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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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본즈 앤 올 - 사랑 깊은 펠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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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06 ㅣ No.52

[영화칼럼] 영화 ‘본즈 앤 올’ - 2022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사랑 깊은 펠리칸

 

 

미사 중에 사제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여 재현함으로써 제대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축성됩니다. 이렇게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태는 그대로 남지만,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인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다고 교회는 가르치는데, 이를 ‘실체변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식 중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신자들이 나누어 먹고 마신다는 이유로 식인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에서 드러나듯 교회는 실체변화를 통해서 당신의 살과 피를 끊임없이 나누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자신의 가슴살을 떼어 새끼에게 먹인다는 어미 펠리칸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카미유 드 안젤리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본즈 앤 올>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오해받았던 ‘카니발리즘(cannibalism, 동족 포식)’을 표방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매런(테일러 러셀 분)을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 사람을 먹는 ‘이터(eater)’들, 즉 본능적으로 식인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매런은 선천적으로 식인의 욕구를 지녔습니다. 매런의 아빠는 그런 딸의 욕구를 억누르고 딸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조력자였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매런의 곁을 떠납니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매런은 오래전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엄마를 찾아 나서는 여정 중 매런은 자신과 같은 이터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리(티모시 살라메 분)는 매런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매런과 리는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삶, 정처 없이 떠돌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매런과 리에게 찾아온 영화 속 결말은 영화 <본즈 앤 올>이 카니발리즘을 표방한 이유를 상기시켜줍니다.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과 나눈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라고 하셨던 이유를 끊임없이 마음에 새기듯, 극적인 순간에 다다른 리가 매런을 향해 던진 ‘간곡한 부탁’을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끝나도 계속해서 곱씹게 합니다. 이처럼 영화 <본즈 앤 올>은 마치 새끼들을 향한 어미 펠리칸의 희생적인 사랑에 빗대듯이 극 중 매런과 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을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그립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사치처럼 여기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순간의 욕망에 집착하고 피상적인 속성에 의존하는 사랑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처럼 여기며 그 흐름에 전적으로 순응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본즈 앤 올>은,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했던 것처럼, 살과 피를 내어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고 싶어 합니다.

 

[2023년 2월 5일(가해) 연중 제5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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