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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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일제강점기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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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04 ㅣ No.266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2) 일제강점기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섬세한 레이스 짜놓은 듯 반복되는 문양

 

 

- 옛 조선총독부 중앙 홀 천창 스테인드글라스 세부도, 1925.

 

 

우리나라의 스테인드글라스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그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중간 큰 공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 앞서 건축된 서울 중림동약현성당이나 이후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건축한 여러 성당에는 서너 가지 색유리를 사용한 단순한 구성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확한 출처와 유입 경로를 알기 어렵고, 작품성도 그리 높지 않아 미술사적으로 구체적 내용을 기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교회 외 관공서 등 일반 건축물에 설치된 작품의 사례들이다. 한ㆍ일 병합 조약 이후에 설치된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대표적 사례다. 

 

경복궁 앞에 있다가 현재는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은 구 조선총독부 청사는 당시 식민제국주의자들이 선호했던 위풍당당하고 육중한 양감을 특징으로 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됐다. 건물 중앙 홀 상부에는 16개의 원주로 둘러싸인 반구형의 돔에 톱라이트(top light) 형식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다.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이 작품은 3㎜ 두께의 독일산 무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됐으며, 작품 총면적은 약 90㎡였다. 작품에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했던 단순하고 무채색에 가까운 유리가 사용됐다. 강렬한 색채 대신에 거의 무색에 가까운 유리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굴절광선과 반사광선의 느낌으로 유리의 본질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 독일 스테인드글라스의 경향을 따른 것으로, 관공서 건물의 성격과 특징에 맞는 색채와 디자인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 조선총독부 실측도. 출처=국가기록원.

 

 

구 조선총독부 천창 스테인드글라스의 세부 도안은 식물 모티프를 기초로 한 단순함을 보여 주고 있다. 천창의 원형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심에서부터 8개로 나뉜 선을 따라 작은 원과 별 모양의 꼭짓점이 일직선 상에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 다시 여덟 개의 팔각형 문양을 뒀다. 그리고 팔각형 안에는 각기 다른 꽃바구니 문양이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디자인되었다. 그물망을 연상시키는 잘게 나뉜 선들은 마치 섬세한 레이스를 짜놓은 것처럼 같은 패턴이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돼 있다.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들은 1926년 5월 1일 발행된 「조선과 건축」 제5호 기사에 게재돼 있다. 기사에 따르면 구 조선총독부 청사는 외관만큼이나 내부 역시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금속, 목조 공예는 물론 유리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한 고가의 정교한 작품들도 설치된 것으로 나온다. 또한 현관의 창, 식당 입구, 출입문, 화장실 등에 다양한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일본 동경의 벳부시치로와 우노사와 공방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제작됐던 여느 스테인드글라스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규모와 정교한 수준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1898년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 프랑스에서 수입된 스테인드글라스를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후 큰 발전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1925년에 설치된 구 조선총독부 작품이 일본 공방에서 일본인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상황에 비해 일본 스테인드글라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많이 앞서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일본 역시 종교 건축에서는 우리와 같이 프랑스를 통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수용하였지만, 일반 건축의 경우는 영국과 독일 스테인드글라스의 경향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로 유입된 대표적인 사례가 구 조선총독부 청사 스테인드글라스인 것이다. 현재는 철거되어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관공서 건물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의 몇 안 되는 사례로서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는 초창기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 주고 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3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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