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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신약] 요한의 서간들: 하느님과 친교를 위한 셋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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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2 ㅣ No.3037

[요한의 서간들] 하느님과 친교를 위한 셋째 기준


계명의 준수 - 사랑의 실천 : 1요한 4,7-21

 

 

이 단락은 사랑에 대한 권고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언급이 종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사랑의 기원을 하느님께 둡니다. 지금까지 논쟁의 주제로 사용했던 ‘하느님을 안다는 것’과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이 사랑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하느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흔히 구약성경의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특징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요한 서간은 이를 명료하게 들려줍니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다’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표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강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1요한 1,2).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1요한 3,5). 이 단어가 사용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를 염두에 두고 그분의 구원 업적을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선사한 것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요한 1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저자는 하느님의 온전한 주도권에 대해 표현합니다.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 시작과 완성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의 생각은 바오로 사도와 많이 비슷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바오로 사도나 요한 서간 모두 인간이,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강조합니다.

구원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입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탁월하게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형제들 안에서, 곧 우리 안에서 실천될 때 완성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은 사랑을 통한 놀라운 효과를 알게 합니다.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그리고 동일한 사랑을 통해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밝혀집니다. 요한 1서는 영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영을 보내셨다는 표현과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바오로 사도에게서도 볼 수 있는 생각입니다. 갈라 4,4-6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을 알고 그것을 통해 믿음을 가지며 그 믿음을 통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구원을 향한 굳은 확신의 표현입니다. 아직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는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사랑을 통해 믿음을 설명합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표현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을 간직한 사람이며,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승리 : 1요한 5,1-13

이 단락에서 저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이 전 단락이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제부터 저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믿음에 집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여기서 계명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 계명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권고의 요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는 표현은 요한 16,33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요한 5,4에서 말하는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세상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우리 또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승리에 함께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세상은 요한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반대되는 의미로써의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저자는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과 피의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확정짓고자 군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거기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고 전하는 내용과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요한 19,34 참조). 그리고 이 내용은 후대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물이 예수님의 세례를, 피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물과 피는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를 나타내는,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역사 안에서의 업적을 나타냅니다.

어떤 것을 택하든지 겉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실제적인 죽음입니다. 이 표현의 이면에는 요한 공동체의 반대자들로 생각되는 영지주의적 경향을 가진 이들과 가현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을 반박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증언하는 “진리의 성령” 또한 요한 복음에서 이미 언급된 내용입니다. 특별히 세례와 관련해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서(요한 1,32.34 참조), 그리고 진리의 영이 증언하리라는 내용은 요한 15,26-27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진리의 성령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위한 길입니다.


맺음말 : 1요한 5,14-21

요한 1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형제를 위한 기도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다른 하나는 ‘우상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자는 분별을 요청합니다. 요한 공동체의 현실은 그만큼 간절해 보입니다.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하느님을 따르라고 권고합니다.

요한 1서에는 요한 공동체의 상황이 잘 드러납니다. 그들이 놓인 어려운 현실에서 저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권고합니다. 오롯이 사람이 되어 오시고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히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심오합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허규 베네딕토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로 수품,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약성서 교수로 요한 묵시록과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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