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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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I Don't Know How To Lov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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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4-03 ㅣ No.63

[영화칼럼]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 2021년 감독 샤카 킹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I Don’t Know How To Love Him)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제작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대표적인 넘버(number, 뮤지컬에 삽입되는 노래)인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가사에는, 극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온마음을 다해 따르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실존적인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인간 예수’와 ‘메시아 그리스도’를 구분 짓지 않고 함께 아우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민이 넘버의 가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넘버는 같은 뮤지컬 안에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괴로움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와중에도 불립니다. 그런데 동일한 곡임에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를 때의 분위기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유다가 부르는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에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여기며 따랐지만, 현실 속 예수의 의지가 자신의 신념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예수를 배반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두려움’과 자신의 배반으로 예수께서 잡혀갔다는 ‘죄책감’이 한데 엉켜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란을 일으켰던 흑인 무장 단체 ‘흑표당(Black Panther)’의 일리노이 지부장이었던 프레드 햄프턴(대니얼 컬루야 분)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햄프턴보다는 햄프턴을 연방수사국(FBI)에 밀고하는 윌리엄 오닐(라키스 스탠필드 분)이라는 인물에게 더욱 집중합니다. 연방수사국 요원을 사칭하며 차량을 절도하려다가 체포된 오닐은 처벌받지 않는 대신 연방수사국 수사관 로이 미첼(제시 플레먼스 분)의 정보원으로 고용됩니다. 그리고 흑표당에 잠입해 당국에서 ‘블랙 메시아’라 불리며 요주의 인물이 된 햄프턴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후 오닐은 흑표당 내에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연방수사국의 압박을 받으며 힘겹게 정보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간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햄프턴의 열정적인 모습에 동화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극 중 오닐이 겪은 실존적인 갈등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기 바쁜 대부분의 범인(凡人)들이 겪는 갈등을 대변해주며,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전에 먼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예수님의 사형선고를 향한 유다인들의 광기’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숙명과도 맞물려 보입니다.

 

극 중 햄프턴의 열정적인 연설에 동화된 오닐의 모습을 본 연방수사국 수사관 미첼은 오닐에게 묻습니다. 그것이 본심을 감추기 위한 연기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연설에 동화되었던 것인지를 말입니다. 영화의 결말만을 놓고 본다면 오닐이 연기를 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만, 영화 속 자막으로 전해지는 실제 오닐의 삶의 마지막 모습을 놓고 본다면 그가 햄프턴의 신념과 열성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었다고 보는 것 역시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유다의 뒤늦은 후회의 마음이자, 영화 속 밀고자 오닐이 품었을지 모를 햄프턴을 향한 회심의 고백이며, 동시에 사순 시기를 보내고 이제 곧 주님의 부활을 맞게 될 우리의 고해성사가 되어줍니다.

 

[2023년 4월 2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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