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강론자료

2023-04-02.....수난성지 주일.....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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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4-01 ㅣ No.2375

주님의 수난성지주일 (가해)

입성기념식 복음(가해) : 마태오 21,1-11 /

이사야 50,4-7      필리피 2,6-11           마태오 (짧게: 27,11-54)

2023. 4. 2.

주제 : 성지(聖枝)주일에 우리가 하는 생각

늘은 세상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며, 그 옛날 다윗이 만든 성에 임금이요 구원자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일은 어제나 오늘 있던 일은 아니고, 역사로는 대략 2000년이 가까운 시간 전쯤 있었던 일이지만,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반복해서 거행합니다.

 

전례의 명칭은, 오늘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을 두 가지 일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성지주일이고, 다음으로는 수난(受難)’이라는 표현을 담아서 설명합니다. 전례의 명칭에는 성지와 수난이라는 두 가지 표현을 씁니다만, 우리 신앙이 수난과 고통을 높게 보는 일보다는 기쁨과 부활을 말하는 종교와 신앙이기에, 성지주일에 관한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에 일은, 예수님께서 미리 생각하신 일이었겠지만, 예수님이 실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계획단계의 일이었고, 예수님을 사람들이 구원자로 인정한 다음에서야 구체적으로 그 실행계획이 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평소에 하던 일에서 갑작스럽게 다르게 행동하면 그의 삶에 끝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무리와 예수님을 죽이려던 사람들의 무리가 서로 다른 무리였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구별하면서 우리는 어느 쪽에서 위안을 얻고 찾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에 관련된 내용은, 우리가 해마다 성주간의 금요일에 읽는 매우 긴 수난기를 통해서 우리가 더 생각하고, 과연 우리의 삶은 그 사람들의 어디쯤에서 시소를 타는지 묵상할 내용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사람들이 생명을 담은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예루살렘의 다윗성에 들어오시던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자로 선언하던 모습, ‘호산나 다윗의 후손을 말하던 일을 더 크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땅에 꽂으면 살 수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많지도 않았고, 로마의 권력이나 로마의 힘에 야합(野合,=좋지 않은 목적으로 서로 어울림)하지도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들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께 삶의 중심을 두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였지만, 예수님을 계속하여 살게 하는 일에는 힘이 부족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 비교하여 실제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은 로마의 정치를 이용하여,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고, 자기들의 걸림돌인 백성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예수님을 죽이려는 행동을 실행합니다. 세상의 논리는 이렇게 움직입니다.

 

세상의 일은 내가 바르게 받아들이고, 내가 바르게 행동할 때, 나의 삶에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는 법입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성지주일에 우리가 들은 마태오의 입성기념복음은 어린 나귀를 타고서, 산을 넘어 예루살렘성에 들어온 예수님의 모습이었고, 예수님께서 보이고 싶어했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던 일이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타신 어린나귀를 타고 오시자,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그들과 함께 보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외치는 일만으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좋은 결과를 잘 이용하면 충분하다고 여기겠습니까?

 

우리가 보거나 만나는 현실에서, 힘이 약한 사람인 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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