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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가 알빈 신부를 아십니까? 한국 성당 건축 근대화, 토착화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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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3 ㅣ No.68

건축가 알빈 신부를 아십니까?


한국 성당 건축 근대화, 토착화의 '아버지'

 

 

- 한복에 갓을 쓰고 포즈를 취한 알빈 신부. 그는 한국 성당건축 근대화와 토착화에 기여했다.

 

 

1958년부터 20년 동안 성당(경당 및 공소 포함) 122개를 비롯해 무려 교회 건축물 185개를 설계한 건축가. 중간에 3년 정도 쉰 것을 감안하면 한 해 평균 10개 이상을 설계한 셈이다.

 

도대체 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알빈(Alwin Schmid, 1904~1978) 신부다.

 

김천 평화성당, 문경 점촌동성당, 부산 해운대성당, 청주 보은성당, 대구 복자성당, 서울 구로3동성당 등 그의 손을 거친 건축물들은 이루 열거할 수가 없다.

 

교회건축 전문가 김정신(스테파노,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가 「건축가 알빈 신부」(분도출판사)라는 책을 통해 기억 속에 묻힌 알빈 신부와 그의 건축세계를 되살려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독일 출신의 알빈 신부는 1937년 만주 북간도 연길교구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광복 이듬해 공산당에 체포돼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하다 1949년 독일로 추방됐다. 이후 독일에서 교회건축을 공부하고 196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독일은 전례운동과 전통양식에서 벗어난 교회건축이 활발하던 때였다.

 

전례와 도상학(圖像學) 연구를 설계에 적용한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에 영향을 받은 그는 그때부터 왜관수도원 설계실에 파묻혀 왕성하게 작업을 했다. 특히 한국적 상황과 대지 조건에 맞는 설계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세상을 떠난 그해에도 성당 7개를 설계했으니 '하느님 집'을 짓는데 쏟은 열정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규정된 건축양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교회건축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고딕양식에서 벗어나 서양 석조건축의 장점을 한국의 지붕 형태와 접목시켰다. 또 한국의 어려운 실정을 감안해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지 않는 설계를 했다.

 

김정신 교수에 따르면, 알빈 신부의 공간구성 출발점은 주님이 말씀하신 "이것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이다. 전례공간의 본질적 요소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제단을 회중석 안으로 내리고, 회중석을 제단 주위에 부채꼴로 즐겨 배치한 게 한 예이다.

 

또 마을 중심에 높이 솟아 주변을 압도하는 듯한 형태의 설계를 피했다.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겸손한 형태를 취했다. 교회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집일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학적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대학 시절에 왜관 김천 부근 건물들 가운데 조용히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그의 건축물들을 많이 보았다"며 "그 성당들이 아름다운 이유가 전체 형태와 창의 비례가 좋고,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주변 언덕과 조화를 잘 이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한국은 세계에서 교회건축이 가장 활발한 나라지만 내용상으로는 아직도 낭만주의와 절충주의의 아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알빈 신부의 작품과 생각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신문, 제953호(2008년 1월 13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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