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대림 1 주일-다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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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0-12-03 ㅣ No.219

대림 1 주일 (다해)

 

        예레미야 33,14-16    1데살로니카 3,12-4,2    루가 21,25-28.34-36

    2000. 12.  3.

 

주제 :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오늘은 여러 가지 마음으로 시작했던 2000년 대희년의 마지막 12월의 첫 주일이며, 교회의 달력으로는 새로운 해의 첫날입니다. 어느 덧 열한[11] 달을 보내고, 이제 올 한해도 한 달을 채 남기지 않은 때에 와 있습니다. 달이 바뀌면 '이번 한 달만큼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담아 우리는 늘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만, 지내고 나면 만족하지 못한 느낌을 갖곤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씀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올해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힘썼으면 좋을 듯 합니다.

 

늘 반복해서 하는 질문입니다만,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가질 때마다 이번에 맞이하는 기회는 어찌 살아야 내가 만족할까?  그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예쁘게 봐 주실까 하고 묻고, 각자 답을 얻기 위해서 애씁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주는 답은 그저 참조할 만한 수준이상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주는 대답은 일반적인 것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례력의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①어떤 사람을 높여, 그 사람의 말을 이르는 말. ¶  선생님의 ∼을 깊이 새겨듣다 / 옳은 ∼입니다. ②상대방을 높여, 자기가 하는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 ∼을 드리다 / ∼을 올리다 / 제 ∼을 들어 보십시오] 도 어찌 생각하면 같은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소홀히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오시기를 바라는 대림절의 첫날입니다. 구원자로 오시는 하느님의 기다린 시간을 가리켜서 대림 네 주간은 4000년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2000년 대희년의 끝을 지내는 우리에게는 이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짧은 네 주간을 지내며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떤 삶을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의 처음과 끝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처음이 없는 결과는 생길 수 없고, 처음이 시원찮으면 결과 역시도 좋게 끝날 수 없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대림절 첫날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가 넋을 놔도 좋을 만큼 편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편한 이야기인지 편한 이야기가 아닌지 하는 정도를 넘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 이상으로 더 긴장하고 살아야한다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는 일은 처음시대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처음 시대에는 막연하게 사람들이 하느님을 기다렸지만, 그때 이후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은 훗날 사람들을 판단하고 규정하실 삶의 기준들을 알려주셨기에 처음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고 맞이하는 세상과 모르고 맞이하는 세상은 분명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후에 맞이하는 세상은 우리가 이미 상상하고 예상할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예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으로 오시는가 하는 질문에 첫 번째 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선언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복을 실현해주러 오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 복음입니다.  우리가 삶의 희망을 갖고 살수 있도록 만들어주기에 복음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이 우리 앞에 펼쳐지더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 그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의 하나로 욕심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욕심은 많이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고양동 성당의 환경을 더 좋게 하는데 충분할 정도의 돈이 뇌물로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것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모두 세상에서나 통하는 욕심 때문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욕심은 '세상의 욕심에서 벗어나려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내 것을 퍼주고 나눠주는 욕심이 신앙의 욕심입니다. 예수님도 세상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만 하느님이 오시는 날, 그분의 구원이 우리를 채우는 날 두렵지 않게 맞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 방법으로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신앙인에게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선언이고 명령이며 부탁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그 실천의 방법에 따라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새로운 탄생은 기쁨으로 오는지 아니며 삶의 압박이나 부담감으로 오는지 구별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하느님이 다가오시는 일은 갑작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분이 오시는 것은 우리가 즐기고 싶은 현세의 일들을 방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게 당연하니까요!

 

우리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마음으로 모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분의 말씀과 뜻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가장 먼저 쓴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서 배웠고 또 배운 대로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욱 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알아듣는 사람이 가진 삶의 자세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맺는 법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기도도 당연히 해야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마음을 넓혀 기도할 수 있는 대림절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시 우리 삶의 자세를 돌이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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