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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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문화] 성경, 문화와 영성9: 아브라함과 이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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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3176

성경, 문화와 영성 (9) 아브라함과 이사악



구약 성경의 이야기 중에서 카라바조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세 가지인데, <이사악의 제사>, <다윗과 골리앗>, 그리고 <유딧과 홀로페르네스>가 그것이다. 이들 중 우리가 먼저 살펴볼 것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야기(창세 22,1-19)이다. 이 구약 성경의 본문을 많은 화가들이 그렸는데, 특히 카라바조의 그림은 본문의 상황을 깊은 성찰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하고, 본문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이사악

○ 창세 18,1-15에는 이사악의 출생 예고가 소개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었지만,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데에는 이러한 인간적인 조건이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이처럼 늘그막에 얻은 아들인 이사악은 아브라함에게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이었다.

○ 창세 22,1-19에서 서술되는 이사악의 희생 제사 이야기는 유다인들의 전승 안에서 “아케다”라고 불린다. 이 용어는 아브라함이 “아들 아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9절)는 문장에 나오는 “묶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인 “아카다”의 명사형이다.

○ 1절의 본문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시험은 일종의 함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신앙을 굳건하게 만드는 계기를 의미한다. 2절에 하느님은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모리야 산은 장차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곳이기도 하다.(2역대 3,1) 이러한 하느님의 예상치 못한 요구 앞에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당황하고 고민했을지 우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본문은 아브라함의 그 어떤 갈등이나 고민을 서술하지 않는다. 곧 이은 3절은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라고 말한다.

○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6-9절)

○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을 때(10절),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12절)고 말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13절) 이와 같이 하느님이 참으로 원하셨던 것은 아들 이사악의 희생 제사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아브라함의 순명과 신앙이었던 것이다.


■ 카라바조의 <이사악의 제사>

○ 카라바조의 <이사악의 제사>(The Sacrifice of Isaac)는 1603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104×135cm의 크기이며, 피렌체의 우피치(Uffizi) 미술관에 있다.

○ 피렌체 출신인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는 파리의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를 떠나기 전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던 카라바조에게 <이사악의 제사>를 그리도록 주문하였다. 바르베리니는 훗날 우르바노 8세 교황이 되었다.

○ 그림의 왼쪽에서부터 천사, 아브라함, 이사악이 클로즈업 되어 있다. 카라바조는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이사악을 죽이려 할 때, 천사가 이를 중단시키는 긴박하고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그림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이사악 대신에 번제물로 바쳐질 숫양이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배경이 되는 언덕의 풍경이 묘사된다. 때는 새벽 혹은 해질 무렵으로 보인다.

○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인 명암법은 <이사악의 제사>에서도 잘 표현된다. 빛은 왼쪽으로부터 천사의 몸을 비춘다. 거기로부터 빛은 아브라함의 얼굴과 그의 손에 든 위협적인 칼 아래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사악의 위에 머문다.

○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엄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천사의 오른손은 아브라함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고, 왼손은 숫양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천사의 동작은 하느님의 개입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대머리의 강한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왼손으로 이사악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오른손에 번쩍이는 칼을 들고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죽이려 한다. 아브라함은 미간을 찡그리며 천사의 말을 듣는다. 이사악은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의 비명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두려움에 떠는 이사악은 관객을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하다. 그의 머리 바로 옆으로 숫양의 머리가 보인다.


■ 신약 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사악

○ 그리스도교 전승에서도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로마 4,11)이다. 그리고 히브 11,17-19에는 창세 22,1-19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소개된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 아브라함이 자신의 소중한 아들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야기에서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사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로 해석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5년 9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c/caravagg/06/33isaa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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