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경자료

[성경] 말씀 그루터기: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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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3175

[말씀 그루터기]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지난 봄 어느 날, 한국에 선교사로 와 계셨던 어느 일본 수녀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수녀님은 며칠 동안 집을 떠나게 되면 방을 잘 정리한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그 수녀님이 60세쯤 되셨고 지금은 8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 수녀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기 중 일주일의 절반은 서울에서, 절반은 대전에서 보내기 때문에 자주 집을 떠납니다. 서울에 오면 집에 오는 것이지만 그 기간에는 또 대전이 비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삼스럽게, 정리를 잘 해 두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것들은 잘 정리하지만 책상은 어지럽게 둡니다. 하던 일이 끝나지 않으면 집어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 되겠습니다. 갑자기 죽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병에 걸려 눕기라도 하면 어느 한쪽에는 제가 펼쳐 놓은 책상이 그대로 남을 테니까요.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떠나거나 죽게 된다면 무엇이 제 뒤에 남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사야로 돌아갑니다. 이사야서 6장에는 이사야가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이사 6,1), 하느님께서 그의 입에 숯불을 대어 정화하시고 그를 당신 예언자가 되게 하시며, 사명을 맡기어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좀 이상합니다(39장). 히즈키야가 병이 들었다가 나은 다음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이 히즈키야에게 사절단을 보냅니다. 히즈키야는 그들에게 자기의 창고에 있는 것을 모두 보여 줍니다. 이사야는 그 말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보라, 네 궁궐 안에 있는 모든 것과… 바빌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이사 39,6). 조금 배경을 설명하자면, 히즈키야가 창고를 보여준 것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여 바빌론과 함께 반 아시리아 군사 동맹을 맺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이사야는 그러한 방법으로 군사력에 의지하려는 시도를 반대했기에 히즈키야에게 왕국의 멸망을 선고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이사야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 여기입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예언자로서의 활동을 마치기 전에, 그 이후에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럼 이사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디서 죽었을까요? 성경에는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사 1,1에는 그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히즈키야 시대의 이야기가 이사야서 제1부의 끝 부분에 들어 있고, 산헤립의 침공과 히즈키야의 치유, 그리고 위에 요약해 놓은 39장이 전해집니다. 

 

그 이후로 성경은 이사야의 생애나 활동, 그의 죽음에 대해서 전해 주지 않습니다. 외경에는 이사야가 므나쎄 시대에 순교했다고 말하는데, 1,1에서는 오히려 므나쎄 시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었지요.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있었고 그의 예언을 전수한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 특히 임금과 정치 또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므나쎄 시대에 순교했다는 전승은 그가 끝까지 거부를 겪었음을 간접적으로 전해 줍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성경이 이사야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헤립의 침공 때에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고 또 히즈키야에게 이사야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 그것으로 끝입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예언서들 가운데 예레미야서만큼 예언자 개인의 삶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는 책도 없습니다. 예레미야서 역시 그가 부르심을 받은 것을 전해 줍니다(1장). 요시야 통치 13년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때부터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40년간 예레미야에게 내립니다.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면은 예루살렘의 함락과 다윗 왕조의 붕괴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럼 그 후에 예레미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레미야는 또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까요? 

 

바빌론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서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를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바빌론인들은 예레미야가 바빌론에게 항복하라고 했던 것을 알기에 그를 살려 줍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바빌론은 유다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달야를 임명하고, 예레미야는 그와 함께 머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달야는 3개월 만에 암살당했습니다. 아마도, 그달야가 다윗 왕실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유다인 공동체는 그달야 암살에 대한 바빌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피신하는데, 예레미야는 그 땅에 남아있고자 했으나 사람들이 강제로 이집트에 데려갑니다. 예레미야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에서 유다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이사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에 대해서도, 성경은 그의 죽음을 전해 주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은 예레미야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 예레 52,1 위에 제목이 아주 잘 붙여져 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가 이 단락의 제목인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처음부터 선포했던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으로 예레미야서는 종착점에 도달합니다. 예레미야서가 예레미야의 전기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신약에서 이와 비길 수 있는 예가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 13-28장은 바오로 사도의 여정을 전해 줍니다. 세 차례에 걸친 그의 선교 여행과 바오로가 수인으로서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가게 되는 것이 이 부분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장면은 로마에서 바오로가 자기의 셋집에서 지내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31)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가택 연금 상태로 2년간 보낸 다음 네로 황제에 의하여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순교에 대해 말해 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이 바오로 사도의 순교 이전에 작성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렇게 가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것은,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말씀에 따라 복음이 로마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도착했으니 사도행전 저자인 루카는 할 말을 다한 것입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점점 자라나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활약하는 모든 인물들은 “말씀의 종”(루카 1,2)이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바오로, 모두 구약과 신약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은 성경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서가 예언자 이사야의 전기가 아니고, 예레미야서가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기가 아니고, 사도행전이 사도 바오로의 전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그들이 선포한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에제 2,5 참조) 그들은 말씀을 선포했고, 그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 안에서 싹트고 자라났습니다. 거부를 당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그 말씀, 땅끝까지 전해지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그 말씀이 그들의 흔적이었습니다. 

 

말씀의 선포를 위한 도구가 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렇게 말씀의 씨앗들만을 남기고 조용하고 깨끗하게 떠나갔으면 합니다. 

 

[땅끝까지 제89호, 2015년 9+10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성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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