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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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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8 ㅣ No.30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야기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취론적 선교관

 

지난 호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말씀의 씨앗’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의 씨앗’이란 교회 밖에서도 발견되는 복음적 요소들을 가리킵니다. “선교 교령” 11항에서는 이러한 ‘말씀의 씨앗’ 개념을 사용하여, 교회 밖의 사람들 내면에서도 작용하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 진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 교령” 9항에서는 이를 “마치 감추어진 하느님의 현존과도 같이 이미 민족들에게 있는 진리와 은총”이라고 묘사합니다.

 

또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2항에서는 ‘말씀의 씨앗’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것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문화적, 종교적 실재에까지도 확대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제시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한편, “교회 헌장” 17항에서도 ‘말씀의 씨앗’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 의례와 문화에 심어져 있는 좋은 것”이라는 표현으로써 그것의 개인적이며 또한 공동체적인 차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의 씨앗’ 개념은 궁극적으로 복음 선포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선교 교령” 15항에 나오는 다음 텍스트는 말씀의 씨앗과 복음 선포를 연결시키는 성령에 작용에 의한 선교 개념을 제시합니다.

 

“말씀의 씨앗과 복음 선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부르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앙의 순종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세례 샘의 품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낳으시어 그들을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모으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성령론적 선교관은 공의회 이후에 발표된 교회 공식 문헌들 속에서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Spiritus Sanctus prima agens in missione)이란 개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자라게 하시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선포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타종교들의 긍정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에서도, 비록 성령께 대한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또 끊임없이 선포하여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즉, 타종교 전통의 신봉자들과의 대화와 협력 중에,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권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해야 함을 명시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드러나는 선교관은 성령 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성취 이론’ 혹은 ‘완성 이론’(fulfillment theory)에 기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교 교령” 9항에서는 “선교 활동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세상과 그 역사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나타남, 또는 그 ‘공현’과 성취”라고 정의한 후에, “하느님께서는 선교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명백히 완성하신다”고 진술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였던 ‘성취론’ 혹은 ‘완성론’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 교령” 9항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마치 감추어진 하느님의 현존과도 같이 이미 민족들에게 있는 진리와 은총은 그 무엇이든 악의 오염에서 건져 내어 그 주관자이신 그리스도께 돌려드린다. […]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 의례와 문화에 심겨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악마의 패배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치유되고 승화되고 완성되게 한다’(“교회 헌장” 17항)”.

 

그리고 이러한 ‘성취론’ 또는 ‘완성론’에 근거한 선교 원리는 이후 1991년의 “대화와 선포” 69항에서는 ‘점진적이고 인내로운 복음 선포’(l’annuncio progressivo e paziente),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1999년 교황 권고인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20항에서는 ‘교육학적 방법’(pedagogy)이란 개념으로 발전되어 소개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성취론적 전망에서, 말씀의 씨앗 형태로 교회 밖에서 존재하는 실재들을 “교회 헌장” 16항에서는 카이사레아(Caesarea)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우스(Eusebius, 260/264?-340?)의 표현을 빌려 ‘복음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라고 간주합니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교 교령” 3항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이러한 시도들은 비추어지고 고쳐져야” 하지만,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계획에 따라 어떤 때에는 참하느님께 대한 교육이나 복음의 준비로 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흐름을 이어 1975년에 발표된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 선교” 53항에서도 동일한 용어들과 개념들을 원용하여 이러한 성취론적 전망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5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구원론적 전망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구원은 매우 관심 있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러한 구원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나타난 구원론적 전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의 다음 텍스트는 매우 중요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성령론적-구원론적 성찰에 해당하는 것이며, 중세 시대 이래의 폐쇄적인 구원관을 재해석하는 기념비적인 대목이라고 또한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신 성자의 모습을 닮게 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첫 선물로(로마8,23)” 받아 그 선물로써 사랑의 새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상속의 보증”(에페1,4)이신 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몸이 해방될(로마 8,23)” 때까지 온 인간이 내적으로 쇄신된다. […] 그리스도인은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화되어 부활을 향한 희망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은총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먼저, 이 텍스트는 구원을 위한 근본 규범으로서의 그리스도론적 성찰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화되어 부활을 향한 희망으로 힘차게 나아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이 구원의 신비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도 원천적으로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성령의 신비로운 역할과 작용이 소개됩니다.

 

위 텍스트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첫 선물”로서 활동하시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위해서도 그들을 구원을 향해 내적으로 쇄신시키는 “상속의 보증”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묘한 섭리로 시간의 흐름을 다스리시며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성령”(26항)께서는 모든 인간을 끊임없이 격려하시며 발전을 도와주신다(41항 참조)라는 믿음이 바로 “사목 헌장”을 관통하고 있는 인간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성령론적인 전망인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께서는 설사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모른다 하더라도 선의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 안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십니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 안에서 하느님께로 불린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속량 제물로 봉헌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라는 신학적 주제의 성서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성령께서는 이러한 보편적 구원에로의 거룩한 부르심의 은총에 응답하는 모든 선한 이들을 신비로운 작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위 텍스트는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 텍스트의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 성령론적 전망은 “사목 헌장” 37항에서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인간”이란 표현을 통해서, 그리고 38항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성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활동” 하신다는 언명을 통해서 거듭 확인됩니다.

 

“사목 헌장”을 관통하고 있는 이러한 보편적 구원에 관한 전망은 “교회 헌장”에서도 발견됩니다. 우선, “교회 헌장” 14항에서는 명시적으로 교회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라고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곧 이어서 16항에서는 “자기 탓 없이”(sine culpa)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편적 구원의 가능성이 주어짐을 또한 제시합니다. 즉, “교회 헌장” 16항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아레오파고스에서의 연설(사도 17,25-28 참조)과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결국, 오랜 기간에 걸쳐 교회 안에 내려오던 전통적 사상이었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명제가 “사목 헌장” 22항의 이러한 성찰과 전망을 통하여 오늘날의 지평에서 새로이 해석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신앙과 교회를 통한 구원을 굳게 믿고 고백하면서도,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신비로이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또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6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령론적 전망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에서는 성령에 관한 여러 언급들과 성찰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작업은 교회 역사와 신학 전통 안에서 성령론에 관한 본격적인 재숙고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습니다. 사실, 서방 교회의 신학적 흐름 안에서 11세기 이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성령론적인 통찰은 상당 부분 간과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동방에서는 성령론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성령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1962-19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동안 11세기 이후 교회의 역사 안에서 간과되어 왔던 성령론적 성찰의 재고(再考)를 위한 중요한 단초(端初)들을 제공하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새로이 이루어진 이러한 성령론적 성찰과 전망은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개, 발전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1975년에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교황 권고(adhortatio apostolica)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주로 복음 선포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성령론적인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발전시키고 있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1982년에 로마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1600주년과 에페소 공의회(431년) 1550주년을 기념하는,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그동안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에 대하여,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자들의 주장을 교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통합하였던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86년에 성령에 관한 회칙(encyclica)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발표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이러한 성령론적 전망은 교회의 여러 공식적인 문헌들을 통하여 더욱 활발하게 표출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에 이루어진 이러한 성령론적 전망이 기존의 신학 전통과 주제들로부터 분리된 채, 전혀 새로운 그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학 전반에 걸친 새로운 성찰이며,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관통하였던 근본 주제, 즉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성찰 속에 이루어지는 고민과 반성에서부터 출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성령론적 전망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의 자기 쇄신과 그 맥락을 같이합니다. 「교회 헌장」 7항에서는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신다는 언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8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합니다.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Ecclesia semper purificanda)는 끊임없이 참회(poenitentia)와 쇄신(renovatio)을 추구한다.”

 

이러한 교회의 쇄신 과정 안에서,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들을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의 빛으로 다시 조명하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 안에 성령론적 관심이 촉발되었고, 공의회의 이러한 전망들은 이후의 신학적 흐름 안에서 본격적인 성령론적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령론적 전망이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 중에서 발견되는 성령에 관한 언급들만 모두 따로 떼어서 분리시켜 정리함으로써 발견된다기보다는, 공의회의 기본 정신과 전체적인 윤곽을 성령론적 전망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이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성령에 대한 신심과 연구의 계발을 통해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특별히 ‘교회론적’ 공의회였던 동시에 본질적으로 ‘성령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고자(요한 16,13 참조) 교회에 당신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라는 요한 바오로 2세의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29항의 말씀처럼, 오늘날의 다양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에 깨어서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교회가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은총과도 같은 빛을 여전히 던져 주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의 교황 교서 「새 천년기」 57항에서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공의회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역설하면서, “공의회를 ‘20세기의 교회에 내려진 큰 은총’으로 강조할 의무”를 느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자기 쇄신 작업을 이끌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성령론적 해석과 전망은 비단 신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깊고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7/8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계승 - 복음 선포적 관점에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선임 교황인 요한 23세(재위 1958-1963)의 뒤를 이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그 임무를 승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하는 맥락에서 1975년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를 발표합니다.

 

이 문헌 75항에서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성령론적 성찰이 발견됩니다. 첫째, 성령께서 바로 “복음 선교의 주역”(prima agens in missione)이심이 제시됩니다. 여기에서는 먼저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 함께 동반하였던 성령, 그리고 그 동일한 성령께서 예수 부활 이후 사도들과 함께 하시면서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가심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으로 표현됩니다. 다음의 텍스트는 “성령의 작용 없이는 복음 선교는 불가능하다.”는 본문의 명제(命題)를 더욱 자세히 설명합니다.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신비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이다.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나 지금이나 다 같이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의지하는 선교자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 스스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께서 바른말을 하게 하고 동시에 듣는 사람의 마음이 기쁜 소식과 선포된 왕국을 받아들이도록 그 마음을 열어 주신다. 복음 선교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은밀한 활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가장 완전한 준비라도 성령이 없이는 아무 효과도 없다. 설득력 있는 화술이라 해도 성령이 없이는 무력하다. 사회학이나 심리학으로 세밀하게 세운 이론이라도 성령이 없이는 아무 가치도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령께서는 모든 선교사들이 지니는 계획과 창의와 선교적 활동에 결정적인 영감(靈感)을 주시는 분”이라고 뒤이어 묘사하게 됩니다. 위 텍스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 Divinitus) 15항 중 “말씀의 씨앗과 복음 선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부르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앙의 순종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미 제시된 바 있는 ‘성령 중심의 선교관’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의 복음 선교” 75항에서는 성령께서 복음 선교 활동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또한 “목적이고 종점”이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선교가 목표로 해야 하는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인류를 오로지 성령께서만 일으키시기” 때문이며, 동일한 성령께서는 또한 “복음 선교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이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러한 복음 선교에 대한 성령론적 전망 외에도 “현대의 복음 선교” 75항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성령론적 성찰을 제시하는데, 오늘날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관한 식별의 필요성입니다. 다음의 텍스트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관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령으로 특별해진 시점을 살고 있다. 성경으로부터 계시되어 있는 성령에 대하여 더 잘 알기 위해서 어디서든지 애쓰고 있다. 모두 기꺼이 성령의 움직임에 따르고자 한다. 성령을 중심으로 모이며 그분의 인도를 받고자 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교회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탁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면, 그분은 무엇보다도 복음 선교적 사명 안에서 더욱 작용하신다. […] 성령을 통해서 복음은 세상의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간다. 성령께서는 복음화가 역사 안에서 드러내고 평가하는 시대의 징표 - 하느님의 표징 - 에 관한 식별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였던 1974년의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Synodus Episcoporum)에서는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이 - 우리는 여기에 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날인(捺印)으로 각인(刻印)된 평신도들도 추가하고자 한다 - 오늘날의 복음화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활동하심의 본질(本質)과 그 양상(樣相)에 관하여 더 잘 탐구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표현하였다.”

 

위 텍스트는 물론 일차적으로 복음 선교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쓰였지만, 동시에 오늘날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성찰과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오늘날 성령의 인도하심에 더욱 민감하게 응답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경향과 삶의 양식을 묘사하면서, 이러한 삶의 자세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결실과 열매, 그리고 표징의 인도를 찾고 탐구하여 하느님의 뜻과 그 역사(役事)하심에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삶으로 발전되어야 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에는 사목자와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름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처음 제시되었던 개념인 ‘시대의 표징’(signa temporum)에 관한 전망을 이어받아 성령론적인 관점에서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교황 바오로 6세의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는 그 75항에서의 집중적인 언명(言明)을 통하여,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열린 교회를 지향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정신을 주로 복음 선교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성령론적인 차원에서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습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9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계승 - 성령론적 관점에서

 

1986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유일하게 성령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입니다. 물론 1897년에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가 발표한 회칙 「신적 책무(神的 責務)」(Divinum Illud Munus)도 성령에 관하여 다루고 있지만, 이 문헌은 동시에 은총론적인 관점에서 쓰인 것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다섯 번째 회칙입니다. 1979년에 발표한 첫 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가 성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그 이듬해에 발표한 두 번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이 성부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다면, 이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통해 성령에 대해 다룸으로써 삼위일체론적인 완결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의 연속성이라는 맥락에서 발표되었습니다. 그 서문에서(2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헌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레오 13세의 1897년 회칙 「신적 책무」(Divinum Illud Munus)와 비오 12세의 1943년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관하여」(Mystici Corporis Christi)를 언급하면서,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고조된 성령론에 대한 관심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6세의 진술을 인용하여 공의회에서의 가르침은 성령론의 계발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최근에 와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께 대한 교리에 새로운 관심이 요청됨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의회의 그리스도론, 특히 그 교회론에 이어 성령께 대한 새로운 연구와 신심이 계발되어야 하겠습니다. 공의회의 가르침을 보완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2항)』

 

그런데 위 텍스트에서 강조하는 성령론의 계발에 대한 촉구는 궁극적으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로의 복귀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텍스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회칙이 나오게 된 것이라는 배경 설명을 하면서, 삼위일체론적 차원의 회복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남긴 가장 핵심적 과제임을 강조합니다.

 

『이 회칙은 지난 공의회가 남겨 준 유산의 가장 중요한 원천에서 나온 것입니다. 실상, 교회 자체와 세상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관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문서들은 복음서, 교부학, 전례학 등의 연구를 통해 하느님의 성삼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우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 성삼 신비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라는 정식으로 흔히 표현됩니다(2항).』

 

이 텍스트는 ‘교회 내부의 차원(Ecclesia ad intra)’,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차원(Ecclesia ad extra)’에서의 교회 문제를 다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논의의 결과로 발표한 문헌에서 삼위일체론적 차원의 회복과 심화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필연적으로 성령께 대한 회칙이 나오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성령론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2항2항에서의 취지 설명에 뒤이은 26항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정신과 성과를 성령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공의회가 특별히 ‘교회론적’ 공의회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한 공의회였던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 공의회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성령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인 성령에 관한 진리로 물들여진 것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구세사의 현 단계에 대해서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모든 것(묵시 2,29; 3,6.13.22 참조)’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풍부한 가르침 안에 틀림없이 보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의회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와 함께 증언하면서 성령-파라클리토의 현존을 특별히 강하게 확인시켰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 공의회가 어려움을 많이 안고 있는 우리 시대에 성령을 새로이 ‘현존’하게 하였습니다(26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안을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기본 노선을 따르고 있기에 당연히 교회론적 공의회인데, 위 텍스트는 이것을 또한 성령론적 차원에로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이끄시며(요한 8,31-32; 16,13 참조) 그 구원 활동을 섭리하시는 성령이라는 점에서 공의회의 교회론적 관심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 전망에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공의회의 기여와 공헌이었음을 위 텍스트는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10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계승 - 최근 교도권의 문헌에서

 

이번 호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발표된 교도권의 가르침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성령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의 주요 문헌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재해석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된 신학적 명제인 성령의 보편적(혹은 우주적) 현존 개념입니다. 이 신학적 주제의 주요한 성서적 근거 중 하나는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지혜서 1장 7절의 대목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가 1990년에 발표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8항에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 안에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현존과 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께서 종교적인 활동들을 포함한 인간의 활동들 안에, 그리고 진리와 선과 하느님께 이르려는 인간의 노력 안에서 발견되는 ‘말씀의 씨앗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작용하고 계심을 상기시킵니다(참조: 「선교 교령」 3. 11. 15항; 「사목 헌장」 10~11. 22. 26. 38. 41. 92~93항).[…]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민족, 문화, 종교에도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성령께서는 역사적 순례의 도상에 있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모든 고귀한 생각과 활동의 원천이십니다.』

 

위 텍스트의 첫 부분에서는 성령의 현존이 교회 안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드러남을 설명합니다. 신앙감각(信仰感覺, sensus fidei)과 은사(恩賜, charisma), 그리고 성사(聖事, sacramentum) 등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은 성령의 작용하심을 교회 생활 안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또한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에서도 발견되는 것임을 위 텍스트는 계속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 주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을 인용하면서, 특별히 「선교 교령」과 「사목 헌장」에서 명시적으로 천명된 바 있는 ‘말씀의 씨앗(semina Verbi)’ 개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실, 1975년에 발표된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의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53항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되었던 용어들과 전망을 다시 소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성령론적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데,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의 위 텍스트에서는 이를 명시적인 성령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 텍스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마지막 부분입니다. 유스티누스(Justinus, 100/110?-165) 교부에게 있어서 ‘말씀의 씨앗’은 모든 사람들 안에 뿌려진 것이었고, 바로 이 개념을 원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진술은 개인적인 차원, 즉 사람들의 내면에서 작용하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이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될 수도 있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즉, 「선교 교령」 9항에서는 직접적으로 ‘말씀의 씨앗’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동일 개념을 ‘이미 감추어진 하느님의 현존과도 같이 이미 민족들에게 있는 진리와 은총’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2항에서도 ‘말씀의 씨앗’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타 종교들 안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들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고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의 위 텍스트에서는 더욱 확장된 개념으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은 사람들 내면에서뿐만 아니라 객관화된 ‘사회와 역사, 민족, 문화, 종교’ 안에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불가분한 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라는 주제가 그리스도 구원 신비의 보편성을 소홀히 하거나 훼손시키는 의미에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최근의 교도권 문헌들은 또한 강조합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1999년 발표한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6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구세주로서 분명히 선포하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변명에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님 안에 있는 보편적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 텍스트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와 분리된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활동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서 교회 밖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은총을 실현시킨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한 보편적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11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

 

1990년대 이후의 교회 가르침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은 바로 새로운 복음화의 중요성입니다. 이는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러한 복음 선포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9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활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성령의 보편적 활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이루시는 성령의 개별 활동과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에 생명을 주시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재촉하시며, 모든 개인과 민족에게 선물을 주시어, 교회가 이 선물을 발견하고 대화를 통하여 받아들이고 증진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도 언제나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어떠한 형태의 성령의 현존도 존경과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러한 현존을 식별하는 일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이 텍스트는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Presbyterorum Ordinis) 22항과 「사목 헌장」 44항에서 제시되었던 내용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즉, 세상에 베풀기만 하는 일방적 시혜자의 모습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동시에 세상과 함께 대화하는 통교적 관계의 교회상이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위 텍스트는 그 첫 부분에서 무엇보다도 교회 안과 밖에서의 성령의 작용을 단일성과 연속성 안에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즉, 교회 안과 밖에서의 성령의 활동은 서로 다른 것이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이 교회 안과 밖을 관통하여 활동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온전한 진리에로 나아가는 교회가 세상과 맺어야 하는 관계가 여기에서 ‘대화와 선포’라는 이중 형태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과 대화하여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 텍스트는 이러한 두 가지 활동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특히, 세상과의 대화가 세상의 복음화를 촉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께서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며 선사하시는 좋은 선물들을 발견하여 수용하는 계기를 교회에 주기도 함을 위 텍스트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세상 안에서의 좋은 씨앗들을 식별하여 받아들이고,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에 이르도록 계발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1990년대에 발표된 교회 문헌들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대화와 선포’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께서는 바로 “선교의 주역”(prima agens in missione)이시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 15항과 1975년에 발표된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의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75항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는 ‘성령 중심의 선교관’을 계속 계승, 발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는 선교를 지도하시고 전(全) 교회를 선교사로 만드시는 성령께서는 곧 “선교의 주역”이시라고 말합니다(21-30항 참조). 그리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人類福音化省, Congregatio pro Gentium Evangelizatione)과 종교간대화평의회(宗敎間對話評議會, Pontificum Consilium pro Dialogo inter Re-li-giones)가 1991년에 공동으로 발표한 훈령(instructio) 「대화와 선포」(Dialogo e Annuncio)에서는, 성령께서 “교회의 복음 선교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라고 표현합니다(84항 참조).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의 1994년 교황 교서(epistula apostolica)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는 성령께서는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시간의 종말에 다가올 완전한 구원의 씨앗을 이 세상에서 북돋아 주시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준비하시는 분”(45항)이시라고 설명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복음 선포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첫째 요소입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42항에서는 “선교의 시작이며 다시없는 형태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증거”라고 하면서 “성령께서는 교회가 가는 길에 함께하시며, 교회를 그리스도에 대한 자체의 증언과 일치시켜 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화와 선포」에서는 세상에 대한 복음 선포는 전적으로 성령의 현존과 권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64-65항 참조). 따라서 성령께서는 “교회의 선포와 신앙에로의 복종을 고무하시는 분”(84항)이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드러나는 선교관은 명백하게 ‘성취(혹은 완성) 이론’(fulfillment theory)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취론’, 또는 ‘완성론’에 근거한 선교 원리는 나중에 1991년의 「대화와 선포」 69항에서 복음 선포를 위한 ‘점진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1999년 발표한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20항에서는 “기억을 일깨우는 교육학적 방법”(an evocative pedagogy)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어 제시되기에 이릅니다. [소공동체길잡이, 2011년 12월호,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 주요 참고문헌: 박준양,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성령론적 전망」, <사목연구> 17(2006/겨울),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 176-179쪽의 내용을 발췌, 수정 및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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