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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영상 속의 조선 천주교회사와 최양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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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2 ㅣ No.901

영상 속의 조선 천주교회사와 최양업 신부

 

 

국문 초록

 

이 글은 역사적 관점에서 영상 속 최양업 신부와 조선 천주교회사에 관한 내용 및 그 문제점과 변화상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상물로는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1984, 최하원 감독)과 평화방송 TV 사극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2008, 남진우 연출)이 대표적이다.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역할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이 영화는 철종대 정치적 상황과 천주교 금압을 시대적 배경으로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을 재현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영웅주의적 시각, 민족의 관점이 두드러졌다. 최양업 신부는 이상적 사제의 모범이며 그의 활동은 조국, 겨레, 민족을 위한 일로 묘사되었다. 영화 속의 천주교 신자는 신심이 두텁고 순교를 바라는 모범적 신앙인으로 그려졌다.

 

사극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은 최양업 신부의 신앙을 통하여 현대인의 종교적 삶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졌다. 이 사극은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을 그리면서 인간적 고뇌와 내적 갈등을 담고자 하였다. 드라마 속 천주교 신자들은 깊은 신심을 보이지만 때로 갈등하며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사극에서는 교우촌의 형성, 전통 방식의 미사와 세례 · 병자 · 혼배 성사 등 천주교의 전례, 여러 신자의 생활상 등을 담았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문화사를 볼 수 있었다.

 

두 영상물에서 재현한 천주교회사에는 몇 가지 사실 착오와 시대착오가 있었다. 또한 영상물에 나타난 역사상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영상 속 변화상은 역사 이해에서 영웅이나 민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 사라지고 미시적 생활사와 문화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난 결과에 따른 것이다.

 

 

1. 머리말

 

이 글은 역사적 관점에서 영화와 텔레비전 사극에 나타난 최양업(崔良業, 1821~1861년) 신부와 조선 천주교회사에 관하여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를 소재로 한 영상물은 종교 드라마이면서 역사 드라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영상 매체를 통하여 유통되는 역사물이 넘쳐난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는 역사적 사건, 인물을 소재로 한 사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역사 드라마는 생생한 영상으로 과거를 재현하여 보고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책으로 읽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영상을 통하여 잊힌 역사가 복원되기도 하고,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과거를 새롭게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로 재현한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한 연구는 크게 부족하다. 지금까지는 천주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정리하여 소개하고 분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1) 1940년대부터 제작한 천주교에 관한 영화를 종교 영화라는 관점에서 내용상 전기 영화, 순교사화, 본격적 역사 영화 등으로 나누었다. 또한 개별 영화 및 천주교 영화를 만든 대표적 감독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최하원 감독의 작품에 관한 검토,2)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한 영화와 “성 김대건 신부”를 살핀 연구,3)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의 충돌을 다룬 영화 “이재수의 난”에 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4)

 

천주교회사를 소재로 삼은 영상물은 일반 대중의 천주교 및 교회의 역사에 대한 인식, 감정과 태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영상에 보이는 천주교회사에 관하여 좀 더 다양하며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 영상물은 교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제작 시기의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며 미시적 역사를 보여준다. 후대에 가면 영상 그 자체가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영상물을 영상 교회사, 영상 역사라는 시각에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하고자 한다. 천주교회사 관련 영상물을 연구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2016년 4월에 교황청은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하였다. 최양업 신부가 선교 활동을 펼친 19세기 중엽 조선의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그가 귀국하여 활동한 1850년에 천주교도의 수는 11,000명이었다. 그 뒤 계속하여 늘어나서 그가 선종한 1861년에는 신자가 18,000명에 이르렀다.5) 이 시기 철종(1849~1863년 재위)이 왕위에 오르면서 안동 김씨가 집권하여 천주교에 대한 금압이 심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왔으며 다양한 천주교 서적이 출판되었다. 여러 선교사의 노력과 서적의 유통 등이 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서 최양업 신부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지나칠 수 없다.6) 기왕의 연구 성과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상에서 재현한 최양업 신부와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의 내용과 특징, 한계와 변화상을 살피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본문에서 검토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정리하고자 한다. 천주교 수용과 박해, 조선의 천주교 사제와 신자 등을 다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찾아볼 것이다. 조선 천주교회사에 관한 영상물 제작의 대체적인 경향을 살피기 위해서이다. 둘째, 그 가운데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하고자 한다. 영상물의 제작 의도와 스토리의 전개, 영상에서 재현한 최양업 신부와 천주교 신자의 모습 등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영상 속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의 내용과 특징을 살피기 위해서이다. 셋째, 영상 속 시대착오와 천주교회사를 재현하는 방식의 변화를 검토하고자 한다. 영상 속 역사의 한계를 밝히며 그 변화상과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검토가 앞으로 영상 속 천주교회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조선 천주교회사 관련 영화와 드라마

 

조선 천주교회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1948년부터 만들어졌다. 관련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이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개략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첫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초기 영상물이 있다. 초기 영화를 보면 김정환 감독이 만든 “지성탑”(1948), 이만흥 감독의 “구원의 정화”(1956), 최인현 감독의 “자주댕기”(1968), 최하원 감독의 “새남터의 북소리”(1972)가 있었다. “지성탑”7)과 “구원의 정화”8)는 대원군 집권기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하였다. “자주댕기”는 조선 말 천주교도의 수난과 사랑에 관한 내용이다.9) “새남터의 목소리”는 조선 후기 천주교도의 사랑과 박해를 소재로 하였다.10) 초기의 천주교회사를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도 있었다. KBS TV에서 주간 단막극 “개화백경”(1971년 7월 25일~10월 22일, 이진욱 연출) 가운데 “테레갈라와 오지네”를 방송하였다.11) 이상의 영상물은 허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천주교도의 사랑을 다루었다.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의 형식을 띠었다.

 

둘째, 1980년대 본격적인 역사 드라마와 기록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로써 최하원 감독이 제작한 “초대받은 사람들”(1981), “초대받은 성웅들”(1984), 김요한 감독의 “성 김대건 신부”(1983), 최인현 감독의 “소명”(1984) 등이 있었다. 최하원 감독은 천주교 수용부터 1839년 기해박해까지를 다룬 “초대받은 사람들”과 1840년대 이후 김대건 · 최양업 신부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 “초대받은 성웅들”을 제작하였다.12) 기록영화 “성 김대건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순교까지의 일대기를 담았다.13) 최인현 감독의 “소명”14)은 18세기 이벽을 중심으로 초기 천주교회사를 스크린에 올렸다. 또한 1988년 MBC TV에서는 창사 27주년 특집으로 “만남”을 방송하였다(1988년 11월 30일~12월 2일, 박철수 연출).15) 같은 해 KBS TV에서는 성탄특집 드라마 “조선백자 마리아상”을 방송하였다(1988년 12월 23일~24일, 전세권 연출).16) “조선백자 마리아상”과 “만남”은 초기 천주교 신앙과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정약용 · 정약종 · 이벽 등과 순교자의 행적을 조명하였다. 이 시기의 영상물은 정약용, 이벽,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와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초기 천주교의 수용,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역사 드라마를 선보였던 것이다.

 

셋째, 1990년대 이후의 영화와 종교 방송 채널의 순교 사극이 있다. 영화로 1901년의 신축교안(제주교안)을 소재로 한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1999)17)을 상영하였다. 그 뒤 평화방송(PBC) TV에서 특별기획 드라마로 순교 사극 시리즈를 선보였다. “성 김대건”(2006년 9월 14일~16일, 3부작, 남진우 연출)과 “강완숙”(2007년 11월 20일~12월 09일, 3부작, 김수형 연출),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2008년 11월 24일~26일, 3부작, 남진우 연출), “동정부부 요안 · 루갈다”(2010년 11월 29일~30일, 2부작, 김수형 연출) 등이 방송되었다. 드라마의 제목에 보이듯이 김대건 신부, 강완숙, 최양업 신부, 유중철과 이순이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과 선교, 순교의 역사를 그렸다.

 

크게 보아서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에 관한 영화는 198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1981년에 상영한 “초대받은 사람들”은 제2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동아흥행), 음악상(최창권), 미술상(송백규), 특별상(연기 부분, 김지영)을 석권하였다. 이 영화는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 상영하였다. 천주교 박해를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으며 호평을 받았다. 그 후편에 해당하는 영화가 1984년에 상영한 “초대받은 성웅들”이었다. 1984년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었다. 이 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하여 103위의 시성식이 열렸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대교구 홍보국 후원으로 연방영화사가 “초대받은 성웅들”을 제작하였다. 같은 해 상영한 “소명”은 한국천주교 200주년기념사업위원회에서 공인한 기념작이었다. 이에 앞서 기록영화 “성 김대건 신부”가 만들어졌다.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천주교회 200주년, 교황의 한국 방문이라는 사회적 종교적 배경이 천주교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하였다. 그 뒤 조선 천주교에 관한 영화로는 1999년에 한불합작으로 제작한 “이재수의 난”이 있었을 뿐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조선 천주교회사 관련 영상물은 TV 드라마가 대세를 이루었다. 1980년대 텔레비전이 컬러 방송을 시작하면서 사극이 각광을 받았다. 1988년대 말 방송한 “만남”은 같은 제목의 한무숙이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정약용과 정하상을 중심으로 초기의 천주교 수용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었다. “조선백자 마리아상”은 서기원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벽, 이승훈, 정약용 형제 등의 천주교 수용과 박해를 브라운관에 담았다. 대표적인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천주교 전파와 수용의 역사를 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평화방송 TV에서 순교 사극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조선 천주교회사의 주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4편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종교방송 채널을 통하여 순교자의 생애와 영성을 조명하였다.

 

또한 조선 천주교회사를 중심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와 드라마에서 부분적으로 초기 천주교 신앙과 미사, 박해 장면을 담은 경우도 있었다.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이재용 감독), “혈의 누”(2005, 김대승 감독),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김석윤 감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스캔들”의 숙부인(전도연 분)과 “조선명탐정”의 나영 아씨(한지민 분)가 18세기 정조대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나왔다. “혈의 누”는 황사영 백서 사건을 배경으로 하였다. 드라마 가운데는 대원군 집권기를 다룬 KBS TV의 “찬란한 여명”(1995년 10월 28일~1996년 11월 23일, 100회, 이녹영 연출), MBC TV “닥터 진”(2012년 5월 26일~8월 12일, 22부작, 한희 연출)에서 천주교 박해를 보여주었다.

 

이상에서 조선의 천주교회사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정리하였다. 이들 영상물은 내용상 역사 드라마이면서 종교 드라마이기도 하였다. 대체로 18~19세기 조선 후기 정치와 사회를 배경으로 초기 천주교회의 성장과 박해, 순교의 역사를 재현하였다. 조선 후기의 역사적 사건, 인물을 중심 소재로 삼았던 점에서 역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초기 천주교회의 순교와 선교 등을 조명한 종교 드라마로서의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영상물들은 역사적, 교회사적 기록을 근거로 고증하여 그 내용을 영상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영상으로 재현한 조선의 천주교회사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을 보였을까.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살피기 위해서 동일한 소재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한 영상물에 대한 분석이 긴요하다. 영상 속 천주교회사와 그 해석의 변화를 더불어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의 영상물 가운데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으로 1984년에 상영한 최하원 감독의 “초대받은 성웅들”과 2008년 평화방송 TV의 특별기획드라마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이 있다.18) 대체로 역사적 관점에서 이 두 편의 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 영상 속 최양업 신부의 캐릭터 형상화 및 천주교회사의 재현 방식에 보이는 특징과 변화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3. 최양업 신부 소재 영상물의 내용과 특징

 

1)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 속 최양업 신부와 교회사

 

영화 “성웅들”은 최하원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1984년에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에 앞서 4월 28일에 개봉하였다. 영화의 제작 배경과 목적을 알기 위하여 아래의 기사를 살펴보자.

 

A-1. 최하원 감독(그레고리오, 대치동 본당)이 각본과 감독을 함께 맡아 정열을 쏟아 넣은 <초대받은 성웅들>은 한 시대의 사조와 맥을 차지했던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 후세들에게 폭넓게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 당시 참 진리와 정의·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현실감 있게 조명해 내는데 최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A-2. 또한 <초대받은 성웅들>은 최근 시성으로, 또는 새로운 연구 작업으로 생애와 사상이 다시금 조감되고 있는 김대건 신부(1821∼1846)와 최양업 신부(1821∼1861)의 활동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밀도 있게 표출해 내고 있어 특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김대건 신부의 그늘에서 진솔한 평가를 받지 못해 왔다고 여겨지고 있는 최양업 신부의 사제적 삶을 「땀의 순교」라는 측면에서 깊이 있게 표출, 눈길을 끌게 하고 있다.19)

 

이 글에 나타난 영화의 제작 목적은 두 가지였다. A-1을 보면 이 영화는 첫째, 순교자의 역사를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참 진리와 정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린 천주교 순교자의 정신을 알리고자 하였다. 둘째, A-2에 있듯이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성인의 품위에 오른 김대건 신부를 재조명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최양업 신부의 삶을 스크린에 담고자 하였다.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와 여러 순교자의 삶과 순교 정신을 영화를 통하여 알리고자 하였다.

 

영화의 제목 “초대받은 성웅들”은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최하원 감독이 만든 앞선 영화 “초대받은 사람들”의 제목은 천주의 잔칫상에 초대받은 순교자를 뜻하였다.20) 뒤이어 제작한 “성웅들”은 최양업 신부가 선교 활동에 힘쓰다가 쓰러진 이야기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는 과정을 회상하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두 신부는 순교와 순직으로 천국의 잔치에 초대받은 성웅들이었다. 제작 당시 최양업 신부에 관하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첫 번째 조선인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에게만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 영화는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업적과 죽음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린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화는 기해박해(1839)의 처형장을 배경으로 그 뒤 천주교세의 확산에 관한 해설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B. 1849년에 최양업 신부(유인촌 분)가 귀국하여 페레올 주교를 만난다. 앞으로 선교 활동을 하면서 김대건 신부의 모친을 찾고, 순교자의 행적을 조사하여 보고할 임무를 받는다. 최 신부는 공소를 돌면서 미사와 성사를 집전한다. 신부의 소원은 치명(致命)하는 것이다. 어느 날 주교의 명으로 집권 양반 김좌근을 만나서 입교시키려 하지만 실패한다. 최양업 신부는 동생 신정을 만나서 아버지가 순교한 치명 터를 찾는다. [회상 장면 : 1845년 김대건 신부(김성수 분)가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뒤 관헌에게 붙잡힌다.] 최양업 신부는 사목활동에 나섰다가 경신박해가 시작되자 고 서방 집으로 피신한다. 신심이 두터운 고 서방과 부인 마리아는 포졸에게 붙잡히고 순교를 다짐한다. [다시 회상 장면 : 철종이 김대건 신부를 처형하도록 명한다.] 최양업 신부는 괴질이 도는 마을에 들어가 대세, 병자 성사를 주고 구호 활동에 나선다. [회상 장면 :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다.] 최양업 신부는 장티푸스로 병들어 쓰러져 죽는다.

 

영화의 스토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중심 스토리는 첫째, 최양업 신부의 귀국과 선교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귀국과 공소 순회, 동정녀 발바라 이야기, 세도가 김좌근과의 만남, 경신박해와 고 서방 집으로의 피신, 전염병 도는 마을에서의 사목과 구호, 과로와 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전개하였다. 둘째, 최양업 신부가 살던 시대의 정치사에 관한 부분이다. 철종의 즉위와 수렴청정, 김순성과 종실 이하전의 모반, 안동 김씨와 경신박해 등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셋째,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었다. 부제 김대건의 1845년 귀국과 상해에서의 사제 수품, 다시 귀국과 1846년 체포, 고문과 순교 장면으로 나누어 중간 중간에 삽입하였다.

 

영화에서는 영웅주의적 시각, 민족의 관점이 두드러졌다. 전기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영웅시하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영화의 비디오테이프 겉표지를 보면 “여기 진정한 사제의 모습이, 믿음과 사랑의 모습이, 오늘의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양업 신부의 캐릭터를 이상적 사제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영화에서 그는 김대건 신부의 모친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식구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개인적 감정보다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에 충실한 인물로 보였다. 또한 권세 있는 양반 몇 명을 입교시키면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페레올(Ferreol, 高) 주교의 주장에 반대한다. “페레올 주교님께 고집했던 최 신부의 지론이 옳았다. 양반이란 믿을 수 없었다.” 해설을 통하여 최양업 신부가 교회를 위하여 올바르게 판단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영화에서 최 신부는 세도가 김좌근에게 세계정세를 말하면서 백성 중 대표를 뽑는 나라가 있다고 하고, 쇄국을 고집하면 국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최양업 신부는 신자들에게 헌신적이며, 페레올 주교에게 교회 운영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집권 양반에게는 세계의 근대적 변화에 따른 조선의 대응책을 제시하였다. 그는 교회와 조선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선구적 근대인으로 그려졌다.

 

또한 영화에서는 조국, 겨레, 민족을 강조하는 관점을 보였다.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떠나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인다. “닫혀진 복음의 문, 막혀진 쇄국의 문을 부수고 조국의 미련한 잠 깨우려 이 총명하고 신덕 깊은 사도들은 북으로, 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신학생의 출국을 조국을 위한 일이라 하였다. 조선의 천주교 수용뿐만 아니라 문호 개방, 근대화를 위한 시도였던 것으로 평가하였다. 영화 속 최양업 신부는 ‘민족’, ‘겨레’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한다. 페레올 주교에게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을 말하면서 “민족 전체의 복음화, 그 힘만이 자유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소수의 집권 양반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말하였다. 최양업 신부는 민족, 겨레를 위하여 기도한다. “이 불쌍한 민족에게 구원을 주소서.”, “주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 민족 이 겨레를 불쌍히 여기소서.” 신부의 선교 활동을 조선 민족, 겨레를 위한 일로 표현하였다. 영화 말미에서 김대건 신부의 모친이 최양업 신부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이러한 시각을 좀 더 분명하게 나타냈다. “신부님. 겨레를 부모로 삼으시오. 형제로 받드십시오.” 영화 속 최 신부는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가진다. 들판의 풍악놀이에 흥겨워하였으며 꽹과리를 신명 나게 친다. 고 서방의 처 마리아가 흥얼거리는 가락을 듣고서 “저 민족의 가락 속에 믿음과 용기를 심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전통 음악을 즐기며 그 가락에 교리를 담아 천주가사를 지었던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 영화는 앞선 천주교 영화와 비교할 때 시대적 배경, 정치적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21) 19세기 중후반 철종 때의 정치적 상황과 천주교 탄압의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장면이 많았다. 영화에는 철종과 순원왕후(순조 비)를 비롯하여 안동 김씨 세도가 김병기 · 김좌근 · 김문근과 종실 이하전, 풍양 조씨인 조성하, 천주교도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 김순성 등이 등장하였다. 남자 성우의 목소리를 통하여 철종의 즉위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이하전과 김순성의 몰락 등에 관하여 해설하였다. 영화를 보면 임태영 등이 주동이 되어 경신박해를 일으켰다. “안동 김문은 천주교를 보호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하여 임태영의 박해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김순성 모반 사건 이후 안동 김씨가 방조하여 박해가 일어난 것으로 묘사하였다.

 

다음으로 영화에서 천주교 신자의 사회적 성격을 어떻게 재현하였는지를 살펴보자. 영화에 등장하는 천주교 신자로는 교리문답을 외우지 못하는 할머니, 동정녀 발바라, 정수련 글라라, 고 서방네 가족 등이 있었다. 이들은 신심이 두텁고 순교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발바라는 최양업 신부의 편지에서 소개한 여성이었다.22) 그녀는 혼인을 강요하는 조선의 사회에서 동정을 지킨 여성이었다. 극 후반부의 고 서방 가족은 박해 속에서 대를 이어 순교를 바라는 신자 집안이었다. 영화 속 고 서방은 부모가 순교한 뒤 고향을 떠나 산골에서 처, 어린 자녀와 살며 신앙을 지킨다. 그는 평소 “천주께 감사”, “주님의 종입니다.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며 일한다. 고 서방과 그의 처는 포졸에게 잡혀 감옥에서 만난다. 고 서방 부부는 어린 자녀에게 이미 천주님 품속 영생을 가르쳤다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우리 다 위주치명 잘 참아 받읍시더.” 그 아들과 딸도 치명을 다짐하며 기도한다. 이들 가족은 순교를 바라며 신앙을 지키는 신자를 대표하였다.

 

사람들이 천주교를 신앙한 동기에 관하여는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글을 알지 못하는 영구의 할머니는 세례를 받지 못할까 염려한다. 할머니는 문답을 못 외우지만 10년 넘게 천주를 공경하고 성모에 의탁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내 평생 신부님 두 번째로 뵙는 기여, 이번 놓치믄 이 할미 죽을 때까지 세 못 받구 지옥마귀 되는 기여.” 그녀는 천국에 가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려 하였다. 내세 지향적 동기에서 천주교를 믿었던 것으로 그렸다. 영화 속 순교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내세 지향을 추구하였던 점을 찾을 수 있다. 고 서방과 그 자녀는 치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6~7세로 보이는 어린 베드로는 순교하면 천당에 가서 쌀밥과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누나도 아빠, 엄마, 신부님, 모두 천당에 갈 것이라 답한다. 내세 지향적 신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말미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죽음을 순교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그렸다. 최양업 신부는 순교의 영광을 누리기를 바랐다. 복사 박말구가 최 신부에게 소원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치명일세. 변문에서 부모님 치명 소식 듣고 내게도 그 영광, 그 은혜 주십사 줄곧 기도하고 있네.” 최 신부는 신앙을 지키려 목숨을 바친 부모와 같이 순교 의지를 가졌다. 영화에서는 김대건 신부가 처형되는 모습과 최양업 신부가 괴질이 도는 마을에서 활동하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장면을 교차하여 보여주었다.23) 이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와 최양업 신부의 순직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려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철종대 정치적 상황과 천주교 금압을 시대적 배경으로 최양업 신부의 선교와 사목 활동을 재현하였다. 이 영화는 영웅과 민족을 중심으로 인물을 조명하는 관점이 두드러졌다. 최양업 신부를 이상적 사제의 모범으로 그렸다. 그의 활동을 조국, 겨레, 민족을 위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천주교 신자는 신심이 두텁고 순교를 바라는 모범적 신앙인이었다. 이들은 내세 지향적 동기에서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영화 속 최양업 신부의 순직은 순교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그려졌다.

 

2) 드라마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 속 최양업 신부와 교회사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 텔레비전 사극으로는 “탁덕 최양업”이 있었다. 2008년 11월에 평화방송 TV에서 3부작으로 방송하였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C-1. … (최양업 신부의 다섯 번째 편지, 1847년 9월 30일) 최양업 신부가 쓴 서한을 접한 우리는 그의 확고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박애 정신, 지칠 줄 모르는 의지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겸손한 성품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게 된다. 누구보다도 조선과 조선의 백성들을 사랑하며 조선 땅에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최양업 신부. 백여 년 전 그가 심었던 믿음의 씨앗이 지금껏 이어져 와 이렇게 우리들 가슴에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C-2. 드라마는 수많은 탄압과 고통 속에서 속칭 ‘천주학쟁이’로 억압받으면서까지 학대받던 교우들을 위한 모범적인 땀의 증거자인 최양업 신부의 숭고한 신앙적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참다운 신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고자 한다.24)

 

먼저 C-1에 있듯이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정한 배경을 밝혔다. 최양업 신부의 확고한 믿음과 인간애, 강한 의지, 겸손한 성품 등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C-2를 보면 최양업 신부의 삶을 재현하고 현대인에게 참다운 신앙의 의미를 재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진정한 믿음에 대하여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최양업 신부의 삶을 영상에 옮겼던 것이다. 이 드라마는 최양업 신부의 신앙을 통하여 종교적 삶에 통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점에 의미가 있다.

 

이 사극의 줄거리를 보면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최양업 신부의 사목, 선교 활동과 그 과정에서 만난 천주교인의 신앙생활과 박해 등을 보여주었다. 그 대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D. 1849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최양업 신부(원기준 분)가 국경을 넘어 귀국한다. 신부는 복사(최형 베드로, 박경득 분)와 함께 교우촌을 순방하며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푼다. 백정(개똥 베드로, 장정국 분), 할머니 등 글을 모르는 신자를 위해 한글을 가르치며 천주가사를 부르게 한다. 어느 날 백정 개똥은 천주학 서적을 소지한 혐의로 잡혀가며, 그 아내와 아들이 양반에게 죽임을 당한다. 가족을 잃은 백정 개똥은 분노하며 가족을 죽인 양반을 살해하여 체포된다. 세월이 흘러 최양업 신부는 동생 우정과 신정의 혼배 성사를 집전하며 순교한 부모를 회상한다. 밤낮으로 산길을 걸으며 신부는 서한으로 선교 활동에 관하여 스승 신부에게 전한다. 경신박해가 일어나 최 신부는 죽림굴에 몸을 숨긴다. 신부를 피신시키고 포졸에게 강간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김아가다(이연경 분)가 죽는다. 신부는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병자 성사를 주며 구호 활동에 나선다. 1861년 6월에 다시 선교 활동에 나선 최양업 신부는 고열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길 위에서 쓰러진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몇 개의 큰 분절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최양업 신부의 귀국과 교우촌 순방, 둘째, 백정 개똥 베드로 가족의 등장과 체포, 셋째, 최 신부 동생들의 혼인과 부모의 순교에 대한 회상, 넷째, 천주교 박해와 김아가다의 죽음, 다섯째, 전염병 도는 마을에서의 선교 활동과 죽음 등으로 묶어볼 수 있다.

 

사극에서는 최양업 신부를 영웅적 인물로 정형화하지 않았다. 사목 활동에서 겪는 어려움과 인간적 한계를 보여주었다. 극의 전반부에서 백정 개똥이 가족이 교우촌을 찾는다. 그는 천주교 서적을 소지한 혐의로 관아에 잡혀간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한 양반에 의해 아들과 아내까지 잃는다. 실의에 빠진 백정 개똥은 교우촌의 신자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며 갈등을 빚는다. 최 신부는 백정을 위로하며 힘이 들수록 예수님을 떠올리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개똥의 마음을 돌리게 하지 못한다. 복사는 최 신부에게 말한다. “신부님도 하실 만큼 다 하셨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순 없잖아요.” 백정은 가족을 죽게 한 양반을 낫으로 찔러 살해한다. 드라마 속 최 신부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으며 그의 선교 활동에도 한계가 있었다.

 

극의 후반부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는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을 피하여 공소를 떠난다. 신부를 찾기 위하여 공소를 뒤지고 신자를 잡아가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산길로 접어든다. 이때 신자들을 버려두고 혼자 도망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부의 피신을 돕던 김아가다25)가 막아선다. “신부님이 이대로 잡혀서 순교하게 되시면 사람들의 절망이 더 크다는 것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유일한 조선인 신부를 만나서 복음을 듣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신자를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최 신부는 신자를 버려둔 채 피신하며 마음속으로 갈등한다. 그러면서 페레올 주교가 한 말을 떠올린다. “끝까지 살아남아 이 가련한 조선 땅에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한다.” 김아가다의 말도 떠올린다. “와 저분들이 목숨 걸고 신부님을 지키겠습니까. … 신부님은 단 한 분뿐인 조선인 사제가 아니십니까.” 최양업 신부는 잡혀서 순교하는 일과 살아남아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일 사이에서 고뇌하였다.

 

사극에 등장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도 영화 “성웅들”에서처럼 이상적 종교인의 면모만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속 천주교도로는 복사 최형 베드로, 백정 개똥이 베드로 가족, 절골 교우촌의 회장과 신자들, 최양업 신부의 부모와 동생, 김아가다 등이 있다. 이들은 두터운 신심을 보이지만 때때로 갈등한다. 천주교 신앙을 버린 인물도 있다. 드라마 속 백정 개똥은 앞서 보았듯이 체포와 고문, 가족의 죽음을 겪는다. 그는 천주를 몰랐으면 자신이 잡혀가지 않았을 것이라 소리친다. 교우촌의 신자들은 백정 개똥이 공소 회장을 밀고한 것 같다면서 그 집으로 몰려간다. 백정은 손에 도끼를 들고 다른 신자들은 낫을 들고 맞선다. 영상에 나타난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의 위험속에서 서로 갈등하기도 하였고, 신앙을 지키지 못하기도 하였다.

 

또한 회상 장면을 통하여 기해박해 때 순교자의 행적을 재현하였다. 최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이 포도청에서 고문을 당하고 순교한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젖먹이를 보며 배교한 뒤 괴로워한다. 둘째 아들 야고보가 말한다. “어머니께서 예전에 그러셨잖아요. 순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기쁨이요, 영광이라구요.” 이성례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순교한다. 박해 때 고문을 받고 배교한 사람도 있었다. 최 신부의 첫째 동생 야고보가 쓰러진 틈에 포졸들이 강제로 배교서약서에 수결을 한다. 이처럼 드라마에서는 순교자와 배교자, 교우촌의 여러 신자와 그들의 갈등을 드러내 보였다. 다양한 신자들의 면모를 스토리에 담았다.

 

당시 사람들이 천주교를 신앙한 배경에 관하여는 인간의 평등에 이끌렸던 것으로 그렸다. 백정 가족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점을 잘 살필 수 있다. 백정 개똥은 양반에게서 핍박받는다. 어느 날 그는 가족과 함께 교우촌의 미사에 참례한다. 최 신부는 “누구라도 천주님을 따르는 데 어찌 신분의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 천주 안에서 우리 모두 평등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천민 출신의 백정 가족은 다른 신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미사에 참석한다. 교회 밖에서 천대받던 백정이 교우촌 신자들과 어울려 천주가사를 부른다. 이를 통하여 하층민 신자가 입교하였으며 그 동기는 인간의 평등에 있었던 점을 보여주었다.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인간 평등의 정신에 이끌려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면 최양업 신부가 활동한 1850년대부터 1860년 초 철종대 정치와 사회에 관하여 드라마는 어떻게 재현하였을까. 이 사극에서는 19세기 중반 정치와 사회에 관한 직접적 묘사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국왕과 집권 세력이 누구였는지 나타내지 않았다. 양반이 천민을 핍박하는 신분제 사회이며,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시대라는 점을 막연하게 보여주었다. 천주교 박해에 관하여는 지방관이 방을 붙여서 신자를 신고하도록 하는 장면이 있었다. 복사가 박해를 걱정하자 최양업 신부는 “조정에서 또 당파싸움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라고 간단히 말한다. 뒤이어 해설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경신박해’에 관하여 사전에 보이는 내용을 낭독한다.26)

 

드라마에는 19세기 교우촌의 일상과 천주교 전례,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사극 속 교우촌은 충청도 진천 절골에 있다.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며 생활한다. 이곳에서 전통 방식의 라틴어 미사를 재현하였다. 예수의 성화를 붙인 벽 쪽에 제대를 마련하여 미사를 올린다. 성체성사에서 신자들이 꿇어서 입으로 영성체를 한다. 최양업 신부는 제병기를 이용하여 면병을 만들어 성사를 준비한다. 최양업 신부가 세례, 혼배, 병자 성사를 집전하는 모습도 나왔다. 전통 복식을 갖춘 동생들(최우정과 신정)과 신부(송아가다 자매)의 혼배 성사를 주례한다. 글을 모르는 신자에게 최 신부가 한글을 가르치며 신자들이 천주가사를 부른다. 백정의 아들 요한은 신부가 선물한 작은 성모상을 간직하며 기도한다. 사극의 이러한 장면들은 19세기 천주교회의 전례 의식,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는 미시적 관점에서 천주교회의 문화사를 살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1859년 말부터 시작한 경신박해를 피하여 최 신부는 경상도 남쪽의 죽림에 피신하였다. 극의 후반부 최양업 신부는 박해의 와중에 밤을 틈타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고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최양업 신부는 죽림의 동굴 안에 피신한 동안에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신자들을 찾아다닌다. 또 역병이 도는 마을에 혼자 들어가 병자 성사를 주며 구호 활동에 나선다. 땀이 범벅이 되어 돌림병으로 죽은 시체를 모으고 병자를 옮기며 쓰러진 사람들에게 죽을 떠먹인다. 기진맥진한 최양업 신부는 땀을 흘리며 쓰러진다. 이어서 ‘1861년 6월 15일’이라는 자막이 뜬다. 이날은 최양업 신부가 선종한 날이었다. 최양업 신부는 고열에 땀을 흘리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긴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복사를 뒤따라 걷다가 길 위에서 쓰러진다. 영상 속 그의 순직은 땀의 증거자를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드라마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에 나타난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조선 천주교회사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드라마에서 최양업 신부는 쉬지 않고 선교의 길에 나섰다. 그는 순교와 선교의 사명 사이에 갈등하기도 하였다. 극에 등장하는 신자들은 두터운 신심을 보이지만 때로 갈등하며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영상을 통하여 교우촌의 형성, 전통 방식의 미사와 성사 등 천주교 전례, 여러 신자들의 생활상 등을 담았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문화사, 미시적 생활사를 살필 수 있었다.

 

 

4. 영상 속 시대착오와 천주교회사 변화상

 

앞에서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과 드라마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에서 재현한 최양업 신부, 철종 때의 역사, 천주교회사 등을 검토하였다. 두 영상물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토대로 만든 역사 드라마였다. 사극은 제작자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뼈대를 세우며, 허구적 상상에 기대어 살을 덧붙여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실 착오, 시대착오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역사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서로 다른 역사상을 재현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두 영상물에 보이는 시대상과 역사상 재현에 나타난 한계와 변화를 살피고자 한다.

 

최양업 신부에 관한 앞의 영화와 순교 사극에서는 19세기 중엽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천주교회사를 재현하였다. 대체로 허구적 구성보다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두어 스토리를 구성하였다. 객관적 역사를 재현한 점을 내세우기 위하여 해설, 자막, 서한의 낭독과 같은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27) 그런데 영상에서 재현한 내용이 실제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착오가 있었으며 영상 속 허구적 설정이나 가상 인물이 당대 현실을 무시한 시대착오적 설정인 경우도 있었다.

 

첫째, 경신박해의 배경에 관하여 영화 “성웅들”에서는 김순성의 모반과 연결하였다. 김순성은 천주교회 내부에서 활동한 밀고자였다.28) 영화 속 김순성은 종실 이하전과 손잡고 천주교 박해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역을 꾀한다. 안동 김씨는 천주교를 보호한다는 정치 공세를 피하고자 박해를 돕는다. 권력투쟁 과정에서 경신박해가 일어난 것으로 그렸다. 하지만 역사 속 경신박해는 1859년(철종 10) 말부터 1860년에 일어났으며, 김순성 역모 사건은 그 뒤 1862년(철종 13) 7월에 일어났다. 김순성 등이 역모로 처형되는 과정에서 주모자들이 이하전을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무고를 받았다. 이 역모는 집권세력이 종실 이하전 등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었다.29) 영화에서처럼 김순성의 모반 사건을 경신박해와 직접 연결하여 보기 어렵다.

 

드라마 “탁덕 최양업”에서는 경신박해의 배경을 당쟁 때문으로 간략히 표현하였다. 1859년 간월 지방에서 최양업 신부가 천주교도를 신고하라는 수령의 방을 본다.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최 신부는 복사에게 “아무래도 조정에서 당파싸움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박해의 직접적 계기가 당파 간의 대립이었던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박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정치적 갈등, 권력을 잡기 위한 정파의 다툼은 어느 시기에나 있었다. 19세기 중엽에만 당파 싸움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경신박해가 당쟁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30) 드라마에서는 박해의 배경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풀이하였다. 이 사극을 통하여 조선 사회의 지배 질서와 성리학적 이념, 의례에 도전함으로써 천주교가 박해받은 측면을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영화 “성웅들”에는 최양업 신부가 세도가 김좌근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는 허구적 설정으로 가상 역사에 해당한다. 집권 양반을 입교시키면 종교의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페레올 주교의 명에 따라서 최 신부가 김좌근의 집을 찾는다. 이 만남에서 최양업 신부는 조선의 정치와 양반제의 문제점을 말한다. 이러한 설정의 모티브는 페레올 주교가 양반 신자에 의지하는 것을 비판한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1) 영화 속 설정은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안동 김씨가 집권하여 천주교에 대한 금압이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천주교 신앙을 공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세도가와 사제가 밀담을 나누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당대의 역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영상 속 시대착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 속 가상 인물로 정무관의 딸 수련 글라라가 등장한다. 그녀는 부모를 천주교인이라 밀고하고 자신을 겁탈한 김순성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남장을 하고 다닌다. 부모의 원수를 갚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도령 베드로로 가장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본래 최신정(최양업 신부의 넷째동생)과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녀는 최 신부를 만난 뒤 마음을 고쳐서 최신정과 혼인한다. 남장한 여성 천주교도는 드라마의 재미를 위하여 탄생하였다. 남녀 차별의 조선 사회에서 등장하기 어려운 시대착오적 인물이었다. 더욱이 실제 최신정과 혼인한 여성은 송아가다로 알려졌다.32) 영화 속 정수련은 역사적 사실이나 시대적 배경과 어긋난 상상 속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셋째, 영화 “성웅들”과 드라마 “탁덕 최양업”에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거나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사실 착오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속 최양업 신부는 귀국 후 형제들도 만나지 않고 사목 순방에 나선다. 그가 가족과의 만남보다 공적 임무의 수행에 힘쓴 사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양업 신부가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 페레올 주교를 만나고 그다음 한덕동 교우촌으로 가서 중백부와 동생을 만났다.33) 가족과 만난 뒤 사목 순방 길에 올랐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경신박해 때 천주교 신자를 찾아내기 위하여 성화를 밟고 지나가도록 한다. 포졸들이 고 서방의 처에게 성 모자상이 그려진 성화 족자를 내보이며 침을 뱉고 발로 밟게 한다. 이 장면은 일본 에도시대에 기독교도를 색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실제 조선 후기 교회사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장면이다. 또한 드라마에 보이는 한글 배교 서약서는 실제 역사에서 쓰이지 않았다. “나는 천주를 믿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다시 믿을 시에 극형을 받으리라.” 최 신부의 동생 야고보가 의식이 없을 때 포졸이 칼로 손에 상처를 내서 강제로 서약서에 수결을 한다.34)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에서 한글 배교 서약서를 사용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상에서 영상에 보이는 천주교회사의 몇 가지 시대착오와 사실 착오, 한계와 문제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역사 그 자체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영상을 통한 천주교회사와 역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이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어서 영상 속에 나타난 역사상을 비교하여 보자. 두 영상물에서 최양업 신부의 성격,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역사상, 천주교회사를 재현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업적을 조명하는 관점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영화 “성웅들”은 영웅주의 시각에서 최 신부를 이상적 사제의 모범이며 지혜와 재능이 뛰어난 인간상으로 그렸다. 영화 속 최양업 신부는 조선 교회와 정치의 앞날을 위하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영웅적 인간상으로 비추어졌다. 이에 비하여 드라마 “탁덕 최양업”에서는 최 신부의 내적 갈등이나 고민, 선교 활동의 한계를 비추었다. 그를 인간적 면모를 가진 고뇌하는 사제로 묘사하였다. 드라마에서 최 신부는 백정 신자 개똥이 신앙을 버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경신박해 때 최 신부는 자신의 피신을 위하여 신자들이 희생한 일로 갈등하며 괴로워한다. 이러한 변화는 영상 속의 주인공을 영웅시하는 시각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었다.

 

둘째, 최양업 신부가 무지한 신자들에게 좀 더 쉽게 교리를 전하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었다. 두 영상에서는 최 신부의 업적으로 천주가사를 만들어 보급한 이야기를 실었다. 영화 “성웅들”을 보면 최양업 신부는 전통문화에 관심이 높다. 고 서방의 처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천주가사를 만들 것을 결심한다. “바로 저것, 저 한 서린 가락에 자연스레 쉽게 교리를 심은 것이 있어야 한다.” 민족의 전통 가락 속에 교리를 담아서 믿음과 용기를 심고자 한다. 드라마 “탁덕 최양업”에서는 최 신부가 글을 모르는 노인, 백정 신자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친다. 한글이 교리를 익히는데 유용하다는 점은 최양업 신부가 1851년에 쓴 서한에 있었다.35) 쉬운 한글 덕분에 산골에서도 신자들이 빨리 천주교 교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으로 썼다. 천주가사는 가사체 한글 교리서의 기능을 하였다. 앞의 영화는 민족의 관점에서 최양업 신부가 전통문화와 가락에 착안하여 천주가사를 만든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에 비하여 드라마에서는 최 신부가 한글의 유용성에 대한 자각으로 천주가사를 저술한 것으로 보았다.

 

셋째, 천주교 신자의 입교 동기, 신앙의 특징을 조명하는 관점에 변화가 있었다. 영화 “성웅들”의 신자들은 대체로 종교적 열성이 강하며 순교를 결심한 사람이다.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고 서방 가족이 이를 대표하였다. 고 서방과 그의 처는 순교를 준비하며 어린 자녀에게도 이를 가르친다. 순교로써 영생을 선택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천당에 가려는 내세 지향적 동기에서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그린다. 영구의 할머니는 세례를 받지 못하여 지옥 마귀가 될까 염려한다. 최 신부에게 자신의 영혼을 구해줄 것을 애원한다. 천당에 오를 것이라는 내세지향적 동기에서 천주교를 믿었던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에 비하여 드라마 “탁덕 최양업”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이끌려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비추었다. 교우촌을 찾은 백정 가족에게서 이를 살필 수 있다. 천민 백정인 개똥과 그의 처, 아들 요한이 미사에 참례하며 교우촌의 신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 가족을 맞으며 최양업 신부는 천주 안에서 모두가 평등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양반에게 멸시를 받던 백정 가족은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는 최양업 신부의 말에 감동하며 교우촌 신자들과 어울린다. 극의 전개를 볼 때 하층민 신자들이 인간 평등의 정신에 이끌려 천주교를 신앙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넷째, 영화 “성웅들”은 천주교회의 동향을 최양업 신부가 활동하던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하여 스토리를 구성하였다. 영화에는 여러 정치인이 등장하였다. 페레올 주교를 돕는 김정균(김좌근의 조카), 천주교도를 밀고한 김순성, 주교의 명을 받고 최양업 신부가 만난 세도가 김좌근, 천주교 금압에 미온적인 안동 김씨에 대항하며 권력을 잡으려는 이하전, 조성하 등이 있었다. 이에 비하여 사극 “탁덕 최양업”에서는 정치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 대신에 교우촌에서 신자들의 미사, 세례 성사와 혼배 성사, 신자들이 소지한 성물 등을 보여주었다. 천주교의 전례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이처럼 영상에서 재현한 천주교회사, 역사상의 변화 요인과 그 의미는 무엇일까. 두 영상물은 실제의 조선 후기 인물과 사회, 종교를 중심 소재로 설정하였다. 여기에는 영상을 제작하고 상영한 시기의 사회 문화 및 시청자 대중의 역사, 종교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84년에 제작한 영화 “성웅들”에서는 영웅주의 시각과 민족 전통을 강조하는 관점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 사극영화에서 두드러졌다.36) 이와 같은 경향을 이어받아 최양업 신부를 성웅이라 일컬은 영화가 탄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 신부가 민족의 전통 가락을 듣고 천주가사를 만드는 내용은 1980년대 전통문화를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영웅과 민족,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각에 따라 영화는 역사적 인물을 평면적 캐릭터로 형상화하였다. 주인공의 활동과 업적을 나열식으로 전개하며 내면적 갈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뒤 역사 이해에서 영웅 중심의 해석과 민족 담론이 점차 퇴조하였다. 영웅, 민족을 중시하는 시각은 역사와 종교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해칠 수 있다. 영웅을 강조하면 교회를 구성한 일반 신자의 역할을 떠올리기 어렵다. 조선의 백성을 민족으로 상상하면 신자 개개인의 삶이 가지는 다양한 면모를 놓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일반민의 삶을 강조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저술이 유행하였다. 최근의 역사 이해는 정치사 중심에서 주변부 사람들의 삶이나 개인의 일상생활을 조명하는 문화사, 미시사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역사 이해의 변화는 사극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최양업 신부에 관한 천주교회사 연구의 활성화가 새로운 최양업 사극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1990년대 이후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역할에 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최 신부가 남긴 서한집을 번역하고 편집한 서적이 출간되었다.37) 이를 바탕으로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활동, 영성에 관한 연구 성과도 집적되었다.38) 서한집의 내용은 최양업 신부의 삶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이러한 자료와 연구 성과는 최양업 신부의 삶을 영상 속에 좀 더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다양한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에 방송한 순교 사극 “탁덕 최양업”은 미시적 관점에서 역사 속 개인의 활동과 천주교도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39) 개인의 다양한 면모와 내적 갈등, 고뇌를 드러내었다. 최양업 신부는 영화 속 정형화된 성웅에서 사극 속 입체적 성격을 띤 개인화된 인물로 진화하였다. 교우촌의 여러 신자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신앙의 문제를 고민하였다. 드라마 속 가상 인물인 백정은 평등사상에 이끌려 천주교를 신앙하였다. 영화 속 천주교도의 일반적 신앙 동기는 내세 지향에 있었다. 사극 속 천민은 현실의 신분 차별을 넘어 천주교회 안에서 인간 평등의 가치를 찾은 것으로 그렸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사극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영상에 옮기지 않고 개인의 삶과 문화사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한 것과 연결하여 볼 수 있다. 2000년대 텔레비전 사극과 영화가 전성기를 맞았다.40) 사극의 소재가 다양해졌으며, 미시적 생활사를 보여주는 볼거리나 주제가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평화방송 TV의 순교 사극 시리즈도 이러한 흐름과 관련 연구 성과의 축적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5. 맺음말

 

지금까지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관련 영상물 가운데 최양업 신부를 소재로 한 영화와 텔레비전 사극을 검토하였다.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1984, 최하원 감독)과 평화방송 TV의 순교 사극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2008, 남진우 연출)에서 재현한 최양업 신부의 성격과 천주교회사의 특징, 영상 속 시대착오와 천주교회사 재현의 변화상을 분석하였다.

 

두 영상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점은 최양업 신부를 길 위의 사제, 땀의 증거자로 그렸다는 것이다. 영상 속 최양업 신부는 밤낮으로 산길, 들길, 눈길을 걷고 또 걸으며 공소를 돌고 신자를 만난다. 영화 “성웅들” 을 보면 최 신부가 “조선 천지에 나만큼 걸은 사람이 있겠나.”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복사가 쓰러진 최양업 신부의 갓을 벗기자 햇볕에 그은 구릿빛 얼굴 위에 휜 갓끈자국이 선명하다. 드라마 “탁덕 최양업”을 보면 신부가 걷는 장면에서 테마음악으로 <나는 가리라>, <나는 걸어가네> 등이 흐른다. 주제가 <나는 걸어가네>에서 “오늘도 나는 걸어가네, 주를 바라보며, 주님 가신 길, 그 길을 따라가리라”라는 가사가 나온다.

 

두 영상의 후반부를 보면 최양업 신부가 전염병이 돈 마을에서 활동하다가 쓰러진다. 드라마 “탁덕 최양업”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다음의 기록을 화면에 인용한다.41)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2년간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성공적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 그러다가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영상 속 최양업 신부는 땀의 증거자로 생을 마쳤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는 천주교회사에서 최양업 신부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1984년 영화 “성웅들”은 처음으로 최양업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 활동과 역할을 일반 대중에게 알린 영화로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는 철종 때 정치사를 배경으로 천주교의 교세 확장과 박해 과정에서 최양업 신부의 활동을 조명하였다. 민족과 교회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성웅으로 형상화하였다. 그 뒤 최양업 신부에 관한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그의 삶과 천주교회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역사 이해에서 영웅주의, 민족 담론이 희미해지면서 미시적 생활사와 문화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008년 평화방송 TV의 사극 “탁덕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도의 신앙생활과 최양업 신부의 역할을 미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통하여 시청자는 최양업 신부와 당시 신자들의 종교적 삶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

 

 

참고 문헌

 

1. 영상자료

“초대받은 성웅들”(1984, 최하원 감독) ; 비디오테이프 상 · 하(140분, 삼화프로덕션, 1989년 4월 제작).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2008, 남진우 연출) ; DVD(115분, 평화방송, 2009년 2월 제작).

 

2. 논문과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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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문과 누리집

《가톨릭신문》,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두산백과사전 http://www.doopedia.co.kr

평화방송 TV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 홈페이지 http://web.pbc.co.kr/CMS/tv/program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PD저널 http://www.pdjournal.co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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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걸, <한국 현대 영화와 가톨리시즘>, 《한국사회와 복음선교(오태순 신부 은경축 기념논문집)》, 도서출판 빅벨, 1994 ; 신광철, <한국 가톨릭영화의 회고와 전망>, 《부산교회사보》 28, 부산가톨릭대학교 부산교회사연구소, 2000 ; 신광철, <한국 종교 영화의 현황과 전망>, 《한국종교》 28,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04.

 

2) 신광철, <한국 종교 영화 작가론(1) - 최하원 감독의 영화 세계와 그의 기독교 영화>, 《한국종교사연구》 11. 2003 ; 김수남, <최하원 감독의 작품세계론 - 신앙심으로 만드는 영화 ->, 《청대학술논집》 20, 2013.

 

3) 백병근, <영화 ‘성 김대건 신부’의 제작 과정과 내용 검토>,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 논총 : 한국 천주교사 연구의 성찰과 전망》,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4) 박찬식, <‘이재수의 난’ : 사실성과 상징성 사이의 표류>, 《역사비평》 48, 1999 ; 조인숙, <역사의 영화적 복원 - ‘이재수의 난’의 재해석>, 《영화연구》 15, 1999.

 

5)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천주교회사》 하,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2000(6판), 176쪽과 327쪽.

 

6)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대표적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옥희, 《최양업 신부와 교우촌》, 학문사, 1983 ; 정양모, <최양업 신부의 사목과 사상>, 《한국 가톨릭 문화 활동과 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 청주교구 배티 순교 성지 편,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영성》, 천주교 청주교구, 1999 ; 류한영 · 차기진, 《교우촌 배티와 최양업 신부》, 양업교회사연구소, 2000 ;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천주가사》, 양업교회사연구소, 2003 ; 《땀과 꿈의 사제 최양업》, 땀과 순교자 최양업 신부 서품 160주년 및 사제의 해 기념 학술 포럼, 2009. 특히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업적 전반에 관하여는 다음의 두 글을 참조할 수 있다. 차기진,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선교 활동의 배경>, 《교회사연구》 14, 1999 :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과 영성》, 1999 ; 양인성,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선교 활동>, 《한국천주교회사》 3, 제5장 제2절,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7) “지성탑”(1948)은 필름, 시나리오 등 주요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며 간략한 줄거리만 알려져 있다. 대원군 집권기 천주교도 이향희가 체포되자 그녀를 사랑하는 방구봉이 구명운동을 벌이는 스토리이다(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8) “구원의 정화”(1956)는 경향신문에 연재한 박계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필름과 시나리오 등이 남아있지 않다. 그 줄거리는 예조판서의 딸 아심이 시메온(윤 베드루 신부의 복사)을 사랑하지만 거절당하자 그를 당국에 고발하여 형을 받게 하는 내용이다(<영화 ‘구원의 정화’ 촬영완료 내월에 상영예정>, 《한국일보》 1955년 11월 14일자 ; <천주교도의 피어린 순교사 영화 구원의 정화 완성>, 《경향신문》 1956년 1월 6일자).

 

9) “자주댕기”(1968)는 천주교도 동은이 결혼 첫날 밤 체포되어 호송 도중 백자도 수령의 딸과 강제로 혼인하며, 동은과 결혼한 희순은 포도대장에게 겁탈 당한 뒤 천주교를 신앙하는 내용이다(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필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시나리오가 남아있다.

 

10) “새남터의 북소리”(1972)는 이지연 대감의 서자 이민서가 천주교인인 다련을 사랑하다가 둘 다 잡혀서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현재 시나리오가 전한다.

 

11) “개화백경”은 이규태 원작의 단막극으로, 그 가운데 “테레갈라와 오지네”의 내용은 3대 독자와 결혼한 동정녀 테레갈라가 천주교 탄압으로 순교하는 내용이다(, 《경향신문》 1971년 8월 7일자).

 

12) 최하원 감독은 영화로 읽는 천주교회사 3부작을 기획하였다. 그 1부 “초대받은 사람들”은 한국 천주교의 수용부터 1839년 기해박해까지를 2부 “초대받은 성웅들”은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행적을 중심으로 제작하였다. 마지막 3부 작품은 병인박해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 하였다(<80년대 초대받은… 시리즈 2편 연출한 최하원 감독>, 《평화신문》 2002년 8월 18일자). 2002년 7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독실한 믿음의 감독’이란 제목으로 최하원 감독 회고전을 개최한 바 있다. “초대받은 사람들”과 “초대받은 성웅들”은 비디오로 제작되었으며, 앞의 “초대받은 사람들”은 DVD로도 제작하였고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에서 VOD로 감상할 수 있다.

 

13) 백병근, 앞의 논문, 2014 참조.

 

14) “소명”(1984)은 천주학 서적을 탐독하여 교리를 깨친 이벽의 일대기로서 초기 천주 교회사를 담았다. 이 영화는 1984년에 처음 상영하였으며, 1987년에 서진프로덕션에서 비디오로 출시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서 VOD로 시청할 수 있다.

 

15) <대형 TV특집극 3편 내달 첫선>, 《경향신문》 1988년 11월 29일자 ; <3부작 드라마 ‘만남’ M-TV, 오늘부터 방영>, 《한겨레신문》 1988년 11월 30일자 ; , 《경향신문》 1988년 12월 5일자.

 

16) <대형 TV특집극 3편 내달 첫선>, 《경향신문》 1988년 11월 29일자.

 

17) “이재수의 난”(1999)은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를 원작으로 한 한불합작영화이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 영화는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출시되었다.

 

18) “초대받은 성웅들”(1984)은 1989년 삼부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비디오테이프(상 · 하, 140분, 1989년 4월 25일 제작)를 자료로 삼았으며,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2008)은 2009년 평화방송에서 편집한 DVD(115분, 2009년 2월 제작)를 자료로 하였다. 앞으로 편의상 영화 “초대받은 성웅들”은 “성웅들”로 줄여서 표현하며 평화방송 TV의 사극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은 “탁덕 최양업”이라 줄여서 쓰겠다.

 

19) <2백주 映畵 <초대받은 성웅들> 20일경부터 全國서 동시 개봉>, 《가톨릭신문》 1984년 4월 8일자.

 

20)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앵베르 주교가 치명 즉 순교를 바라는 이항주(우의정 이지연의 서자, 정하상의 누이 정은의 정혼자)에게 영세를 주면서 말하였다. “우리 축복받은 날 천주의 잔칫상에 한 형제를 더 초대합니다.” 이를 볼 때 영화 제목의 초대받은 사람들은 목숨을 바쳐 순교한 사람들을 상징하였다.

 

21) 이전까지 선보인 영화들은 시대적 배경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천주교를 신앙하는 젊은 남녀 사이의 애정, 그 사랑의 갈등 요소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그리데 그쳤다. 예컨대 “자주댕기”(1968), “새남터의 북소리”(1972) 등이 그러하다. 시나리오를 보면 앵베르 주교가 등장하지만 천주교 박해를 정치적 상황과 연결해 볼 만한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장면이나 묘사가 거의 없었다.

 

22) 1850년에 최양업 신부가 쓴 7번째 서한에 소개되었다(청주교구 배티성지 · 양업교회사연구소 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천주교 청주교구, 2009, 68~78쪽).

 

23) 영화 속 최양업 신부가 괴질이 번진 마을에서 구호 활동에 나서는 과정에서,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순간이 교차되는 점에 주목한 연구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영화가 ‘피의 순교자’ 김대건 신부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삶에 대한 전기적 성찰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았다(신광철, <한국 종교 영화 작가론(1)>, 《한국종교사연구》 11, 2003, 56~57쪽).

 

24) 드라마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의 공식홈페이지(http://web.pbc.co.kr/CMS/tv/program) ; DVD 케이스 뒤 표지의 안내 글.

 

25) 드라마 속 김아가다는 최양업 신부가 1860년에 쓴 19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아가타를 본보기로 한 등장인물이었다(청주교구 배티성지 · 양업교회사연구소 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천주교 청주교구, 2009, 194~196쪽).

 

26) 해설을 통하여 박해 시기, 주동자, 원인과 경과 및 결과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이는 두산백과사전(http://www.doopedia.co.kr)의 표제어 ‘경신박해’에 관한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27) 영화 “성웅들”에서는 남자 성우 목소리의 해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기해박해 뒤 천주교회의 동향, 철종대 정치적 상황, 최양업 신부의 활동에 대한 평가 등에 관한 해설이 있었다. 사극 “탁덕 최양업”에서는 최양업 신부가 서한을 낭독하는 방식을 이용하였다. 해설, 자막, 편지 낭독 등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효과를 내었다. 이를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었다.

 

28) 김순성의 천주교 신자 밀고에 관하여는 최선혜, <기해박해>, 《한국천주교회사》 3,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27~29쪽과 32쪽.

 

29) 종실 이하전은 헌종이 죽은 뒤 왕위 계승권자 후보의 한 사람이었다. 철종이 즉위한 뒤 이하전은 감시와 견제를 받았다. 1862년 김순성 등의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집권세력 김좌근 등은 이 사건을 그를 제거할 기회로 삼았다. 이하전이 김순성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무고를 바탕으로 그를 유배, 사사하였다(오수창, <세도정치의 전개>, 《한국사》 32, 국사편찬위원회, 1997, 279~280쪽).

 

30) 경신박해에 관하여는 방상근, <교회의 정비와 발전>, 《한국천주교회사》 3, 2010, 214~215쪽 참조.

 

31) <1857년 9월 15일 14번째 서한>, 청주교구 배티성지 · 양업교회사연구소 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천주교 청주교구, 2009, 156~158쪽.

 

32) <송아가다 이력서>, 《순교자와 증거자들》,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190쪽.

33) 차기진,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선교 활동의 배경>, 《교회사연구》 14, 1999, 28쪽.

 

34) 14세의 최 야고보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의식이 없을 때 배교의 말을 하고 풀려 나왔다. 그의 배교에 관하여는 김수태, <최양업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연구>, 《교회사학》 10, 2013, 110~111쪽 참조.

 

35) <1851년 10월 15일 8번째 서한>, 청주교구 배티성지 · 양업교회사연구소 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천주교 청주교구, 2009, 92~93쪽.

 

36) “성웅 이순신”(1971, 이규웅 감독), “난중일기”(1977, 장일호 감독), “세종대왕”(최인현, 1978)과 같은 민족 영웅 이순신, 세종대왕에 관한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성웅 이순신과 민족 문화를 발전시킨 민족 영웅이라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현경, <1970, 80년대 사극영화의 정치학>, 《국제어문》 43, 2008 참조.

 

37) 최양업, 정진석 역,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 바오로딸, 1995 ; 청주교구 배티성지 · 양업교회사연구소 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천주교 청주교구, 2009.

 

38) 앞의 주 6 참조.

 

39) 조선 후기 경신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민초들과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삶을 휴머니즘적 색채로 그려냈다. 제작진들은 이 드라마를 새로운 종교문화 콘텐츠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작품이라고 설명하였다(<평화방송, 종교 드라마 ‘탁덕 최양업’ 방송>, 《PD저널》 2008년 11월 17일자, http://www.pdjournal.com/news)

 

40) 2000년대에 이르면 사극이 전성시대를 맞는다. 텔레비전 사극으로 “대장금”(2003~2004, 이병훈 연출), “주몽”(2006~2007, 김근홍, 이주환 연출), “태조 왕건”(2001~2002, 김종선, 강일수, 강병택, 정영철 연출), “여인천하”(2001~2002, 김재형 연출), “해신”(2004~2005, 강일수, 강병택 연출), “이산”(2007~2008, 이병훈, 김근홍 연출)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사극영화로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이재용 감독), “황산벌”(2003, 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2005, 이준익 감독) 등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다. 이전까지 사극은 중년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21세기에 오면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사극을 즐겨보게 되었다.

 

41) 드라마에서는 자막을 통하여 이 인용문을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 착오에 해당한다. 인용문 가운데 첫 문장은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1861년 9월 4일에 쓴 서한에 보인다(<1861년 9월 4일에 베르뇌 주교가 알브랑 교장 신부에게 보낸 서한>, 배티 사적지 편,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천주교 청주교구, 1997, 249쪽). 최양업 신부의 죽음에 대하여 푸르티에 신부는 “… 티푸스가 우리의 착하고 너무나 아쉬운 조선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앗아갔습니다”라고 썼다(<1861년 11월 2일에 푸르티에 신부가 아브라이여 신부에게 보낸 서한>, 같은 책, 1997, 261쪽).

 

[교회사 연구 제49, 2016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아네스(서강대학교 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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