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경자료

[성경]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성경과 가난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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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8 ㅣ No.3178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성경과 가난한 이들



구약과 신약이 함께 한 권의 책을 형성하는 성경의 전체 핵심 내용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의 장점은 성경이 제시하는 창조 세계, 인간, 하느님의 백성, 가난한 이들 사이의 통합적인 관계를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심원의 이 그림은 성경의 중심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잘 드러낸다.


성경의 통합적 차원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은 전체 창조 세계를 창조하셨다. 인간은 이 창조 세계 안에 포함된다. 따라서 구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창조 세계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구원의 역사 안에서 당신 백성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신다. 구약의 시대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신약의 시대에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선택하신다. 이 우선적 선택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즉 하느님 백성의 선택은 배타적인 특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인류를 위한 섬김에로의 초대이다. 그래서 선민(選民)은 만민(萬民)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 가운데에서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신다. 곧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우선적 관심은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구원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성경의 중심에 가난한 이들이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성경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우선적 선택은 배타성이나 당파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선택이 우선적인 것은 가난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배제나 무관심을 가리키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은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이들,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이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느님에게만 의존하는 이들이다. 무력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온갖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압제받는 사람들, 과부, 고아, 노인, 병자, 신체불구자,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로 여겨지고 취급받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즉 식량, 주거, 보건, 교육, 고용, 기본적 자유에 있어서 비인간적인 조건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이들이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성에 타격을 주는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자산의 심각한 결핍과 관련된다. 그래서 차별과 폭력의 희생자들이 모두 이 가난한 이들에 해당한다.

성경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가난에 대한 저항(protest)과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solidarity)를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경이 제시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돌봄(care), 환대(hospitality),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 관대함(generosity), 관용(tolerance),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와 상호 책임성(mutual responsibility)의 실천이다. 결국 이 우선적 선택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실현된다.

성경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주제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동한 해방실천과 해방신학의 공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민중의 현장에서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의 구체적인 행동 안에서 신앙의 의미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고, 가난한 이들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성경을 다시 읽게 되었다.

역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신학적 반성의 주제가 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 가치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하게 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대 교회 이래 모든 전승이 증언하는 바이다. 일부의 오해처럼 이 우선적 선택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현세적, 사회적, 정치적인 해방의 전망에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적 가치의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우선적 선택에로 초대되었다. 즉 이 우선적 선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임의적인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해당한다. 그래서 마침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우리 교회의 사회 교리 안에 굳건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가난, 가난한 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창조, 구원, 신앙, 계약, 은총, 죄, 부활 등과 같은 여러 주제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기본 태도와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성경에 대한 이해와 성경 읽기의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요청된다.

성경은 하느님의 해방과 구원을 체험한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이들은 성경의 핵심이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성경의 핵심 주제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시각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아듣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성경 읽기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 송창현(미카엘) 신부는 1991년에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침, 2015년 9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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