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5: 4세기 (2) 동정 생활과 성모 신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3 ㅣ No.90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5) 4세기 ② 동정 생활과 성모 신심


동정 생활, 하느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

 

 

- 로버트 캉팽 작 ‘축복하는 그리스도와 기도하는 동정 마리아’ 성화에 이스라엘 전경을 합성했다. 그래픽=문채현.

 

 

초대 교회에서 동정 생활은 순교의 길을 걷는 것에 버금가는 칭송받는 영성 생활 중에 하나였습니다. 특히,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은 일찍이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주제에 주목하면서 동정 생활을 함께 성찰했습니다. 수도 생활과 비교되는 또 다른 백색 순교였던 동정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실천할 수 있는 영성 생활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찾아 따르고자 하던 그리스도인은 수도 생활뿐 아니라 동정 생활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동정 생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혼인과 관련된 직접적인 가르침은 없었지만, 미혼의 상태가 주는 유익한 점을 유추해 소개했습니다. 즉, 혼인하지 않고 동정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은 기꺼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7,32.34.35) 마태오 복음서 저자도 하늘나라를 위해서 동정 생활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마태 19,12 참조)

 

사도 교부들과 호교 교부들은 각자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동정 생활을 숙고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티우스(105 이전~135경)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던 이단을 의식해 주님의 육신의 영광을 위해 정덕을 지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유스티누스(100/110경~165)는 동정녀들의 삶 안에서 교회를 지키고자 하는 주제를 펼쳤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160경~220 이후)는 이교인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에 정덕의 가치를 활용했습니다. 치프리아누스(200/210경~258)는 동정 생활이 부활 이후에 오는 생명의 보증이며 그리스도의 천상적 형상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시대에 교부들은 동정 생활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선택하는 덕행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자유와 함께 시작된 4세기에 교부들은 굳건한 믿음을 위해 신학을 체계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교부들은 동정 생활을 신학적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해 성찰했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5/340~394 이후)는 저서 「동정론」(De Virginitate)에서 동정은 하느님과 맺는 내적이며 영적인 혼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그는 하느님께서 동정의 원형이시고, 삼위일체 신비가 동정성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339~397)는 저서 「동정녀들에 대하여」(De Virginibus)에서 동정 생활을 마리아와 연관지어 숙고했습니다. 즉, 그는 동정녀들에게 동정 마리아의 모범을 따를 것을 권고했을 뿐만 아니라 동정 마리아의 삶이 모든 신앙인을 위한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실천 방법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성덕을 본받는 신심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의 동정성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임마누엘 탄생 신탁에서 원래 이사야 예언자는 ‘젊은 여자’를 뜻하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이사 7,14 참조) 사도 바오로도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언급하면서 ‘일반적인 여자’를 뜻하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갈라 4,4 참조)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이러한 탄생 이야기를 마리아에 적용하여 사용하면서 ‘처녀, 동정녀’를 뜻하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마태 1,23 참조) 이후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리스도인의 신심 생활에서 지금까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초대 교회에서 동정성에 관한 마리아 교의는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 안에서 발전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티우스는 그리스도론의 관점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강조했습니다. 리옹의 이레네우스(130/140~200/202경)는 구원론의 관점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이 인류를 구원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4세기 들어 교부들은 마리아의 동정성 그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결국 베로나의 제노(?~380경)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동정 잉태’, ‘동정 출산’ 그리고 ‘평생 동정’의 3중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게다가 금욕 생활의 한 형태로 실천한 동정 생활에 대해 마리아의 동정성을 본받으라는 교부들의 권고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성덕을 따르는 신심 생활이 그리스도인에게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4세기 후반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310/320~403)는 저서 「이단을 거슬러」(Adversus Haereses)에서 마리아 신심에 대한 부작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에피파니우스는 먼저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인했던 ‘마리아 반대자’(antidicomarianites)를 지적하며, 주님을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정 마리아도 함께 공경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반대로 에피파니우스는 마리아를 여신으로 신격화해 숭배하던 ‘마리아 흠숭자’(collyridians)의 균형 잃은 신심도 함께 질타했습니다. 비록 마리아가 거룩한 분이더라도 마리아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마리아 신심은 마리아를 공경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물이자 봉헌인 동정 생활

 

동정 생활은 하느님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우리의 본성을 준비시켜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면 도달하지 못할 삶도 아닙니다.

 

또한 동정 생활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며,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선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 의지를 통해서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자극받고 고무된 우리는 자유로운 내적 동기와 함께 동정 생활을 통해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순교 정신과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동정 생활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가 끝나자 그리스도인은 백색 순교인 금욕 생활을 추구하고자 수도 생활에 나서거나 동정 생활을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분명 마리아의 동정성도 그리스도인이 동정 생활에 자신을 봉헌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12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43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