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찬미와 봉사의 제물(자존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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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1 ㅣ No.469

[레지오와 마음읽기] 찬미와 봉사의 제물(자존감 2)

 

 

고양이를 유달리 무서워하는 쥐가 있었다. 고양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니 신(神)이 쥐를 불쌍히 여겨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된 쥐는 개가 무서워 살 수 없었다. 다시 불쌍한 마음이 든 신은 그 쥐를 호랑이로 변신시켜 주었다. 그러나 호랑이가 된 그 쥐는 이번에는 사냥꾼이 무서워 살 수 없었다. 이에 신이 탄식하며 말했다. “너는 다시 쥐가 되어라. 무엇으로 만들어도 너는 쥐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다”라고. 인도 우화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인 ‘자존감(self-esteem)’은 아주 주관적이다. 비록 남들의 평가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 평가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실제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인데 전자는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말하고, 후자는 현실적 근거는 없지만 자신의 생각을 통해 나타나는, 자신이 느끼는 현실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우리에게 큰 힘으로 작용할까? 바로 심리적 현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듯 느껴지면, 학력에 열등감이 있으면 나의 짧은 지식 때문에, 외모에 열등감이 있으면 내가 못생겨서, 혹은 집안이나 가난, 실직 등에 열등감이 있으면 각기 그런 이유로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되어, 화가 나거나 우울해진다. 이 모두가 심리적 현실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듯이 행동한 데에는 그 사람에게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상대가 그날따라 어떤 이유로 기분이 저조했거나 걱정거리가 있어 무뚝뚝하게 행동을 했거나 혹은 원래 거만한 성품이어서 언행이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즉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는데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를 마치 전체인 것처럼 해석하는, 어린아이 같은 미숙한 사고방식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보는 시각이 굴절되어 있다면 그런 행동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되어 심리적 현실이 힘들어진다.

 

사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가 실제로 나를 무시한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적 결함으로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고 넘길 수 있다. 왜냐하면 상대의 부족한 점을 보고 무시하는 행동은, 그가 누구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관점의 문제이다.

 

 

자존감 향상을 위한 첫째 방법은 ‘실수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셀리그만 교수는 ‘학습된 무기력 심리실험’으로도 유명하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전기가 흐르는 방에 있는 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게 되면, 나중에는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주어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학업 동기가 부족한 아이들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실험 이후 셀리그만 교수가 그 개를 대상으로 치유실험을 하여 새로운 결과를 얻은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즉 그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개에게 다시 전기자극을 주면서 전 실험과 달리 자극이 올 때마다 목줄을 당겨서 안전한 방으로 옮겨주었다. 그것이 반복되자,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기 그 개가 벌떡 일어나 안전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이 실험으로 긍정적 경험을 반복하면 자신감 또한 회복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자존감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향상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실수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행동이며 역설적으로 인간이니까 실수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실수가 많은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오히려 위로해야한다. 대부분의 실수는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일의 성과를 냈을 때는 스스로 자기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취감은 자존감을 높여주니 즐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과업이 주어지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격려와 잘 될 거라는 결과에 대한 긍정적 예측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실제로 그런 생각들이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굳이 남들보다 더 잘 날 필요 없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내 나름대로 살 뿐이다.”라는 마음의 패러다임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한다.

 

한편 자존감은 자존심(pride)과는 다르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존중하는 것이지만,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존심은 경쟁에서 승리할 때는 커지지만 패배할 경우는 바닥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또한 자존감은 이기주의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자신을 존중한답시고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열등감에 쌓인 사람의 허울 좋은 이기주의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명심해야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다보면 활동대상자들이나 심지어 동료단원들에게조차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니면 실제로 비난이나 멸시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내가 한 말이나 일들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해를 받고, 진정한 마음과 열성으로 한 일이 일그러져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네 몸” 즉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즉 자신의 장단점 등 성격을 이해하고 자신의 한계도 알고 상처나 좋은 점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일부만을 보고 판단하는 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아시는 하느님을 의식하고 행동하며, 다음 기도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어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고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봉헌기도)

 

“진흙으로 생명을 빚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네!”(뉴만 / 교본 360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8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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