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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30: 모든 이를 위한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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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3 ㅣ No.696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0) 모든 이를 위한 백성


절망에 빠져 길 잃은 이들에게 복음의 빛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문은 ‘복음의 기쁨’이란 말로 시작하는데(incipit),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1항).

 

 

죄와 슬픔에 빠진 현대인 

 

지난 5월 13일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자살자의 수중에는 다음과 같은 유서가 있었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철자가 틀린 것도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기에, 그대로 옮겨 보겠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지만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수없이 내 머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살아있으니깐 살아가는 것 같다. 하기 싫고 힘들고 그럴 때 잠이라는 수면을 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너무 편하다. 깨어 있는 게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내 자아감, 자존감, 나의 외적인 것들, 내적인 것들 모두 싫고 낮은 느낌이 밀려오고 그렇게 생각한다. 죽고 싶다. 영원히 잠들고 싶다.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되어간다….” 

 

왜 사는지, 존재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해 세상이 싫다고 했다. 깨어 있다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했다. 차라리 수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냥 잠자고 싶다고, 그대로 지속적인 없음(無)으로 존재하고자 했다. 현대인의 내적 공허와 외로움 그리고 죄와 슬픔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현대인은 정신을 잃고 미쳐가고 있다. 그들에게 삶의 기쁨을 선물하고 인생의 절대적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답이다. 인류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분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 선포이다.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다.

 

 

교회, 만민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하느님 백성으로 설명되는 교회는 만민을 위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시대의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이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당신의 아드님과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셨다. 따라서 교회를 구성하는 하느님 백성이 제구실을 다 하려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알려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사명은 신분과 지위, 남녀노소의 구분과 차이가 없다. 누구나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때와 장소의 구분도 없다. 언제, 어느 때든지 기회 닿는 대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113항). 

 

따라서 이제 교회는 ‘구원의 성사’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모든 이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이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 백성이 나타나기를 지금까지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이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탄식하며 고통 속에서 갈망하고”(로마 8,22) 있었다고 표현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슬픔 가운데 울부짖고 있다는 것이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21). 이는 구원의 도구로서 은총을 전달하는 교회를 통해 완성된다. 교회의 모든 백성이 그 책무를 완수할 때 가능한 것이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둠으로 내려가야 하는 부담스러움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내려가 복음을 선포하고 예언의 말씀도 전해야 한다.

 

 

고난을 겪어도 희망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뛰어내려가 연대하고자 함은 교회의 참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결코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상처 입은 자들의 야전병원이 되어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그들을 밝은 빛이 머물고 있는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 세상의 죄악 때문에 깊은 내상을 입고 신음하며 악한 기운만 남은 그들의 참된 이웃이 되어 온전히 치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결과를 야기한 근원적 악을 뿌리 뽑기 위해,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싸움은 십자가의 희생과 용서와 사랑의 싸움이다. 그들과 함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온갖 독한 말로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들의 눈에서 기어코 피눈물을 쏟게 만들겠다는 복수의 싸움이 아니다. 지루하고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가해자의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가 하나가 되는 날까지 계속될 싸움이다.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평화신문, 2015년 7월 12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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