동생인 장극 박사는 항공공학의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다. 누이동생은 메리놀수녀회의 첫 동양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6ㆍ25 전쟁 때 평양에서 순교했다.

 

장발에게 깊은 영향을 준 외국 선교단체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그리고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를 들 수 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명동대성당을 신축했는데 장발은 성당 내부의 제단 둘레에 ‘14사도’를 제작했다. 장발의 성화 제작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로마 바티칸의 ‘조선 순교복자 79위 시복식’이 거행되도록 한 기관도 파리외방전교회였다.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는 성화 제작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장발에게 보이론(Beuron) 화파의 미술 양식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장발의 모든 성화에서는 보이론 화파의 특징인 절제와 균형의 미가 살아 있다. 메리놀외방선교회는 장발 가족 전체와 연관이 있다. 장면·장발 형제가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메리놀신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장면은 유학 후 메리놀외방선교회 평양교구에서 외국 신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누이동생은 신의주 메리놀 수녀회의 일원으로 평양 ‘성모수녀회’ 원장 수녀를 역임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15일, 백형찬(라이문도, 전 서울예대 교수)]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4) 장발 루도비코 (하)


최초의 성화 작가로 가톨릭 미술의 초석 놓은 장발 화백

 

 

- 한국 교회 최초의 성화 작가 장발 화백이 등장하며 한국 가톨릭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제대 뒤편에 설치된 장발 화백 작 ‘14사도’.

 

 

한국인 최초의 재속 프란치스칸

 

장발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당시 휘문고보에는 한국 최초의 서양미술가인 고희동이 미술 교사로 있었다. 고희동의 그림 지도를 받으며 화가의 길을 꿈꿨다. 장발은 오래전부터 성화에 뜻을 품고 있었다. 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서양화의 기초를 닦았다. 이듬해에 동경미술학교를 중퇴하고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의 국립디자인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실용미술학부에 입학해 다양한 미술 과목을 공부했다. 장발 형제는 유학 중에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한국인 최초로 입회한 것이다. 형제는 나중에 우리나라 재속 프란치스코회 뿌리가 되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세속에 살면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며 세상의 성화를 위해 힘쓰는 신자들의 단체이다. 미국 유학 후, 장발은 형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갔다. 조선 가톨릭교회가 장발 형제를 조선 신자 대표로 바티칸에 파견한 것이다. 그곳에서 ‘조선 순교 복자 79위 시복식’이 거행돼 이를 참관하라고 보낸 것이었다.

 

장발은 시복식을 참관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자신의 모교 휘문고보를 비롯해 동성상업학교, 계성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시간을 내어 성화를 그렸다. 일반 작품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친일 미술 단체로 분류된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창씨 개명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친일 작가들처럼 일제를 찬양하는 작품은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서화협회전에만 작품을 냈다. 그렇지만 서울대 일제잔재청산위원회에서는 장발을 서울대 1차 친일 인물 12명 중의 한 명으로 발표했다. 장발은 해방 후, 미 군정 서울시 학무과장으로 있으면서 서울대학교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서울대 예술대학 초대 미술학부장으로 취임했다. 초대 학부장이 된 배경은 이렇다. 당시 미군정청의 헤리 앤스테드가 서울대 임시 총장이었는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물색하다가 서울시 학무과장으로 있던 미국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장발을 발탁한 것이다. 장발은 15년 동안 학장으로 재임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예술가를 교수진으로 확보했다. 교수진은 김환기, 길진섭, 윤승욱, 김종영, 이순석, 이병현, 장우성, 박의현, 유영국, 노수현, 김세중, 박세원, 성낙인, 장욱진 등이었다. 장발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서울대 미대 교수 후보에 들지도 못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려 했다. 또한, 개신교인으로 교수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개종시켜 가톨릭에 입교시켰다. 그러곤 자신의 세례명까지 물려주며 대부가 되었다.

 


서울대 마크 디자인

 

1950년대 미술 단체는 대한미술협회(회장 고희동)만 있었다. 그러나 한국미술가협회가 서울대 문리대 강당에서 발족했다. 회장은 서울미대 학장 장발이었다. 양 단체는 심하게 대립했다. 그 연유는 이렇다. 대한미술협회 정기총회 회장 선거에서 전 회장이었던 고희동과 장발이 경합을 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승과 제자가 회장 자리를 놓고 경합한 것이었다. 투표 결과 고희동이 앞섰으나 과반수 획득에 한 표가 부족하다는 장발 측의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 고희동이 당선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장발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대한미술협회를 탈퇴해 별도로 한국미술가협회를 결성했다. 고희동 지지 세력의 핵심은 홍대 미대 교수였던 윤효중이었고, 장발은 서울대 미대 학장이었기에 ‘홍대파’와 ‘서울대파’가 대립하는 모양이 되었다. 이 대립으로 오늘날까지도 ‘서울대파’와 ‘홍대파’라는 파벌 의식이 남아 있다.

 

장발은 서울대학교 마크를 만들었다. 국립서울대의 머리글자인 ‘ㄱㅅㄷ’를 상징하는 마크로 글자 주변을 월계관으로 돌렸다. 월계관은 경기의 승리나 학문 등의 업적에서 명예와 영광을 상징한다. 펜과 횃불이 월계관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게 디자인했다. 이는 지식의 탐구를 통해 겨레의 길을 밝히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마크 한복판에는 책 한 권이 펼쳐져 있는데 라틴어 ‘VERITAS LUX MEA’가 적혀있다. 그 뜻은 ‘진리는 나의 빛’이다. 서울대학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제정했다. 서울대는 그 상의 주인공으로 장발을 선정했다. 그리고 서울미대 교수들과 동문은 장발 교수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뜻을 모아 동상을 제작해 교내에 세웠고, 서울대 미대 갤러리를 장발의 호를 따서 ‘우석홀’이라 이름 붙였다. 서울대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장발에게 학교와 교수 그리고 제자들이 바치는 존경의 오마주였다.

 

1975년 작 나비가 있는 자화상. 작품 속 나비는 부활을 상징한다.

 

 

부활의 소망 담은 초상화 남기고

 

4·19 혁명이 일어났다. 장발은 ‘미대 권력’으로 찍혀 퇴진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미술대학 운영에서의 권위 의식과 카리스마가 문제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 혁명 전에 이미 장발은 이탈리아 특명전권대사로 내정되어 현지 발령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으로 안타깝게도 중단되었다. 장면 총리가 실각하자 장발은 한국 화단에서 공식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세인트 빈센트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며 지내다가 다시 붓을 잡고는 성화와 추상화를 그렸다. 그때 그린 자화상 한 점이 전해진다. 그 작품은 현재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다. 줄 처진 셔츠를 입었다. 자세는 측면이다. 그런데 고개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깨끗이 빗어넘긴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인다. 굵은 뿔테 안경테 밑으로 보이는 둥근 눈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오른쪽엔 호랑나비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나비는 부활을 상징한다. 미국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 같다.

 

장발이 삶의 마지막 여정을 보낸 곳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라는 도시였다. 장발의 제자인 최종태 요셉(서울대 명예교수)이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은 아흔다섯의 나이였다. 최 교수는 방문하기 전에 궁금한 것을 정리해 가져갔다. 김대건 신부와 명동성당 14사도 그림을 그릴 때, ‘성미술전람회’ 때, 혜화동성당을 만들 때의 일화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귀가 어두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마침 뉴욕 맨하탄 천주교회에서 사목하는 셋째 아들 장흔 신부가 와 있었다. 장 신부에게 메모를 전달하고 대신 여쭤봐 달라고 부탁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집에는 그림 여러 점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 삼위일체의 성부·성자·성령이 한복에 도포를 입고 갓 쓴 그림이 있었다. 최종태는 그런 형식의 그림은 처음 보았다. 그림 속에는 김효임 골룸바와 김효주 아녜스가 있었는데, 멀리 봄 안개 너머로 남대문이 보이고 성녀가 가는 길가에는 꽃들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성모 승천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상도 있었다. 머리 위에는 화환이 얹혀 있고 손에는 백합이 들려 있다. 예전에 그렸던 성화를 다시 새로운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렇게 평생토록 가톨릭 성화를 그린 장발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애를 마쳤다. 장발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으로 진정 한국 가톨릭 미술의 선구자였다.

 

참고자료 : ▲ 가톨릭평화신문. ‘장발 화백의 미공개 ‘김대건 신부 초상화‘, 수원교구에 기증.’ 2022.7.17. ▲ 가톨릭신문. ‘장발 화백(상)’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2016.5.8. ▲ 가톨릭신문. ‘장발 화백(중)’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2016.5.15. ▲ 가톨릭신문. ‘장발 화백(하)’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2016.5.22. ▲ 가톨릭신문. ‘한국 화단의 거장 우석 장발 선생’. 특별초대석. 1997.1.12. ▲ 경인일보. ‘서양화가 장발’(인천인물 100인). 2005.10.20.▲ 정영목. ‘장발평전(1946-1953)-https://s-space.snu.ac.kr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22일, 백형찬(라이문도, 전 서울예대 교수)]



200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