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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나가사키 아마쿠사 세계문화유산3: 시공(時空)의 기억과 성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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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28 ㅣ No.1611

나가사키 아마쿠사 세계문화유산 (3) 시공(時空)의 기억과 성스러움

 

 

5. 나가사키 아마쿠사 세계문화유산 12곳

 

이러한 잠복 그리스탄 후손에 의해 세워진 나가사키 교회군(敎會群)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산은, 세계 종교 사상의 기적(=동서 문화의 만남·갈등·융합), 뛰어난 문화적 경관(=자연과 취락이 일체화된 경관), 동서 건축 기법의 융합(=서양 기술과 융합된 일본적 건축)으로 탁월한 잠재적 ·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나가사키(長崎)와 아마쿠사(天草)의 잠복 그리스탄 관련 유산은 12개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자산은 잠복 그리스탄 후손들이 오랜 금교기를 거치면서 지켜온 독특한 종교적·문화적 전통을 증거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7세기 이후 엄격한 그리스도교 박해와 탄압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계승하면서, 때로는 불교와 신도(神道) 등 일본의 재래 종교를 가장하면서 조직적이고 독특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고유의 신앙 형태를 키워 왔다. 오랜 기간의 고립 속에서 변형된 이들의 신앙 형태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비그리스도교라고 단죄하고 거부할 수는 없다. 신도(信徒) 발견을 계기로 천주교에 복귀한 각 지역의 취락에 건립된 교회당은, 역설적으로 잠복 그리스탄의 문화적 전통이 종언되었음을 상징한다.


1) 하라성(原城) 터

 

1637년 금교 초기 아리마(有馬)와 아마쿠사 그리스탄이 봉기한 ‘시마바라 아마쿠사 잇키(島原 · 天草一揆)’1)의 무대였던 성터다. 잇키는 금교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에도 막부에 체재 불안이라는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2세기가 넘는 쇄국 체제를 확립함과 동시에, 선교사 부재로 잠복한 그리스탄이 스스로 신앙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2) 히라도(平戸) 성지와 취락(카스가 취락과 야스만다케)

 

이 지역의 잠복 그리스탄이 자연의 산과 섬 등을 숭경(崇敬)하는 자연숭배 사상에 겹쳐서, 자신들의 신앙을 은밀히 지켜온 마을이다. 성지의 석조물, 취락 내 토지 이용 형태, 묘지 유물 등에는 금교 하에서도 성지 및 순교지에 대한 숭경을 비밀리에 이어온 잠복 그리스탄 신앙과 관련한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금교기 카스가(春日) 취락의 잠복 그리스탄은 전통적인 산악(山岳) 신앙의 장소로 여겨졌던 야스만다케(安滿岳)를 숭경하였다.

 

3) 히라도 성지와 취락(나카에노시마섬[中江ノ島])

 

나가사키 지방 서북부 히라도섬 북서부 해안 앞바다 2km에 위치한 길이 400m, 폭 50m의 무인도다. 이 섬에서는 금교 시대 초기 히라도 번(藩)에 의한 그리스탄 처형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순교지는 그리스탄이 은밀히 숭경했던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성수를 채취하는 ‘취수(水取)’가 행해진 성지로서, 금교기의 고유한 신앙 형태를 보여주는 자산이다.

 

4) 아마쿠사(天草)의 사키츠(崎津) 취락

 

생업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그리스탄의 신심구로 대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몰래 지키고 계승해 온 잠복 그리스탄의 촌락이다. 금교기 사키즈 취락에서는 잠복 그리스탄 조직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신앙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다이고쿠텐 및 에비스 신2)을 그리스도교 유일신인 데우스(Deus)로 숭배하고, 전복 껍데기로 성모 마리아를 만드는 등 어촌 특유의 신앙 형태가 만들어졌다. 사키즈의 잠복 그리스탄은 가톨릭으로 복귀하여 금교기에 숨어서 기도하던 신사(神社) 근처에 교회를 세웠다.

 

5) 소토메(外海)의 시츠(出津) 취락

 

잠복 그리스탄이 성상을 몰래 배례(拜禮)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은닉하고 교회력 및 교리서를 통해 신앙을 유지해 온 마을이다. 시츠 촌락에서는 소규모 잠복 그리스탄 신앙 조직이 연대하여 성화를 은닉하고 기도를 올리고, 교리서 및 교회력 등을 전승하면서 비밀리에 자신의 신앙을 계승하였다. 금교기에는 많은 소토메 출신의 잠복 그리스탄들이 고토 열도(五島列島) 등 주변 도서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잠복 그리스탄 신앙의 계승에 관한 전통이 낙도 각지로 확산되었다. 금교가 풀린 후 잠복 그리스탄은 단계적으로 가톨릭으로 복귀하여 취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교회를 건립하였다.

 

6) 소토메의 오오노(大野) 취락

 

일본 전통 종교 신도(神道)에 근거한 신사에 잠복 그리스탄 신앙 대상을 몰래 합쳐서, 은밀히 신앙을 계승해 온 잠복 그리스탄 촌락이다. 오오노 촌락의 잠복 그리스탄은 자신들의 신앙을 가장하고 숨기기 위해 촌락 내 신사의 우지코(氏子)3)가 되어 신사에 자신들의 신앙 대상을 몰래 모시고, 재래 종교인 신도의 제사 장소와 잠복 그리스탄의 신앙으로서의 기도 장소를 공존시켰다. 금교가 풀리고 가톨릭으로 복귀한 오오노 취락의 잠복 그리스탄은 오오노 교회를 건립하였다.

 

7) 쿠로시마(黑島) 취락

 

19세기 중반 잠복 그리스탄이 히라도 번(平戶藩)의 목장 터로 개발된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신앙을 이어온 마을이다. 히라도 번이 쿠로시마 목장지로 경작 이주를 장려한 데 따라, 섬 외부 각지에서 쿠로시마로 이주한 잠복 그리스탄은 겉으로는 자신이 속해 있던 불교 사찰에서 몰래 마리아 관음상을 모시고 기도하면서, 불교도들의 비간섭 묵인하에 스스로의 신앙을 이어갔다. 금교가 풀린 후에 천주교로 복귀하여 섬 중심부에 새로이 교회를 건립하였다.

 

8) 노자키지마(野崎島)의 취락 터

 

19세기 이후 잠복 그리스탄이 신도(神道)의 성지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온 잠복 그리스탄 마을의 유적이다. 소토메에서 바다를 건넌 잠복 그리스탄은 고토 열도 일원에서 숭경을 받고 있던 오키노시마 신사에서 벗어나, 미개척지였던 노자키섬 중앙부 및 남부의 2곳으로 이주해서 신사의 우지코(氏子)가 됨으로서, 전통 재래의 신도에 대한 신앙을 가장하면서 은밀하게 잠복 그리스탄으로서의 신앙을 유지 계승했다. 노자키섬의 잠복 그리스탄은 그리스도교 금교가 풀린 후 가톨릭으로 복귀하여 2개의 취락 각각에 교회를 세웠다.


9) 가시라가시마(頭が島)의 촌락

 

금교 시기에 병자를 격리하기 위한 섬으로, 잠복 그리스탄이 이주하여 신앙을 은밀히 이어온 마을이다. 소토메에서 나카도오리지마 타이노우라(中通島鯛浦)로 건너간 잠복 그리시탄은 불교도의 감시 속에 무인도였던 가시라가시마에 정착하였고,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은밀하게 잠복 그리시탄으로서의 신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금교가 풀린 후에는 천주교로 복귀하여, 이 지역에서 나오는 사암(砂岩)을 사용한 석재로 자신들의 교회를 건축하였다.

 

10) 히사카지마(久賀島)의 촌락

 

히사카지마는 에도 시대의 유배지였다. 잠복 그리스탄이 고토 후쿠에 번(福江藩)의 개척 이민 정책에 따라 미개척지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이어가려는 잠복 그리스탄의 촌락이 형성되었다. 소토메에서 히사카지마로 이주한 잠복 그리스탄은 불교 취락에서 떨어진 곳에 자신들의 촌락을 형성하지만, 어업 또는 농업에 수반되는 작업을 불교 취락 주민들과도 함께함으로써 상부상조 관계를 구축하였고, 은밀하게 잠복 그리스탄으로서의 신앙을 이어갔다. 금교가 풀린 후 가톨릭으로 복귀했고, 각 취락에 새롭게 교회를 건립하였다.

 

11) 나루시마(成島)의 에가미(江上) 취락(에가미 천주당과 그 주변)

 

잠복 그리스탄이 금교 시기에 이주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 이주처(移住處)의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및 기존 종교와 공생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온 잠복 그리스탄의 촌락이다. 에가미로 이주한 잠복 그리스탄은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조직적으로 이어나갔다. 그리스도교 금교가 풀린 후 그들은 천주교로 복귀하여 재래 기술을 이용해 목조로 된 에가미 교회를 건축하였다. 에가미의 고유한 급경사 및 계곡에 맞춰서 재래의 건축 의장과 공법에 기초한 풍토적 특징과 천주교회로서의 서양적 특징과의 융합을 볼 수 있는 교회 건축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12) 오우라(大浦) 천주당

 

잠복 그리스탄이 새로운 신앙 국면을 맞이하는 계기가 된, ‘신도(信徒) 발견’의 역사적 장소다. 자유롭게 신앙을 표현할 수 없었던 잠복 그리스탄이 기존의 사회 및 종교와 공생하면서 변형된 형태로 자신들의 신앙을 계승하지만, 마침내 오우라 천주당 선교사들과 각지의 잠복 그리스탄 취락 지도자들과 접촉함으로써 잠복 그리스탄의 문화적 전통이 종언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우라 천주당은 19세기 후반 일본 개국으로 일본에 온 선교사들이 1864년 건립한 교회당으로, 16세기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26 성인에게 봉헌되었다.

 

 

6. 맺음말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그리스탄 관련 유산’은, 20년의 긴 기간을 거치는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가사키현, 일본 문화청, 나가사키 대교구, 그리고 많은 NPO 시민단체, 학계 및 연구자의 지원과 협력 속에 2018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 참고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은 현재 16곳4)이다. 이 중에는 불교와 유교 관련이 많고, 2018년 한국의 산지 승원 7곳,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이 포함되었다. 조만간 천주교 관련 유산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 미야자키 겐타로(宮崎賢太郎), 『잠복 그리스탄은 무엇을 믿었는가?』, 가토카와(角川)서점, 2018.

• 다카기 가즈오(高木一雄), 『메이지 가톨릭교회사』 2, 교문관, 2008.

• 다마키 유즈루(玉木讓), 『아마쿠사 가와치우라 그리스탄史』, 신인물왕래사, 2013.

• 가타오카 야키치(片岡彌吉), 『일본 그리스탄 순교사』, 도모(智)서방, 2010.

• 히로세 다카시(結城了悟), 『문명개화는 나가사키로부터』 상·하, 슈에이샤, 2014.

• 에비사와 아리미치(海老澤有道), 『일본 그리스탄史』, 하나와(塙)서방, 1966.

• 고노이 타카시(五野井隆史), 『그리스탄의 문화』, 요시카와고분칸(吉川弘文館), 2012.

• 기타노 노리오(北野典夫), 『아마쿠사 그리스탄史』, 요시(葦)서방, 1987.

• 세노 세이치로(瀬野精一郎), 『나가사키현의 역사』, 야마가와(山川)출판사, 1972.

• 이케가미 히로코(池上裕子), 『쇼쿠호(織豊) 시대 정권과 에도 막부』, 코우단샤(講談社), 2009.

• 나가사키 문헌사 편, 『여행하는 나가사키학 그리스탄 문화』 1·2·3·4·별책, 2006.

• 나가사키 교회군 정보센터 편, 『탐방 나가사키의 교회군(群)』, NCIC, 2016·2018.

• 나가사키현청·문화청,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그리스탄 관련 유산』 2016.

• 필자 카페 : “일본 역사와 문화 천주교회 나가사키 조선인”

https://cafe.naver.com/nagasakidiary 이메일 : tshlee216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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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사나 농민의 집단행동으로 지배층의 압정에 대한 민란이나 반란을 칭한다.

 

2) 불교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로, 다이고쿠텐(大黑天)은 풍작 복덕(豐作福德)의 신, 에비스(惠比壽)는 풍어(豐漁)와 사업 번창의 신으로 여긴다.

 

3) 신사(神社)를 유지하는 신도, 또는 조직.

 

4) ① 석굴암 · 불국사, ② 해인사 장경판전, ③ 종묘, ④ 창덕궁, ⑤ 수원 화성, ⑥ 경주 역사유적 지구, ⑦ 고인돌 유적, ⑧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⑨ 조선 왕릉, ⑩ 한국의 역사 마을(하회와 양동), ⑪ 남한산성, ⑫ 백제 역사유적 지구, ⑬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⑭ 한국의 서원, ⑮ 한국의 갯벌, ⑯ 가야 고분군.

 

[교회와 역사, 2023년 11월호, 글 이세훈 토마스 아퀴나스(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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