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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데레사 성녀 영성 깃든 스페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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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7 ㅣ No.1564

데레사 성녀 영성 깃든 스페인을 가다 (상)


교회 개혁 향한 열정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 세고비아 맨발 가르멜 수녀원에 있는 데레사 성녀상.

 

 

유럽 중세 교회의 혁신은 끊임없는 성찰로 영적 위기의 순간을 극복한 인물들로 인해 이뤄질 수 있었다. 데레사(Teresa) 성녀로 대표되는 스페인 영성가들의 치열한 삶이 그러했다. 16세기 스페인 전역을 돌며 수도회 개혁을 주도한 데레사 성녀는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은 위대한 신비가였고 교회학자였다. 하느님의 딸로, 교회의 진정한 딸로 살고자 했던 데레사 성녀의 정신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 곳곳에 큰 울림으로 퍼지고 있다. 스페인관광청 도움으로 스페인 현지 곳곳에 새겨진 데레사 성녀의 발자취를 둘러봤다.

 

 

‘교회의 딸’ 태어난 고향 아빌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85㎞ 떨어진 아빌라(Avila). 아빌라는 데레사 성녀가 나고 자랐으며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처음 세운 곳이다. 언덕길을 오르다보니 데레사 성녀가 태어난 생가 터에 건립된 생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당 바로 옆은 성녀가 세운 맨발 가르멜(Carmelitas Descalzos)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과 수도원을 함께 ‘라산타’(La Santa, ‘신성한’이라는 뜻)로 부른다.

 

성당 내부에는 성녀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이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현시 순간을 비롯해 현시를 통해 나타나 데레사 성녀를 위로해준 성모님과 요셉 성인, 수녀원에서 영적 결혼 은총을 받는 데레사 성녀의 모습 등이다.

 

생가 성당과 수도원 옆에는 ‘데레사 성녀 박물관’이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데레사 성녀가 집필한 「자서전」, 「완덕의 길」 등 주요 작품이 전시돼 있고 데레사 성녀를 기념해 스페인 정부에서 발행한 우표 등도 진열돼 있다. 유리벽 너머로는 성녀가 태어난 방을 재현해 놓기도 했다. 박물관 안쪽에 있는 작은 정원에는 데레사 성녀가 어린 시절 오빠 로드리게스와 함께 기도하며 노는 모습이 석상으로 만들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데레사 성녀(1515~1582)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또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불린다.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신비가이자 교회학자다. 선종 40년이 지난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이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했고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기도 했다. 교회 사상 첫 여성 교회학자인 데레사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을 만나기를 간구했고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영성의 울림으로 승화됐다.

 

1535년 아빌라 강생(Encarnacion) 수녀원에 입회한 데레사 성녀는 끊임없이 기도를 수련했다. 그러던 1554년 사순절에 수난하시는 예수님 상을 보고 회심한 후부터 하느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많은 신비체험으로 영적 여정의 전환점에 들어선 성녀는 스페인에서 열악한 선교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수도원 17개를 세우고 관상생활과 고행으로 ‘영혼 구혼’에 나섰다. 데레사 성녀가 세운 맨발 가르멜 수도회에서는 회원들이 한겨울에도 맨발로 지내며 세속의 모든 유혹과 욕구를 떨쳐버린다.

 

 

어려움에도 수도원 창립했던 세고비아

 

스페인 세고비아(Segovia)에 들어서자 먼저 거대한 규모의 로마식 수도교가 보인다. 수도교를 따라 언덕 쪽으로 들어가면 중앙 광장에 세고비아 주교좌성당이 들어서있다. 타 유럽 도시의 대성당들이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라면 세고비아 주교좌성당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 푸근한 인상을 준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데레사 성녀가 9번째로 세운 맨발 가르멜 수녀원이 있다.

 

‘죽어서도 나올 수 없다’고 일컬어지는 봉쇄 수녀원답게 입구는 두꺼운 문으로 잠겨있다. 바로 옆에는 수녀원 안쪽과 바깥쪽을 잇는 쇠줄이 있는데 이를 잡아당기면 종이 울리며 안쪽에서 담당자가 문을 열어주는 식이다. 

 

데레사 성녀는 1574년 세고비아에 수녀원을 창립하기로 했다. 기도 중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창립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난관은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텃세였다. 데레사 성녀는 세고비아 교구장과 시의회로부터 수녀원 창립과 관련한 구두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세고비아에서 창립 미사를 봉헌한 뒤 세고비아 총대리 신부가 미사를 봉헌한 십자가의 성 요한을 끌고가 감옥에 가두려 하고 추후 미사도 금지시킨 것이다. 세고비아 맨발 가르멜 수녀원 창립에 큰 도움을 준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라나다 수도원 원장으로 재임하다 “멕시코로 가라”는 총장 신부의 명을 받게 된다. 일종의 유배였던 셈이다. 멕시코로 가기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가 세운 세고비아 맨발 가르멜 수도원에 안치됐다. 이 또한 영혼 구혼이라는 대장정에 나선 데레사 성녀를 둘러싼 당시의 논란과 역경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골짜기 작은 마을 파스트라나

 

스페인 파스트라나(Pastrana)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다. 수도 마드리드에서 100여㎞ 떨어진 이 곳으로 오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황토색 골짜기 뿐이다. 과연 500년 전 이 곳에 6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세운 데레사 성녀도 ‘벽촌’이라고 묘사했던 곳답다.

 

하지만 골짜기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마을에 들어서자 고풍스럽고 세련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데레사 성녀가 이 곳을 찾았을 당시 마을 영주 아내인 에볼리 공주는 어마어마한 저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569년 에볼리 공주는 데레사 성녀에게 파스트라나에 자신이 후원금을 지원하는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해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다른 지역 수녀원 창립 문제 등이 걸려 있어 난색을 표했던 데레사 성녀는 성체조배를 하던 중 “단순한 수녀원 창립이 아니니 꼭 가야한다”는 그리스도 말씀을 듣고 창립을 결심했다.

 

스페인에서 벽지에 속하는 이곳 파스트라나에도 데레사 성녀 박물관이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1569년부터 1574년까지 사용된 가르멜 수녀원 건물 안에 최근 마련된 이 박물관에는 데레사 성녀와 관련한 여러 가지 그림과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초창기 맨발 가르멜 수도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성 베네딕토의 마리아노 신부와 데레사 성녀의 모습을 함께 담은 그림이 눈길을 끈다. 데레사 성녀는 마리아노 신부를 위대한 학자 또는 영적인 아들로 여겼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의지해 산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찾아와 수녀원을 설립하고 성체조배를 했을 데레사 성녀를 떠올려본다. 이 곳 파스트라나는 데레사 성녀로 인해 작지만 큰 감동을 전해주는 성령의 마을로 탄생한 것이다.

 

아빌라 데레사 성녀 박물관 정원에 있는 오빠 로드리게스와 함께 기도하는 석상.

 

 

세고비아 주교좌성당.

 

[가톨릭신문, 2016년 7월 17일, 스페인 방준식 기자]

 

 

데레사 성녀 영성 깃든 스페인을 가다 (하)

 

‘맨발의 성녀’ 걸었던 그 길에서 ‘완전한 사랑’을 만나다

 

 

- 스페인을 대표하는 수석 주교좌성당인 톨레도 주교좌성당 내부.

 

 

세계교회의 거룩한 학문과 영성을 발전시킨 곳은 바로 수도회다. 16세기 스페인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한 데레사(Teresa) 성녀가 오늘날까지 교회사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도미니코회, 예수회 등 스페인 영성가들이 탄생시킨 수도회들은 수많은 성인·성녀, 선교사, 학자를 배출했다. 가톨릭 교회의 ‘맏딸’ 역할을 했던 스페인 교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다. 스페인을 찾는 많은 이들이 순례를 통해 영적 깨달음을 얻는 길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값지다.

 

 

고난의 땅이며, 기회의 땅  톨레도

 

스페인 톨레도(Toledo)는 스페인에서 ‘신앙의 수도’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자 데레사 성녀의 영성이 깃든 이 땅은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며 순례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8세기부터 400년 가까이 이슬람인들이 점령했던 땅이라 독특한 이슬람 건축양식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도 접할 수 있다.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 앞에 세워진 데레사 성녀 동상.

 

 

톨레도에 있는 성당에서는 주말이면 쉴 새 없이 결혼식이 열린다. 톨레도는 물론 주변 도시에서 몰려든 하객들로 성당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스페인 수십 개 교구를 대표하는 수석 주교좌성당은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알무데하 주교좌성당이 아닌, 스페인 최고의 건축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톨레도 주교좌성당이다. 그만큼 톨레도에 대한 스페인의 신앙적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톨레도 주교좌성당에서 언덕 쪽으로 10여 분 올라가다 보면 데레사 성녀가 1569년 창립한 다섯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이 보인다. 1562년 톨레도에 도착한 성녀는 곧바로 수녀원 창립에 몰두했지만 주교좌성당 참사위원들이 극구 반대해 난항을 겪었다. 창립 초기에는 생활비가 모자라 수녀들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나간 것이다.

 

톨레도는 데레사 성녀에게 고난의 땅이자 영성을 발전시키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숱한 난관 속에서 영혼 구혼의 길을 걸었던 성녀는 이 곳에서 위대한 작품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1575년 ‘맨발의 가르멜회’로 불리는 ‘원시 규율파’ 탁발수사들과 ‘신발을 신은 가르멜회’로 일컬어지는 ‘완화된 규율파’ 수사들이 관할권 분쟁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가르멜회 총장이 개혁사업을 포기하고 수도원 정주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데레사 성녀의 영적 아들과도 같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톨레도에 감금됐다. 고뇌가 가득했을 이 시기, 데레사 성녀는 기도와 관련한 대작 「영혼의 성」을 집필한다. 성녀는 이를 발판으로 교회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을 저술할 수 있었다.

 

 

불모지에서 수녀원 설립 말라곤

 

스페인 라만차(La Mancha) 지방에 있는 외진 마을 말라곤(Malagon)은 데레사 성녀가 1568년 세 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한 곳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작은 면 사무소 소재지 정도 규모인 말라곤은 허허벌판 같은 곳을 고속도로로 내달려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지역이다. 데레사 성녀 시절에는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수녀원 창립 당시 마을 사람들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수녀들의 생계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알려진다.

 

- 데레사 성녀가 세 번째로 창립한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 앞 마당에는 데레사 성녀 동상이 바위 위에 앉아 있다. 동상은 수녀원을 바라보며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수녀원이 건립될 당시 데레사 성녀는 건설 현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해 진행 사항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봤다고 한다. 불모의 땅에서 어렵고 힘들게 창립하는 수녀원이기에 성녀의 애착심은 더욱 강했을 것이다.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은 데레사 성녀의 창립 순서로 볼 때 상당히 일찍 설립된 것이다. 또 말라곤 수녀원 창립 멤버였던 수녀들은 다른 수녀원 창립을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고 전해져 그만큼 데레사 성녀가 아꼈던 수녀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데레사 성녀가 스페인 곳곳에 수녀원을 창립하며 내세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철저한 복음적 청빈을 사는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은인들로부터 연금을 받아 수녀원을 창립하는 경우도 생겨났지만 물질적 가난을 통해 영혼을 구원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녀원 앞에서 미소 짓는 데레사 성녀 동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불모지에서 ‘성령의 마을’을 탄생시켰던 500년 전 영성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스페인 여행의 꽃  순례길

 

데레사 성녀의 발자취를 찾는 이번 취재는 스페인 관광청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스페인은 유럽 교회를 대표하는 나라로 유구한 문화유산을 간직해 우리나라 성지순례객과 일반 관광객의 발길이 몰린다. 스페인 관광청에 따르면 스페인을 찾는 한국인은 지난 2014년 16만여 명에서 지난해 31만여 명으로 급증했다.

 

데레사 성녀가 다섯 번째로 창립한 톨레도 맨발 가르멜 수녀원 성당.

 

 

스페인의 많은 관광자원 중에서도 ‘순례길’은 스페인 여행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유명한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을 비롯한 순례 코스들이 한국에 알려져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관광청 이은진 부장은 “종교를 초월해 스페인 순례길을 찾는 한국인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며 “스페인 순례길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찾는 순례객들은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성 야고보가 서유럽에서 전도하고 최초로 순교해 유해가 이송된 전승을 간직한 길을 걷는다.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된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la)가 최종 목적지다.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지역에서 출발하는 약 800㎞ 구간 등 7개 코스로 이뤄진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순례길인 ‘이냐시오의 길’(Camino de Ignatius)은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났다. 16세기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의 고향인 바스크 지방 로욜라(Loyola)에서 카탈루냐 지방 만레사(Manresa)까지 이어진 코스로 약 650㎞이다. 30대 초반의 로욜라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단하고 걸어갔던 바로 그 길이다.

 

이은진 부장은 “스페인 순례길은 이제 유럽을 넘어 전 세계 가톨릭 신앙인들의 도보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며 “신앙적 성찰을 통해 영성과 내면을 고양하는데 가치를 두는 한국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걸어보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6년 7월 24일, 스페인 방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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