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고해성사 이렇게 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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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30 ㅣ No.70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83) 고해성사 이렇게 해도 되나?

 

 

문 : 주일 고해성사를 주면서 가끔 회의가 듭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길게 줄을 선 신자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밖에 할애하지 못하는데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판공성사 때는 그런 의문이 더 하고요. 가능하면 시간을 더 들여서 고해성사를 주고 싶은데 여건은 안 되고 마음은 왠지 미안하기만 합니다.

 

 

답 : 신부님의 그런 마음이 아주 고맙게 느껴집니다. 사실 고해성사라 할지라도 여러 사람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좋은 이야기도 여러 번 들으면 식상하기 마련인데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안 좋은 이야기를 몇 시간을 앉아서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신부님은 그런 마음보다 신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크니 신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분이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해성사에 대한 신학적, 성사적 관점의 이야기는 이미 아실 터이니 저는 심리 치료 관점에서 설명드리지요. 고해성사는 아주 좋은 심리 치료 수단이라고 봅니다.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을 가지고 살면 그것이 마음의 병을 만듭니다. 심지어 신체적으로 이상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래 두면 단단하게 응어리가 져서 인생길을 가는데 자주 장애물 역할을 해서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에 응어리를 만드는 사연들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다고 하는 데 문제는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입을 다물어줄 사람이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건 너만 알아라’ 하고 입단속을 하여도 며칠만 지나면 온 동네가 다 압니다. 그래서 고해신부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고, 고해도 열린 공간이 아닌 닫힌 공간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짧은 고백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됩니다. 마음 안의 죄책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겁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는 불편한 마음이 나를 단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책감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성사권을 가진 사제들이 주는 말 한마디가 신자들에게 상당히 큰 심리 치료적 효과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고해소에서 아무리 짧은 시간 짧은 말이라 할지라도 사제가 해주는 말 한마디는 치유 효과가 큰 것입니다. 이것은 몸이 아픈 사람이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아픈데 무슨 묘약이 없을까 물을 때 여러 돌팔이가 중구난방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들으면 그런가 하고 미심쩍은데 전문의가 “그것은 병이 아닙니다” 라고 한마디만 해주어도 증상이 즉각 사라지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부님이 짧은 고해성사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회의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신자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신 신부님께 조언을 드리자면 고해성사가 진정으로 힐링의 장이 되도록 애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해성사가 신자들을 단죄하고 보속이라는 형량을 부과하는 병적인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고해소는 재판정, 고해신부는 하느님을 대리하는 재판관, 보속은 죄에 대한 형량, 신자들은 죄인이라는 비복음적인 구성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벗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셨는데 종도 아닌 죄인으로 몰아붙인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신자들이 고해소 앞에 서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분위기는 바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고민이 많은 세대입니다. 과거 농경사회와는 달리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 안에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외양의 화려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적으로 상처 입고 곪고 병들고 시들어가는 것이 과거와는 달리 더 급격한 양태를 가지고 사는 것이 현대인이기에 고해성사는 과거형의 것이 아니라 현대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초심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평화신문, 2015년 3월 8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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