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판 노예살이를 근절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5년 세계평화의날 담화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0 ㅣ No.632

[복음살이] “현대판 노예살이를 근절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5년 세계평화의날 담화문

 

 

바오로6세 교황께서 1967년 1월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한 이후 역대 교황님들은 매년 이날 평화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해 오셨습니다. 2015년 1월1일 제48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발표하신 담화문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입니다 (Slaves no more, but brothers and sisters)”라는 제목으로 인신매매, 성매매, 아동노동, 강제노동 등 인권을 유린하는 ‘현대판 노예의 근절’로 우리 모두 연대와 형제애를 이루도록 노력하자고 호소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담화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먼저 작년 평화의 날 메시지의 주제인 “형제애” 즉 모든 사람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적이나 경쟁상대가 아니라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라는 한층 더 확산된 참상은 존중과 정의와 사랑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우리의 소명과 친교의 삶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현대판 “노예 살이”라고 지적하십니다. 

교황님은 오늘날 자유를 빼앗기고 실질적인 노예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례로 다음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거론하십니다. 첫째는 가사 노동, 농업, 제조업이나 광업 등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노예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두 번째는 이주노동자들로서 이주하는 과정에서 “굶주림을 겪고 자유를 박탈당하며 재산을 빼앗기고 육체적 성적 학대를 당하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속에서 고용주에게 종속되거나 비인간적인 처지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세 번째는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여성들(특히 미성년자들)과 성노예를 비롯해서 “강제 혼인에 내몰린 여성들, 정략결혼을 위해 팔린 여성들, 남편의 사망으로 그들 스스로 동의를 하거나 거부할 권리 없이 사망한 남편의 친척들에게 상속된 여성들”, 네 번째는 “장기 적출, 강제 징집, 구걸, 마약의 생산과 판매와 같은 불법 행위, 국제적인 위장 입양을 위한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러 집단에 납치된 후 테러 요원이나, 성 노예로 이용당하고, 상당수는 행방불명이나 인신매매가 되고, 일부는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되거나 살해되는 사람들.


인간을 물건처럼 다루는 왜곡된 인간 개념이 뿌리

말로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이러한 반인간적인 범죄가 실제로 과학과 문명이 최고로 발달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 천부적인 인권을 말하고 있는 21세기에서 여전히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현실 자체가 충격입니다. 작년 11월24일 유엔이 발표한 연례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2010-2012년)에 따르면 인신매매 피해자는 124개국에서 4만 명을 넘고 있으며, 확인된 전 세계 피해자 가운데 18세 미만의 아동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서는 성인을 포함한 전체 피해자의 70%가 여성이었는데 주로 성적 착취와 강제 노동, 그리고 장기 매매에 이용되었고, 인신매매 피해 아동은 전투원으로 동원되거나 범죄에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파악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인신매매를 막으려는 노력에도 처벌 건수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인간을 노예로 삼는 일이 계속 일어날까요? 교황님은 우선 노예살이는 인간을 물건처럼 다루게 만드는 왜곡된 인간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우리의 이웃은 더 이상 우리와 동일한 존엄을 지닌 존재로, 곧 똑같은 인간성을 지닌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물건으로” 혹은 “타인의 소유물로 전락”하거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 교황님은 “무엇보다 빈곤과 저개발과 배척, 특히 여기에 교육 기회의 부재, 또는 드물거나 아예 없는 일자리가 더해지는 경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인신매매와 노예살이의 피해자들은 극빈의 상황을 벗어나려다가 일자리를 주겠다는 거짓 약속에 속아 오히려 인신매매 조직에 넘어가는 이들입니다.” 교황님이 지적하는 세 번째 원인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부패”입니다. 사실 노예 노동과 인신매매는 반드시 “일부 사법 당국자, 공무원, 또는 국가 기관이나 군기관의 관계자들”과 같이 중간 역할을 하는 이들의 부패를 통한 공모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신숭배 때문에 일어나는 가치의 전도는 인간성을 파괴하게 만듭니다.


“너는 네 형제에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

교황님은 이런 현대판 노예살이를 없애기 위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제도적 차원에서 예방,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사법 처리라는 삼중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들은 또한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법들이 올바로 적용될 수 있게 해야 하고, 정부간 기구들은 “조직범죄의 초국가적 연계망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근로 조건과 적정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황님은 교회가 우선 이웃을 진정으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회개의 길을 보여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이 무관심과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이웃의 고통에 눈 감지 말고 이웃에게 따뜻한 말이나 미소를 건네는 일부터 시작하여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를 위해 행동할 것을 주문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예 노동과 관련하여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착취하여 생산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품의 구매”여부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라고 주문합니다. 교황님은 “너는 네 형제에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해서 신앙인들은 고통 받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연대와 형제애의 세계화”를 위한 일꾼이 되어 그들이 희망을 되찾고, 용기 있게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나라에서도 범죄조직에 속아 강제로 성 매매를 하게 된 여성들, 혹은 노예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충분한가요? 한국 교회에는 ‘막달레나의 집’과 같이 성 매매 여성을 돕기 위한 활동도 있고, ‘이주노동사목위원회’와 같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기관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과 기관에 관심을 갖고 적극 후원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국 사회에 와있는 이주노동자들, 외국인 며느리들, 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동등한 형제자매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기보다 머슴이나 종처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거나 차별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처지에 더 관심을 갖고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일,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의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 10-11)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2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1,41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