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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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01 ㅣ No.313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공의회 (1)


아리우스 논쟁의 발단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요한 10,30)라는 ‘간 큰 소리’를 하시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는 봉변을 당하실 뻔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유인즉 ‘감히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한 10,30 이하 참조). 아리우스(260-336)를 진원으로 4세기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교리 논쟁의 발단은 사실 예수님을 과연 ‘하느님과 하나’라고 알아들을 것인가, 또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라고 알아들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아리우스 주장의 핵심

이제 아리우스는 이른바 ‘오리게네스 좌파’로서, 오리게네스의 사상에 내포된 종속설 - 신성에 있어서 성자는 성부보다 하위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 - 경향을 급진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태어남도, 시작도 없이 존재하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성자는 탁월하기는 해도 피조물 중 하나지 결코 하느님과 같지 않다는 주장에 도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하느님의 아들’이란 호칭을 쓰는 것도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존재나 지위를 공유한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단지 은유로서, 그분을 공경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수사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구세주는 하느님이 아니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아리우스 신학의 핵심 상투어가 여기서 나온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 - 그는 흔히 ‘오리게네스 우파’로 분류된다 - 가 아리우스를 단죄함으로써 시작된 분쟁이 전체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기에 이르자, 일찍이 그리스도교를 통해 제국의 결속을 공고히 하려는 꿈을 다지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사 최초의 보편공의회를 소집하게 되니, 이것이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 공의회’다. [2010년 4월 25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 이민의 날) 청주주보 4면,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총대리 겸 강서동 본당 주임)]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공의회 (2)


니케아 공의회의 논박

니케아 공의회는 결정사항을 통해 - 니케아 신경 - 성자는 “성부로부터, 곧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신 외아들”로서,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시며,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같은 본질이시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아리우스의 교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훗날 ‘본질’이란 뜻으로 굳어진 우시아(ousia)란 말마디와 ‘위격’을 뜻하는 히포스타시스(hypostasis)란 말마디가 혼용되던 시절이어서, ‘같은 본질’(ho-moousia)이란 말은 자칫 ‘같은 위격’이란 뜻으로 오용될 소지가 많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리우스 이단은 니케아 공의회로 종식되기는커녕, 향후 50년간 그리스도교 세계를 뜨거운 논쟁으로 달구게 된다. 그러는 동안 카파도키아의 위대한 세 교부 - 대(大)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 등 뛰어난 신학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용어와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고, 마침내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보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함께 성령의 신성까지도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아리우스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평가

이제 아리우스 신학의 속내를 좀더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지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의미들을 잠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아리우스가 하느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교를 다신론의 위험으로부터 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신약의 새로움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사실상 구약의 신관, 곧 단순한 유대이즘으로 회귀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후에 아타나시우스가 밝혀 주었거니와, 구원론의 수준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2010년 5월 2일 부활 제5주일 청주주보 4면,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총대리 겸 강서동 본당 주임)]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아리우스 이단과 니케아 공의회 (3)


아리우스 신학은 구원론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신성을 지니지 못한 구원자, 사람과 똑같기만 한 구원자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구원에 있어서 위로부터의 은총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모방해야 할 대상이나 모범으로 축소되고 만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아리우스의 강박적 유일신론과 사상 전개의 배경에는 헬레니즘 철학 - 신플라톤 철학 - 의 신관이 깔려 있다. 아리우스 오류의 간과할 수 없는 측면 중 하나는 철학적 도식의 기준으로 ‘신비’를 마구 재단하려는 데 있다.

아리우스의 교설은 당대의 단순한 수도승 뿐 아니라 지성인들과 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 제공자들에게도 대단한 유혹이었다. 삼위일체 교리 대신 하늘에 오직 한 분의 하느님만 있다는 것만 명확히 하게 된다면, 지상에서 그 유일한 대리자인 황제의 권한에 대해서도 강조하여,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타나시우스의 목숨 건 투쟁이 단지 교의논쟁의 수준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우스 논쟁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로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어느 시대나 계속 진행하는 논쟁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이한 종교 전통과 체험들이 본격적으로 서로 만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 문제는 민감한 현안이다.

“그러면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루카 9,20). 이 질문에 신학자나 교회의 가르침을 듣고 배운 대로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분은 제자로 자처하는 우리가 저마다 그분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직접 내놓는 한마디를 기다리신다(마태 16, 15 참조). [2010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청주주보 4면,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총대리 겸 강서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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