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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 건축을 말한다24: 지역성을 살린 교회건축 (2) 해외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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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29 ㅣ No.151

[교회건축을 말한다 24] 제5화 한국 교회건축의 반성과 대안 - 지역성을 살린 교회건축 (2) 해외건축

고정관념 벗어나 지역성 살린 교회건축 시도 바람직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가장 큰 변화는 각국 나라말 미사가 거행되고 각국 성가가 불리면서 평신도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전례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성미술, 성음악, 교회건축에서도 지역성을 표방하고자 하는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지역성은 넓은 의미로 한 국가나 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역성은 건축이 위치한 지방, 혹은 동네, 더 좁게는 거리 및 주변을 뜻하는 장소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역성과 장소성은 지방의 특색을 잘 나타내거나 대지와 대지 주변 상황을 잘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지방에는 저마다 다른 기후와 강수량, 재료, 지형, 지방 고유 전통 등이 있으므로 이를 반영하는 다양한 개념의 건축이 가능하다.

홀해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중국 건축가 왕슈가 수상해 건축계에 크게 화제가 됐다. 그는 항저우를 무대로 활동한 지역 건축가이다. 그는 고건축에서 사용된 고벽돌, 고기와를 콘크리트와 절묘하게 조합해 지방색을 강하게 표현했으며, 상해 부근 닝보시 박물관과 대학교 건물로 건축의 지역성을 높이 평가받아 동양인 최초 수상자가 됐다. 비록 정교한 대테일과 완성도 높은 시공도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서양건축 물결 속에서 중국 교유의 전통을 잘 살렸으며, 중국 전통건축 장인들을 직접 고용해 현대건축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손맛을 살렸다고 한다.

우리에게 성가정성당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62-1926)도 지역성이 강한 건축가이다. 그는 카탈루니아 지방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바르셀로나 북측에 위치한 몬세라트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자유로운 곡선, 동물 모양, 식물 모양 형태는 카탈루니아 지방의 자연과 생태계에서 나왔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남부 툴르즈를 답사한 후 실망해 이후 단 한 번도 국외에 나간 적이 없는 순수한 카탈루니아 지역주의자였다. 그는 1883년 성가정성당을 지으면서 신앙심이 깊어졌다.

강한 지역성을 나타내는 그의 작품 가운데 콜로니아 구엘성당(1908-1917, 사진1)은 성가정성당 못지않은 걸작이다. 바르셀로나 북쪽 노동자 거주지에 세워진 성당은 가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구조실험에서 형태를 얻었다. 전체 설계를 마치고 공사에 들어갔지만 후원자 구엘의 사망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아마도 완성됐으면 성가정성당만큼 가치 있는 건축이 됐을 것이다.

내부는 스페인 고딕양식을 응용해 벽돌로 아치를 만들었으며, 이슬람문화 · 지중해문화 · 카탈루니아문화가 혼합된 아르누보 양식의 자유로운 형태와 곡선을 사용했다. 출입구 기둥도 구조적 실험에 의해 자연스러운 각도로 기울어져 있으며, 내부 구조도 가우디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경이롭다.

그가 이 성당에 쓴 재료도 강한 지방색을 띠고 있다. 근대적 재료인 콘크리트부터 그 지역 흙으로 만든 벽돌, 현무암과 화산암을 사용했다. 그가 “건물 하부는 흙색깔과 비슷한 돌을 사용해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중간 부분은 회색과 은색으로 채색해 소나무 줄기가 건물을 감싸고 있는 듯 보이고자 했다. 건물 상층부는 녹색 · 자색 · 청색 유리재료를 사용해 주위 나무와 푸른 하늘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고 기술한 것을 보면 얼마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전통건축에서 보여지는 자연에 대한 태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에겐 평생 지지자이자 친구이며 건축주로서 후원한 구엘이 있었기에 위대한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구엘 별장, 구엘 공원, 구엘 주택 등 그의 작품들은 시대착오라고 할 만큼 수공예적 요소가 많았으므로 구엘과 같은 후원자가 없었다면 작품은 구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 그의 작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바르셀로나를 세계적 도시로 만들었으니, 두 사람이 한 지역의 지역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셈이다.

스페인 출신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의 건축에서도 지역성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아반도의 강한 태양과 대비되는 깊은 그림자와, 그의 조형적 특징을 잘 나타내는 외곽의 굴곡을 보면 남부 유럽의 기후를 상상할 수 있다. 필자가 소개한 LA 주교좌성당(평화신문 6월 17일자 제1171호 참조)은 황토색 콘크리트를 사용해 포르투갈의 붉은색 대지를 표현했고,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해 외벽에 그림자가 지도록 설계했다.

<사진2>는 2011년에 완공한 스페인 산 세바스찬 시내 성당이다. 간결한 형태가 인상적인 성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마을 어귀에 자리한다. 거대하거나 독특한 모습으로 지역의 상징적 존재가 되곤 했던 기존 종교 건축물과 달리 주변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물로 다양한 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오늘날 지역 공동체와 융화되고자 그 흔한 첨탑도 세우지 않았다.

사실 진정한 종교공간이란 같은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삶뿐 아니라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것은 프로그램에 반영한 것으로, 1층에는 인근 공원과 이어진 슈퍼마켓이 입점해 지역 주민의 일상과 함께 호흡하며 이 마을 만남의 방처럼 쓰인다. 공원으로부터 이어진 길을 걷다보면 성당 주출입구를 마주하게 된다. 몇 겹의 공간을 건너 성당에 들어가는데, 간결한 형태이지만 높은 천장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고딕성당 못지않은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느껴진다.

건축가는 스페인 추상예술가 에두아르도 칠리다와 호르헤 오떼이씨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약간 비틀어진 십자가 모양의 성당 평면과 천장 구조물은 스페인건축에서 보이는 새로운 시도의 연장이다. 더운 나라임에도 성당에 천창을 도입하는 것, 자유로운 신자석 배치 역시 스페인성당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역성은 전통건축에 얽매여 고전적일 필요가 없다. 현대적 재료와 시대적 상황에 맞는 건축에서도 지역성을 살릴 수 있다. 지역성은 반드시 표현돼야 할 명제는 아니며 건축의 다양성을 갖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국내 성당들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면 교회건축에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16일, 안우성(프란치스코, 건축가, 온고당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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