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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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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03 ㅣ No.54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그리스도>,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 작(1655, 캔버스 위에 유화, 160x142cm,영국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여성의 마음을 알게 되면 세상을 얻게 된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멜 깁슨이 주연한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라는 영화의 한 대목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잘 나가는 광고 기획자인 닉 마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련이 닥쳐옵니다. 자신의 승진 기회를 경쟁사에서 일하던 여자 달시 맥과이어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닉은 여성 상품 광고 시안을 제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재기의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의욕에 가득 차 욕실에서 여러 여성 용품을 사용해보다가 미끄러져 감전되고, 정신까지 잃게 됩니다. 가까스로 깨어난 닉은 자신에게 여성의 마음을 읽게 되는 능력이 생겼음을 발견합니다.

 

다소 황당한 설정의 이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여자의 마음을 읽어야 성공한다”는 내용을 반복합니다. 여성의 마음을 모르면 사업이나 인생에서 결코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 없이는 성공을 이루기 힘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성의 힘은 상당히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 대표만 봐도 여성이 많습니다. 현 정부 들어 여성 장관이나 여성 공직자들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본래 ‘유리천장’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에 미국의 한 경제 일간지에서 등장한 말로, 미국 여성이 직장에서 승진하는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불평등한 요인들을 없애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실제적인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불평등 요소 아직도 존재해

 

유다인 남자들은 “하느님! 저를 이방인이나 여자로 만드시지 않았기에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유다인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구약 시대에서 여자는 주로 성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격리되었으며 철저히 아버지나 남편의 지배 아래에 살았습니다. 여인들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유조차 없었고 율법을 배울 수도, 율법 교사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십계명에서는 집과 밭과 종과 소와 나귀와 마찬가지로, 부인도 남편의 소유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탈출 20,17).

 

이스라엘 여인의 위치가 여자 노예와 법률적으로 다른 점은 혼인 때의 지참금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는 것과 남편과 이혼이나 사별했을 때에 그녀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기록된 혼인 증서를 담보로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부인은 남편의 첩을 합법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혼을 택할 권리는 온전히 남편 쪽에만 있었습니다.

 

부인은 가축 떼들을 지키고, 밭에서 일하며, 집에서 밥을 짓고, 양털로 실을 뽑아 옷을 짜는 일을 했습니다. 남편의 잠자리 준비 및 남편의 얼굴과 손발을 씻겨 주는 것도 부인의 의무에 속했습니다. 신약시대에서도 여인들의 위치는 큰 변함이 없었습니다. 공적인 삶은 철저히 남자들만을 위한 일이었고, 여자들에게는 집안에서의 생활만이 요구되었습니다. 여성들은 가정과 공적인 삶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도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을 인정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포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들을 여자이기 이전에 남자와 똑같은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예수님의 제자처럼 그의 길을 따랐습니다. 몇몇 여성들은 자신의 재산을 바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도왔습니다(루가 8,3). 예수님의 죽음의 곁을 지키고 부활을 체험했던 첫 인물도 여성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도망치고 배반했지만. 그분을 따르던 여성들은 끝까지 신의를 지켰던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여인들에게 특별한 만남이 되었고 결국 그녀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을 인정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하다는 선포야말로 예수님이 가져다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가정,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실로 대단합니다. 교회도 여성들의 재정적, 영적인 공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 교회 안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신앙적인 숙제입니다.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그 누구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0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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