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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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80: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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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9 ㅣ No.878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80 · 끝)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⑬


성녀와 함께 또 다른 ‘영광의 찬미’ 되길

 

 

그리스도 안에서 걸음

 

성녀 엘리사벳은 「마지막 피정」 32-33번에서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6-7절을 묵상하면서, ‘영광의 찬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들을 소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광의 찬미를 사는 사람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야 합니다. 이는 “매 순간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릴 만큼 아주 깊이 들어가고자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자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기 위해 성녀가 제시한 기본적인 방법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찾으려는 이기적인 자신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영적 생명이 그리스도라는 튼실한 대지 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뿌리내릴 때 주님의 신적인 수액(樹液)이 뿌리를 타고 우리 안에 깊숙이 스며드는 가운데 우리를 하느님처럼 변모시켜 줍니다.

 

 

그리스도 위에 자기 존재를 건설함

 

다음으로, 성녀는 영광의 찬미를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 위에 자기 존재를 건설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녀는 “바위 위로 나를 들어 올리시니…”(시편 26,5)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자신의 감각과 본성, 위로와 고통 너머로 자신을 들어 높여 자기 존재의 바탕을 세워야 할 굳센 바위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 바위를 기초로 우리 존재가 형성되어야 하고 우리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그렇게 굳센 바위 위에 우리 존재를 건설하려면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권했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눈길을 주님께 온전히 고정한 가운데 깨어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어떠한 삶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천상을 향해 우리 존재를 키워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 줍니다.

 

 

감사의 찬미가를 부름

 

또한 성녀는 ‘영광의 찬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감사의 노래’를 부르라고 가르칩니다. 감사야말로 이 소명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일상을 시작하고 끝내며 불러야 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성가에는 가사의 매 절(節) 사이에 ‘후렴구’가 있는데, 이 후렴구에는 그 성가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절이 바뀌더라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며 다음 절을 부르라는 게 바로 ‘후렴구’입니다. ‘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식사하며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며, 직장에 출근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허락해주심에 감사하는 것.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건강하게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잠자리에 들며 하루의 모든 일을 봉헌하는 가운데 주님께 감사하는 것. ‘감사’는 하느님이 주신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아서 그분께 영광의 찬미가를 불러드리며 삶의 매 순간 자주 불러야 하는 중요한 삶의 후렴구입니다.

 

 

사랑받도록 자신을 내어 맡김

 

마지막으로, 성녀는 죽기 한 달 전, 자신의 영적 어머니인 원장 수녀님에게 쓴 편지(서간 337,2)에서 ‘영광의 찬미’를 사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성녀는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물어보신,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구절을 재해석하면서 이렇게 권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세요. ‘이 사람들보다 더 너를 사랑할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내어맡겨라. … 어떤 장애물도 이를 위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지 마라. … 그게 바로 너의 성소란다.’” 사랑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을 알고 받아주는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향한 무한하고 애틋한 그분의 사랑을 알고 받아들이며 그 사랑에 나를 맡겨드리는 것이야말로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영광의 찬미’를 사는 사람은 그렇게 그분의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영혼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사랑에 자신을 맡겨드리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매 순간 삶의 여정을 걸으며 그분을 기초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이야말로 성녀 엘리사벳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광의 찬미’라는 천상을 향한 지름길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길을 따르며 성녀와 함께 또 다른 ‘영광의 찬미’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지난 3년간 가르멜 성인들의 영성을 애독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성인들을 통해 여러분에게 천상의 빛을 비춰주시길 기원하며….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8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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