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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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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04 ㅣ No.716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1)

 

 

전례헌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체 문헌 16편 가운데 제일 먼저 반포된 문헌이다. 정식 명칭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이하 전례헌장, 혹은 헌장)이다. 헌장은 공의회 제2회기 마지막 날인 1963년 12월4일 찬성 2147표, 반대 4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돼 반포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트리엔트 공의회1) 폐막 4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말하자면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400년 동안 변하지 않던 전례가 ‘교회 생활의 쇄신’을 주된 목적으로 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첫 번째 결실인 전례헌장을 통해 쇄신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생활에서 보통 신자들이 피부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전례, 특별히 미사 전례에서였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지금처럼 제단에서 신자들을 마주보고 미사를 드리지 않았다. 제대는 성당 제단 앞 벽에 붙어 있었고, 사제는 신자들을 등진 채 성찬례를 거행했다. 미사를 우리나라 말로 드릴 수 있게 된 것도 공의회 이후였다. 그 전에는 모두 라틴어로만 미사를 드렸다. 영성체 때 손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변화다.

전례헌장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간략하게나마 전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전례(典禮)는 쉽게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종교적 의식이나 예식을 뜻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전례는 ‘교회의 공적 예배’를 가리킨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식이 교회의 공적 예배인 전례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을 채워야 한다. ①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예배여야 하고 ②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는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여야 하며, 따라서 ③ 교회가 합법적으로 위임한 집전자가 ④ 교회가 정한 예식서에 따라 바치는 예배를 전례라고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는 전례가 아니라 신심 행사라고 부른다.

이 기준에 따른 대표적인 전례로는 미사를 포함한 일곱 성사가 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 즉 시간 전례도 전례다. 이 밖에 성전 봉헌식, 수도자 축성식 같은 축복 예식도 전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신자들이 즐겨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 묵주기도, 성모의 밤 행사, 성령 기도회 등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전례가 아니라 신심 행사에 해당한다.


전례, 특히 성찬의 희생 제사 통해 구원 이루어져

전례헌장은 서론과 본론 7장에 전체 130개 항과 부록으로 이뤄져 있다. 서론에서는 전례 헌장을 제정, 반포하게 된 취지를 설명하면서 교회 안에서 전례가 차지하는 위치와 다른 예법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1~4항). 제1장은 전례 쇄신과 증진을 위한 일반 원칙을 크게 다섯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고(5~46항), 제2장은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에 대해 할애한다(57~58항). 제3장에서는 다른 성사와 준성사들을(59~82항), 4장은 성무일도(시간 전례)에 대해(83~101항) 살핀다. 5장은 전례주년에 대해(102~111항), 6장과 7장은 각각 성음악과(112~121항) 성미술과 성당 기물에 대해(122~139항) 각각 다룬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달력 개정에 관한 선언을 부록으로 담고 있다.

전례헌장의 서론은 헌장의 목적과 함께 교회 안에서 전례가 차지하는 위치, 전례헌장과 다른 예법과의 관계 등에 대해 밝힌다. 교부들은 먼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체의 목적을 제시하면서 전례헌장 목적 또한 그 맥락 안에 있음을 밝힌다(1항). 그것은 △ 신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 생활을 나날이 발전시키고 △ 교회 생활과 관련해서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요구에 더 잘 적응시키며 △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의 일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증진하고 △ 모든 이를 교회의 품으로 부르는 데에 이로운 것은 무엇이든 강화하는 것이다. 전례헌장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전례의 쇄신과 증진”도 바로 이를 위한 것이다.

헌장은 이어 교회의 신비 안에서 전례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설명한다(2항) “전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다.” 왜? “전례를 통해서, 특히 거룩한 성찬의 희생 제사(미사)를 통해서 신자들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례는 신자들을 하느님 성전으로 성장시켜

그렇다면 교회의 신비 혹은 특성이란 무엇인가. 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며 △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지니고 △ 활동적이면서도 관상적이고 △ 세상에 현존하면서도 세상의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헌장은 계속해서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을 지향하고 또 거기에 종속되며,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활동은 관상을, 현존하는 것은 우리가 찾아가는 미래의 도성을 지향한다”고 밝힌다. 이것이 교회의 특성이다.

그런 다음 헌장은 전례의 역할을 제시한다. 전례는 △ 신자들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성장시키며 △ 그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힘을 북돋아 주고 △ 교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 된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어 전례헌장이 제시하는 전례 쇄신과 증진의 원칙이 적용되는 범위 혹은 적용 기준에 대해 설명한다(3~4항). 전례헌장에서 제시하는 실천 규범들이 “사안의 본질상 다른 예법들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면, 오로지 로마 예법에 관련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3항)는 것이다. 아울러 “자모이신 거룩한 교회가 합법적으로 인정한 모든 예법을 동등한 권리와 영예로 존중한다”(4항)고 선언한다.

여기서 ‘예법’이란 쉽게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모든 전례 양식이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는 그리스도 교회의 발전과 무관치 않다.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시작되고 점차 이웃으로 확산되면서 교회가 생기는 각 지역마다 그 지역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적용한 전례 양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전례 양식을 크게는 동방 전례와 서방 전례로 구분할 수 있다. 로마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를 동방 전례, 로마와 그 서쪽 지방에서 사용하는 전례를 서방 전례라고 부른다. 동방 전례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고유한 양식의 전례가 발전했다. 이는 서방 전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지역마다 다른 전례 양식을 예법이라고 부른다.

동방 전례에서는 지역 교회의 고유한 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서방 전례에서는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전례의 혼란을 막고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전례 개혁을 실시한 이후 대부분이 점차 자취를 감췄다. 현재 서방 교회, 곧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교구와 일부 수도회를 중심으로 고유한 예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로마 예법을 사용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물론 이 로마 교회의 전례 양식 곧 로마 예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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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촉발된 교리 문제와 교회 개혁 문제를 다룬 공의회로,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 이후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쇄신하고 교회 생활을 개혁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후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거의 400년 동안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0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2)

 

 

‘거룩한 전례의 쇄신과 증진을 위한 일반 원칙’을 다루는 제1장(5~46항)에서는 전례 쇄신과 증진을 위한 일반 원칙으로 모두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거룩한 전례의 본질과 전례가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5~13항)
② 전례 교육과 능동적 참여의 촉진(14~20항)
③ 거룩한 전례의 쇄신(21~40항)
④ 교구와 본당의 전례 생활 증진(41~42항)
⑤ 전례적 사목 활동의 증진(43~46항)

이 다섯 가지 일반 원칙은 이어오는 2장부터 7장에 나오는 내용을 실제로 규정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 가운데서도 전례의 본질 및 전례가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관한 첫째 원칙은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전례가 무엇인지 또 전례가 교회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야만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비롯해 전례헌장이 제시하는 그 밖의 내용들에 대해서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다.

이번 호에서는 일반 원칙의 이 첫째 부분을 살펴본다.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이 교회 전례 안에서 이뤄져

전례헌장의 교부들은 인간의 구원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이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주목한다(5~6항).

먼저, 하느님께서는 때가 차자 말씀이신 당신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시어 ‘육신과 영혼의 의사’가 되게 하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가 되게 하셨으며, 그리하여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특히 “당신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성취하셨다”(5항).

하느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구원 사업을 완성하게 하신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께서도 사도들을 파견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들이 선포하는 구원 활동을 모든 전례 생활의 중심인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하여 수행하게 하셨다”(6항). 교회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성령 강림 날 이후로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기 위해 한 데 모여 복음을 읽고 성찬례 거행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공의회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이 이렇게 교회의 전례 안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적시하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7항).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안에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또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신다.”

그래서 △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시며 △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시며 △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분께서 현존하신다.

전례헌장의 교부들은 이런 의미에서 전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7항)이라고 본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7항)는 것이다.

이렇게 전례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일 뿐 아니라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7항)고 교부들은 단언한다.

교회가 거행하는 이 전례는 천상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와 대비된다. 한 마디로, 지상에서 교회가 바치는 전례는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보게 해준다(8항).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지상 전례에 참여하면서 다가올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보며 이를 통해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분을 기다린다.


전례는 교회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

공의회 교부들은 이어 전례의 특징을 교회 활동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전례는 ‘교회의 유일한 활동이 아니지만 교회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9~10항)이라는 것이다.

전례가 교회의 유일한 활동이 아닌 것은 전례에 참여하려면 먼저 부르심을 받아 신앙을 갖고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면서 회개하고 믿으라고 권고한다. 그뿐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도 늘 신앙과 참회를 권고하면서 성사에 참여하도록 준비시키고,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며 온갖 신심 생활과 사도직 활동으로 신자들을 이끌어야 한다(9항).

그러나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10항)이다.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 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10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의회 교부들은 전례의 힘 또는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신자들이 파스카 성사로 힘을 얻어 그 사랑 속에 한 마음이 되도록 촉구하고 △ 믿음으로 받은 것을 생활로 지키도록 기도하며 △ 신자들을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이끌고 불타오르게 한다.

하지만 전례를 통해 이렇게 완전한 효과를 거두려면 신자들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11항). ① 올바른 정신 자세로 거룩한 전례에 참례하고 ② 자기 마음을 목소리에 맞춰 즉 말과 마음이 일치시켜 ③ 천상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은총에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공의회 교부들은 교회의 목자들에게 “신자들이 (전례를) 잘 알고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전례를 유효하고 올바르게 거행하기 위한 법규를 준수할 것을 요청한다.


거룩한 전례는 그 본질상 신심행위를 훨씬 앞서 가는 것

헌장은 이어 전례와 개인 기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12항). 전례가 이렇듯이 중요하다고 해도 영성 생활이 전례의 참여만으로 이뤄지지는 않기에, 신자들은 공동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전례의 본질과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와 같이 설명하면서 아울러 전례와 신심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한다(13항). ① 비록 거룩한 전례가 아니라 하더라도 신자들의 신심 행위는 교회의 법률과 규범에 부합하는 한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는 사도좌의 명령에 따라 이뤄질 때 특히 그러하다.

예컨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도록 했고 교황청은 이 기도의 날 예식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사도좌의 명령에 따른 신심 행위에 해당한다.

② 주교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고 합법적으로 승인된 관습이나 예식서에 따라 거행되는 개별 교회의 거룩한 행위는 특별히 존중된다. 대표적으로 매일미사 전과 매일 밤 9시에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치는 기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거룩한 전례는 그 본질상 이러한 신심 행위를 훨씬 앞서가는 것”이기에 이런 신심 행위들은 전례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공의회 교부들은 당부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1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3)

 

 

지난 호에서는 전례 쇄신과 증진을 위한 다섯 가지 일반 원칙 가운데 첫 번째 원칙인 전례의 본질과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 호에는 다른 네 가지 원칙에 대해 더 알아본다.


전례 교육과 능동적 참여의 촉진(14~20항)

헌장은 먼저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바란다”(14항)고 밝힌다. 짧은 문장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①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참여해야 한다. 전례는 전례를 거행하는 사제와 사제의 시중을 드는 복사, 열심인 몇몇 신자나 수도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② 신자들은 전례 거행에 △ 의식적이고 △ 능동적이며 △ 완전하게 참여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잡념 속에 수동적으로 자리만 지켜서는 안 된다.

공의회 교부들은 “거룩한 전례의 쇄신과 증진에서는 온 백성의 완전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위하여 최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14항)고 모든 신자의 능동적이고 완전한 전례 참여를 거듭 강조한다. 왜 그토록 강조할까? 완전하고 능동적인 전례 참여는 “신자들이 그리스도 정신을 길어 올리는 첫째 샘이고 반드시 필요한 샘”(14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전례 참여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15~19항). 헌장은 이와 관련 △ 전례 교수를 양성하고 △ 신학교와 수도자 신학원에서 전례학을 필수 전공과목으로 다뤄야 하며 △ 사제 후보자들은 전례를 올바로 이해하고 능동적이고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당한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신학교와 수도자 신학원의 생활이 완전히 전례 정신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 사제들은 자신들이 거행하는 거룩한 예식을 더욱 충분히 이해하고 전례 생활을 해나가고 △ 신자들의 전례 교육에 힘쓰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헌장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전례 중계, 특히 미사 중계를 할 때에는 합당한 인물을 통해 중계가 신중하고 품위 있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20항).


전례 쇄신을 위한 규범(21~40항)

전례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원을 두고 있다. 전례를 쇄신한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바꿔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변경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례의 깊은 본질에 맞지 않는 부분이나 잘못 끼어든 부분에 대해서는 본질에 부합하게 또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꿀 수 있어야 하고 또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 전례문과 예식의 정신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하고 신자들을 이를 더 쉽게 깨달아 전례 거행에 온전히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21항).

헌장이 전례 쇄신을 위해 제시하는 규범은 크게 네 가지다.

가) 일반 규범(22~25항). ① 전례를 규정하는 것은 사도좌(교황), 교회법 규범 안에서의 주교와 지역 주교회의에 달려 있다. 그 밖에 다른 누구도, 비록 사제라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전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 ② 전례를 쇄신하려면 △ 재검토할 전례의 각 부분에 대한 면밀한 신학적 역사적 사목적 연구가 언제나 먼저 이뤄져야 하며 △ 최근의 경험들을 고려해야 하고 △ 교회에 참으로 확실한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개혁하지 말아야 하며 △ 새로운 전례 형식들이 기존 형식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 인접 지역들 사이에서는 예식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③ 전례 거행에서 성경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전례의 쇄신과 발전과 적응을 촉진하려면 성경에 대한 감미롭게 생생한 애정을 증진해야 한다. ④ 예식서들이 먼저 개정돼야 한다.

나) 교계와 공동체의 고유 행위로서 전례의 특성에 따른 규범(26~32항). ① 전례에서는 공동 거행이 개별적이고 사적인 거행보다 우위에 있다.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전례를 거행할 때는 교역자(성직자)든 신자든 각자에게 부여된 모든 부분을 수행하고 또 그것만 수행해야 한다. 복사, 독서자, 해설자, 성가대원 역시 전례 봉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기에 그 직무에 맞갖은 깊은 신심과 바른 질서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③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증진하도록 신자들이 바치는 화답송을 비롯해 환호송, 성가는 물론 동작이나 자세도 중시해야 한다.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 ④ 전례에서는 전례법의 규범에 따라 국가 권위에 주어지는 영예를 제외하고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인정되지 않는다.

다) 전례의 교육적 사목적 특성에 따른 규범(33~36항). ① 전례를 개혁하고자 할 때는 무엇보다도 단순 간단명료하며 쓸데없는 반복을 삼가고, 예식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② 전례 안에서 예식과 말씀이 긴밀히 결합돼 있음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 더 적합하고 더 다양한 성경 봉독의 자리를 마련하고 △ 강론(설교)은 성경과 전례에 바탕을 두고 충실하고 바르게 이행해야 하며 △ 전례를 위한 교리교육도 깊이 있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③ 라틴 예법(로마 예법 혹은 라틴 전례라고도 하는데, 한국 교회는 이 예법을 따름)에서는 전례 언어로 라틴어 사용을 보존해야 한다. 모국어 사용이 크게 유익하다고 보고 모국어로 번역해 사용할 경우에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접 지역 주교들의 협의를 거쳐 결정하고 사도좌의 승인이나 추인을 받아야 한다.

라)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대한 적응 규범(37~40항). 교회는 신앙이나 공동체 전체의 선익에 관련되지 않는 한, 엄격한 통일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 미신이나 오류가 아니라면, 그 민족의 풍습을 호의로 존중하고 온전히 보존하며 전례 정신에 부합하면 전례에 수용한다. 나아가 로마 예법의 실질적 통일성이 보존된다면, 집단과 지역, 민족에 따른 정당한 다양성을 고려하고 거기에 맞출 수 있다. 이는 예식서들을 개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깊은 적응이 필요할 경우 각 지역 교회는 진지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고, 그 내용을 사도좌에 제출해 동의를 받아 도입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의 전례 생활 증진(41~42항)

대사제인 주교는 지역 교회인 교구의 중심이기에,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구의 전례 생활, 특히 주교좌성당의 전례 생활을 중시해야 한다. 또 주교를 대신해서 본당 신부가 사목하는 본당사목구의 전례 생활도 중시해야 한다. 특히 본당 사목구에서 공동체 의식이 주일 미사의 공동 거행에서 꽃피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례적 사목 활동의 증진(43~46항)

전국 차원에서는 전국 전례위원회를, 교구 차원에서는 교구 전례위원회를 두어 전례적 사목 활동을 증진해야 한다. 전례위원회에는 전례학, 성음악, 성미술과 사목 문제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하며, 관련 분야의 뛰어난 평신도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4)

 

 

전례헌장 제2장부터는 1장에서 제시한 ‘전례 쇄신과 증진을 위한 일반 원칙’을 전례의 여러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2장은 그 가운데서도 신자 생활의 중심이며 정점이자 전례에서도 중심 되는 자리를 차지하는 성체성사 곧 미사에 대해 할애한다(47~58항).

성체성사 곧 미사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파스카 신비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하느님과 화해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만찬 때에 당신 몸과 피의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파스카 신비를 이루셨다.

공의회 교부들은 미사가 △ 자비의 성사이고 △ 일치의 표정이며 △ 사랑의 끈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미래의 영광을 보증 받는 파스카 잔치”라고 말한다(47항).

이 미사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다(48항). 이는 공의회 교부들이 전례 쇄신과 증진을 위한 두 번째 원칙으로 제시한 ‘전례 교육과 능동적 참여의 촉진’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부들은 이와 관련, 교회는 신자들이 △ 국외자나 말없는 구경꾼처럼 끼어있지 않고 △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미사의 신비를 잘 이해하며 △ 미사 전례에 의식적이고 경건하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려면 신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이 있다. 1) 하느님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성경 말씀을 통해,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2) 주님 몸의 식탁에서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힘을 얻고 그 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3) 사제와 하나 되어 흠 없는 제물을 봉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자는 사제가 바치는 제사의 구경꾼이 아니다. 사제와 하나가 되어 제사를 바치면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해야 한다. 4) 날이 갈수록 하느님과 일치하고 서로서로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미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와 신자들 사이의 일치가 갈수록 증진돼야 한다.


미사에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요구돼

이렇게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공의회 교부들은 백성과 함께하는 미사, 특히 주일과 의무 축일의 미사에서 바꾸거나 강조하거나 보충해야 할 사안들을 제시한다(49~58항). 우선, 미사 통상문의 개정이다(50항). 통상문의 개정은 △ 각 부분의 고유한 본질과 상호 연관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 신자들의 경건하고 능동적인 참여가 더 쉽게 이루어지도록 미사 통상문이 개정돼야 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공의회 이전까지 미사 통상문에는 이런 측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음을 뜻한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미사는 집전 사제가 복사를 데리고 미사를 드리는 방식 위주였다. 그래서 신자들은 사제가 복사와 주고받으면서 미사를 바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수준이었으니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란 힘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미사 통상문의 개정이 이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져야 함을 제시하면서 구체적 적용은 1장에서 제시한 ‘전례 쇄신의 원칙’을 따를 것을 주문한다. 곧 예식이 그 본질 내용을 보존하면서도 단순화돼야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고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복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사 통상문은 바티칸 공의회의 이런 결정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다음으로, 미사에서 성경을 더욱 풍성하게 활용하는 것이다(51항). 공의회 교부들은 “하느님 말씀의 더욱 풍성한 식탁을 신자들에게 마련하여 주도록 성경의 보고를 더 활짝 열어, 일정한 햇수 안에 성경의 더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봉독돼야 한다”고 제시한다. 오늘날 미사 말씀 전례 때에 하는 성경 봉독은 이 원칙을 적용하고 발전시킨 결과다. 그래서 3년 동안 매일 미사의 독서를 다 읽으면 성경의 거의 전부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의회 교부들은 강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52항).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될 뿐 아니라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이 생략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강론은 미사의 전례문과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구원의 신비와 그리스도 신자들의 생활 규범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공동 기도’ 또는 ‘신자들의 기도’가 복음과 강론 다음에 있어야 한다고 전례헌장의 교부들은 강조한다(53항). 오늘날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바치는 ‘보편 지향 기도’가 이 기도다.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마련된 ‘미사경본 총 지침’에 의하면, 보편 지향 기도는 ㉠ 교회를 위해 ㉡ 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 지역 공동체를 위해 바친다. 기도를 바치는 순서도 이와 같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밀접히 결합되어 하나의 예배 행위 이뤄

오늘날 모국어 미사는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일반화돼 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쇄신에 따른 것이다. 전례헌장 54항은 이 모국어 사용에 관한 항목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전례 쇄신의 원칙(36항)에서 제시한 규범에 따라 독서와 공동 기도, 그밖에 신자들과 관련된 부분에서 전례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나아가 지역 상황에 따라 더 많은 부분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지역 교회가 숙고해서 사도좌의 동의를 얻어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미사 통상문은 공의회 교부들의 이런 결정을 바탕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된 미사 통상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몇 차례 개정을 거친 것이다. 물론 개정할 때마다 사도좌에 보내 동의를 얻었다.

전례헌장은 나아가 “신자들이 라틴어로도 자기들과 관련된 미사 통상문의 부분들을 외우거나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모국어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공의회 교부들은 양형 영성체와 관련, 사도좌에서 규정한 경우에 주교들의 판단에 따라 성직자와 수도자는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허락될 수 있다고 밝힌다(55항). 그렇지만 양형 영성체 곧 성체와 성혈을 다 모시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모신 것이라는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은 재확인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다루는 제2장 마지막 부분에서 공의회 교부들은 미사의 단일성을 강조한다(56항). “미사를 이루는 두 부분, 곧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어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 공의회가 이를 강조하는 것은 미사에서 성찬 전례만 중시하고 말씀 전례는 소홀히 해, 주일과 의무 축일에 성찬 전례에만 참여해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의회 교부들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뤄진 미사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미사 전체에 참여하도록 신자들을 교육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하게 권고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5)

 

 

공의회 교부들은 전례헌장 2장에서 신자 생활의 중심이자 정점이 되는 미사, 곧 성체성사에 대해 다루고 나서 3장에서는 다른 성사와 준성사들에 대해 언급한다(59~82항)

3장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사와 준성사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간단하게라도 알아보자. 성사는 쉽게 말해 ‘은총의 효과적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비신자 교리서’에서는 성사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효과적인 표징들로서, 이 표징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를 풀어보면 성사는 ①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② 교회에 (거행하라고) 맡기신 ③ 은총의 (효과적) 표징이다.

전례헌장의 교부들은 성사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성사가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59항)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표징’이다. 성사를 은총의 샘이라고 하지만, 사실 은총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은 은총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표징이다. 표징은 신자들에게 그것이 성사임을 보증한다. 이렇게 표징은 신자들에게 성사임을 일깨워주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성사의 표징들은 무엇일까. ‘말씀과 사물’이다. 모든 성사에는 말씀과 사물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표징이 있다. 예컨대 세례성사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의 표징과 ‘물’(세례 수)이라는 사물의 표징이 있다. 그래서 집전자가 세례를 받는 이의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고 말함으로써 세례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에서는 ‘너희는 받아먹어라. …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 마셔라. … 내 피다’라는 말씀과 ‘빵과 포도주’라는 사물이 각각 표징을 이룬다.


성사는 ‘은총의 효과적 표징’

이렇게 성사는 말씀과 사물의 표징으로써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공의회 교부들은 “신자들이 성사의 표징들을 쉽게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인 생활을 살찌우도록 제정된 이 성사들을 열심히 자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59항).

전례헌장은 성사의 본질에 대한 설명에 이어 준성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준성사는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하여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하는 거룩한 표징들이다”(60항). 여기서 성사와 준성사의 차이가 드러난다. 성사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인 반면에 준성사는 교회가 제정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회가 준성사를 제정한 것은 교회의 간청으로 신자들에게 영적 효력을 얻어 주기 위해서다.

성사에는 일곱 성사가 있다. 입문 성사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체성사가 있고, 치유의 성사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가 있다. 또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로 성품성사와 혼인성사가 있다.

반면, 준성사에는 그 수에 제한이 없다. 교회와 인간이 처한 상황과 교회의 필요에 따라 교회가 제정한 것이 준성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성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축성(봉헌) 예식이다. 아빠스(대수도원장) 축성, 동정녀 축성, 수도 서원, 성당 봉헌식, 제대와 성합 성작 같은 제구의 축성이 모두 준성사들이다. 둘째는 축복 예식이다. 묘지 축복, 경당 축복, 산모나 병자의 축복, 집과 차량의 축복, 묵주나 성상 축복 등이다. 셋째는 구마 예식이다. 최근 영화 ‘검은 사제들’에 나오는 구마 예식이 이에 해당한다.

전례헌장의 교부들은 “파스카 신비에서 모든 성사가 그 효력을 이끌어내는 것”이이라고 밝힌다(61항). 바꿔 표현하면 모든 성사와 준성사의 효력의 원천이 파스카 신비,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성사와 준성사의 중심에는 파스카 신비, 곧 성체성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성체성사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성사와 준성사 집전에 모국어 사용

전례헌장은 이어 성사 예식의 개정 필요성에 관해 언급하면서, 각 예식의 개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62~82항). 성사와 준성사 예식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 그 본질과 목적이 우리 시대에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끼어들어 있고 △ 어떤 것들은 우리 시대의 요구에 적응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예식 개정은 제1장에 나오는 거룩한 전례의 쇄신(21~42항) 규범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예시라 할 수 있다.

교부들은 우선 예식의 언어와 관련, 모든 성사와 준성사의 집전에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또 각 지역 교회는 언어에 관한 것을 포함해 그 지역에 필요에 따라 적응시킨 개별 예식서를 먼저 마련해 사도좌 곧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사용해야 한다고 제시한다(63항).

세례 예식과 관련해, 헌장은 어른들의 세례 준비기를 복귀시키고 지역 교회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64항). 예전에는 예비신자 환영식(입교식이라고 잘못 사용하는 본당이 많음)이 끝나면 교리를 받고 바로 세례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각 본당마다 환영식과는 별도로 예비신자 교리 기간 중에 단계별로 ‘예비신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 ‘선발 예식’ 같은 예식을 하는데, 전례헌장의 이 규정을 반영한 것이다.

세례 예식의 개정과 관련, 헌장은 “그리스도교 전통에 있는 것들 외에 각 민족의 관습에서 발견되는 입문식의 요소들”도 헌장 1장의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대한 적응 규범’(37~39항) 및 ‘교구와 본당 사목구의 전례 적응 절차’(40항)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힌다(65항).

이 밖에 △ 세례 받을 사람이 많을 때에 적용할 예식 △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에게 사제나 부제가 없을 때에 신자들이 쓸 수 있는 짧은 세례 예식 △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유효한 세례를 받은 이가 가톨릭에 귀의할 때에 이들이 교회의 일치 안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예식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헌장은 제시한다(68, 69항).

어린이 세례 예식의 개정과 관련해서는 △ 대부모의 역할과 의무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예식을 개정하고 △ 간략한 예식으로 세례를 받은 어린이가 이미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음을 더 명백하고 적절히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예식이 마련돼야 한다고 헌장은 단언한다(67, 69항).

견진 예식과 관련, 공의회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입교 전체와 견신성사의 밀접한 연결이 명백히 드러나도록 개정해야 하고(71항), 고해 예식과 기도문도 고해성사의 본질과 효과를 더욱 뚜렷이 드러내도록 개정해야 하며(72항), 병자성사의 경우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은 사람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때면 이미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제시한다(73).

헌장은 이 밖에도 서품 예식, 혼인 예식, 준성사와 수도 서원 예식, 그리고 장례식의 개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76~82항).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예식서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런 예식 개정 규범에 따라 개정해 사도좌의 승인을 얻었거나 아니면 사도좌의 추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예컨대 ‘어른 입교 예식’, ‘축복 예식’, ‘수도 서원 예식’, ‘견진 예식’ 등은 사도좌의 추인을 기다리며 시안으로 사용 중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2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6)

 

 

전례헌장 제4장은 성무일도에 관해 다룬다(83~101항). 성무일도는 정해진 시간에 시편 기도와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바치는 교회의 공적 기도로, 오늘날에는 ‘성무일도’라는 용어 대신에 ‘시간 전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공의회 교부들은 시간 전례인 성무일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기도’라고 표현한다. 대사제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류 구원을 위한 사제 직무를 완수하시고, 이를 교회가 계속 수행하도록 맡기셨다. 교회는 그래서 세상 끝 날까지 이 직무를 성찬례 거행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주님을 찬미하며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간청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성무일도다(83항 참조). 성무일도는 성찬례 곧 미사와 함께 교회가 바치는 공적 기도인 전례에 속한다.

이 기도를 ‘시간 전례’라고 부르는 것은 정해진 시간마다 이 기도를 바쳤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성무일도는 하루에 모두 8번 바치도록 이뤄져 있었다. 야과경(독서기도), 찬미경(아침기도), 일시경, 삼시경(오전 9시에 바치는 기도), 육시경(12시에 바치는 기도), 구시경(오후 3시에 바치는 기도), 만과경(저녁기도), 끝기도가 그것이다(89항 참조).

이렇게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를 바치는 것은 단지 기도를 많이 바치라는 것이 아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렇게 밝힌다. “성무일도는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라 낮과 밤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되도록 이루어져 있다”(84항). 즉 활동하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 할 것 없이 하루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고 거룩하게 하는 기도가 성무일도인 것이다.

그래서 성무일도를 바치는 모든 사람은 “교회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또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드높은 영광에 참여하는 것”(85항)이라고 공의회 교부들은 언명한다.

교부들은 나아가 성무일도의 사목적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거룩한 사목 교역에 헌신하는 사제들은 ‘끊임없이 기도하여라’(1테살 5,17 참조)고 한 바오로의 권고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더욱 생생하게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큰 열성으로 시간경의 찬미를 바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제들이 수고하는 일에는 오로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고 하신 주님께서만 성과와 발전을 가져다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86항). 말하자면 성무일도는 끊임없는 기도의 표현이며, 이 기도는 일의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제 자신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심을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성무일도는 끊임없는 기도의 표현

하지만 한밤중에 일어나서 야과경을 바치는 것을 시작으로 평균 3시간에 한 번씩 시간 전례를 바치는 것은 현대의 생활에는 맞지 않는 측면이 많다. 그래서 공의회 교부들은 시간 전례인 성무일도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사목적 가치를 높이 존중하면서도 현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그 원칙과 규범을 제시한다.

우선 전통적인 구조의 개정이다. 이와 관련 공의회 교부들은 성무일도를 바치는 목적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하루의 성화”에 있음을 직시하면서 서로 연관된 두 가지 개정 원칙을 제시한다. 하나는 시간경들의 전통적 흐름을 실제 시간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사도적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현대의 생활환경을 고려하는 것이다(88항).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교부들은 성무일도 개정 규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① 아침기도인 찬미경과 저녁기도인 만과경은 매일 성무일도의 두 축으로 여겨야 한다. ② 끝기도는 하루의 마침에 잘 어울리도록 개정돼야 한다. ③ 야과경(독서기도)은 공동으로 바칠 때는 밤중 찬미의 성격을 보존하더라도 하루 중 어느 시간에나 바칠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또 시편은 줄이고 독서는 더 길게 해야 한다. ④ 일시경은 폐지돼야 한다. ⑤ 공동으로 바칠 때는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같은 소시간경들이 유지돼야 하지만, 공동으로 바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날의 제 시각에 더 적합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89항). 또 성무일도의 △ 시편 배치 △ 독서의 정리 △ 찬미가의 개정 △ 기도 시간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91~94항).

공의회 교부들은 이와 함께 성무일도가 신심의 원천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정성을 다해 바칠 것을 당부한다.

“성무일도는 교회의 공적 기도로서 신심의 원천이며 개인 기도의 자양이므로, 사제들과 성무일도에 참여하는 다른 모든 사람은 이를 바치며 마음을 목소리와 조화시키도록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유한다.”(90항) 또 성무일도를 더 잘 바치기 위해서는 전례와 성경 특히 시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일반신자들도 성무일도 바치기를 권고

공의회 교부들은 성무일도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개정 규범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와 평신도의 참여 등에 대해서도 제시한다(95~101항). 우선 공동 기도 의무가 있는 공동체들, 곧 대성당 또는 주교좌성당에서 전례를 공동 집전하는 의무를 진 사제들(의전 사제들), 베네딕도회 같은 정주 수도회의 수도자들, 기타 법이나 회헌에서 공동 기도 의무를 규정한 공동체들에서는 성무일도 전체를 공동으로 바쳐야 한다.

공동 기도 의무를 규정한 공동체에서 부제품 이상을 받았거나 성대 서원(종신 서원)을 한 모든 회원은 공동으로 바치지 못했을 경우 혼자서라도 바쳐야 한다. 또 공동 기도의 의무가 없다 하더라도 성직자들은 날마다 혼자서든 혹은 공동으로든 성무일도를 바쳐야 한다(95~96항).

공의회 교부들은 또한 성무일도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회헌에 따라 일부분을 바치는 회원들 역시 교회의 공적 기도인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과 같고, 회헌에 따라서 성무일도 양식을 따른 소성무일도를 바칠 때도 교회의 공적 기도인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과도 같다고 본다(98항).

공동 기도의 의무가 없는 성직자라 할지라도 공동생활을 하는 사제라면 적어도 성무일도의 일부분을 합동으로 바치도록 권장된다고 헌장은 제시한다. 이는 성무일도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 기도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공동으로 또는 합동으로 바칠 경우 되도록 노래로 바쳐야 한다고 공의회 교부들은 밝힌다(99항).

헌장은 또 일반 신자들도 성무일도를 바치기를 권고한다. “영혼의 목자들은 주일과 대축일에 주요 시간경 특히 저녁기도를 성당에서 합동으로 바치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또한 평신도들도 사제들과 함께, 또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아니면 각기 혼자서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권장한다.”(100항)

전례헌장의 이런 개정 원칙과 규범에 따라 교황청은 1971년 기존의 성무일도를 개정했고, 1985년에는 다시 성무일도 표준판을 공포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971년에 개정된 성무일도를 우리말로 번역해 1978년 사도좌의 승인을 얻어 사용하다가 1985년 교황청의 개정 표준판이 공포되자 다시 5년 가까이 작업한 끝에 1990년 교황청 인준을 받아 개정판을 냈다. 오늘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는 이 개정판이다.

개정판 성무일도는 독서기도,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로 이뤄져 있다. 주교회의는 시간 전례를 바치고자 하는 신자들을 위해 개정판 ‘성무일도’를 줄인 ‘소성무일도’도 펴냈는데, 독서기도가 없고 시편이 적게 수록돼 있다.※ 성모소일과와 소성무일도 : 성모소일과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취지로 성무일도의 시간경을 따라 만든 기도서. 성모소일과는 10세기쯤부터 바치기 시작해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는 주로 여성 수도회나 단체들에서 성무일도 대신 바쳐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열심인 레지오 단원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성모소일과(소성무일도)’를 바쳐왔으나 이는 주교회의에서 펴낸 ‘소성무일도’와는 다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3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7)

 

 

전례헌장 제5장은 전례주년을 다룬다(102~111). 먼저 전례주년의 의미를 밝힌 다음 전례주년의 개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하면서 이를 특별히 사순시기와 성인들의 축일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전례주년이란 인류 구원의 역사를 한 해를 주기로 하여 거룩한 전례를 통해 기념하고 경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세주의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수난과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에 이르기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가 전례주년 안에서 펼쳐진다.

 

교회가 이렇게 전례주년을 만들어 구원 신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의 풍요로운 힘과 공로가 모든 시기에 어떻게든 현존하도록 그 보고를 신자들에게 열어, 신자들이 거기에 다가가 구원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한다”(102). 전례주년에 따라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거룩한 전례로 경축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구원의 은총이 전례 안에서 신자들에게 전해지도록 함으로써 신자들이 구원의 은총을 충만히 받아 자신의 성화와 인류 구원에 이바지할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또 교회는 전례주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만을 경축하는 것이 아니다. 전례주년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도 포함된다. 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 신비의 이 연례 주기를 지내는 동안 거룩한 교회는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풀릴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 있는 천주의 복되신 성모 마리아를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한다”(103).

 

나아가 교회는 순교자들과 다른 성인들도 전례주년에 넣어 기념한다. 헌장은 성인들은 이미 영원한 구원을 얻어 천상에서 하느님과 완전한 찬미를 드리며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다면서 성인 축일을 기념하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성인들의 탄일에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받고 함께 영광을 받은 성인들 안에서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하는 그들의 모범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며 그들의 공로로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하여 받는다(104).

 

전례주년에는 이 밖에도 특별한 시기들이 포함된다. “주년의 여러 시기에 전통적인 규율을 따라, 교회는 영혼과 육신의 경건한 훈련, 교화, 기도, 보속과 자선 활동을 통하여 신자들의 교육을 완수한다.”(105)

 

 

주일은 최초의 근원적 축일

 

전례주년의 의미와 성격 등을 이렇게 설명한 후 공의회 교부들은 특별히 주일의 의미에 대해 강조한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다. 성경에서 안식일 다음 날이자 주간 첫날이라고 부르는 이 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마태 28,1 이하 참조). 이 날은 파스카 신비 -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 ? 가 완성된 날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 시대 때부터 여덟째 날마다 이 파스카 신비를 경축했다.

 

이 전승을 받아들여 공의회 교부들은 이렇게 결정한다. “이 날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참여하고, 주님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며, ‘우리를 다시 낳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 주신’(1베드 1,3)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106) 주일은 그래서 최초의 근원적 축일이다. 교회가 가톨릭 신앙에 입문하려는 예비신자 때부터 주일 미사 참여를 강조하고 당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아가 헌장은 신자들의 신심을 일깨워 주는 주일은 또한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 강조하여야 한다면서 참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면 다른 행사를 결코 주일에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언명한다. “주일은 전례주년 전체의 토대이며 핵심이기 때문이다.”(106)

 

 

성인들의 축일을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돼

 

헌장은 이어 전례주년 개정과 관련해서 유념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한다. 우선, 전례주년을 재검토해서 전통적인 관습과 규율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맞게 보존하거나 복구해야겠지만,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면서 신자들의 신심을 배양하도록 하려면 전례의 본질적 특성을 유지해야 한다(107).

 

다음으로, 신자들은 주년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들을 경축하는 주님의 축일들을 먼저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구원 신비들을 기념하는 고유 시기가 성인들의 축일 위에서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여, 구원 신비의 완전한 주기가 마땅한 방법으로 기억되도록 하여야 한다.”(108) 말하자면, 신자들이 특정한 성인들에 대해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성인들의 축일을 주님의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헌장은 사순시기에 대해 특별히 할애한다. 사순시기는 세례의 기억 또는 세례의 준비를 통해, 또 참회를 통해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는 시기다. 따라서 사순시기에는 세례의 기억 또는 준비와 참회라는 두 가지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세례의 요소들이 사순시기 전례에 더욱 풍부히 활용 되도록 해야 한다. 참회와 관련해서는 죄의 사회적 결과와 함께, 죄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므로 이를 멀리하여야 한다는 참회의 저 고유한 본질을 신자들의 마음에 박아 주어야 한다.”(109)

 

공의회 교부들은 나아가 사순시기의 참회는 오로지 내적이고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이고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110)고 강조한다. 성 금요일의 금식재는 어디에서나 지켜야 하며 필요에 따라 성 토요일까지 연장해서 드높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 부활의 기쁨에 이르러야 한다”(110)고 제시한다.

 

넷째는 성인들의 축일에 관한 것이다. 헌장은 성인들에 대한 공경은 물론 그들의 유해와 성화상도 존중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앞에서 잠시 살펴봤듯이, 성인들의 축일은 구원의 신비 자체를 기억하는 축일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고 이 가운데 많은 축일은 개별 교회나 국가나 수도회에서만 거행하도록 남겨두고 참으로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닌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들만 보편 교회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언명한다.

 

전례헌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런 가르침을 바탕으로 보편교회는 전례주년 개정 작업에 착수해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과 새로운 보편 전례력을 마련했고, 바오로 6세 교황은 19692월 이를 승인하는 자의교서를 발표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력(교회 달력)과 매일 축일표는 이에 따른 것이다.

 

세례를 받은 지 50년 이상 된 신자들에게는 세례 받았을 당시의 본명(영명) 축일 날짜와 지금 지내는 축일 날짜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례헌장의 전례주년 개정에 따라 새로 만든 보편 교회력에서 이전의 축일을 옮긴 데 따른 것이다. 또 예전에는 사순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로 지냈으나, 전례주년의 개정 이후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까지를 파스카 성삼일로 연중 가장 중요하게 지내면서,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 직전까지를 사순시기로 지낸다. 사순시기는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4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8)

 

 

전례헌장 제6장은 성음악에 대해 다룬다(112~121항). 성음악이란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 및 신심행위를 위해서 거룩하고 예술성 있게 작곡된 모든 양식의 음악”을 말하는데, 이 성음악을 거룩한 전례에 사용할 때 전례음악이라고 부른다(‘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 8항).

 

헌장은 우선 성음악의 역할에 대해 △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고 △ 한 마음을 이루도록 북돋아 주고 △ 거룩한 예식을 더욱 성대하고 풍요롭게 꾸며준다고 설명한다. 이런 역할이 지향하는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서다(112항).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에 신자들이 활기차게 성가를 부르며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또 좋은 성가대가 있어 미사 전례의 분위기를 더욱 드높일 때, 그런 미사에 참여하고 나면 어쩐지 미사를 잘 드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헌장은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예식들을 장엄하게 노래로 거행할 때 전례 행위가 더욱 고귀한 형식을 갖춘다”(113항)며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배려하고 성가대, 특히 주교좌성당의 성가대를 꾸준히 육성할 것을 강조한다(114항).

 

헌장은 또 성음악 교육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신학교와 수도회의 수련원, 신학원을 비롯해 가톨릭 학교와 교육 기관에서는 음악 교육과 실습을 중시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성음악 교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성음악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할 것을 권장하면서, 교회 음악가와 성가대원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전례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적시한다.(115항)

 

 

성음악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 위해

 

성음악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레고리오 성가다. 공의회 교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여기면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전례 행위 안에서 첫 자리를 부여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성음악들, 특히 다성 음악도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증진하는 데 부합한다면 “배제되지 않는다”(116항).

 

교부들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소극적 표현을 한 것은 다성 음악의 남용으로 인한 ‘폐해’, 곧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증진하기보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폐해는 드물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도 발견된다. 예컨대 성가대가 전례 중에 특송으로 부르는 다성 음악이 전례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전례에 집중하도록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분심을 더 키우는 경우가 그러하다. 헌장은 또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위해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 음악 외에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118항)고 강조한다.

 

공의회 교부들은 선교 지역의 성음악과 관련, “될 수 있는 대로 그 민족의 전통적인 음악을 학교에서와 거룩한 예식에서 장려할 수 있게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밝힌다(119항). 물론 전례 쇄신과 적응을 위한 일반 규범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또 성음악에 사용되는 악기와 관련해서는 전통적 악기인 파이프 오르간을 장려하면서도, 다른 악기들도 △ 거룩한 용도에 적합하거나 적합해질 수 있고 △ 성전의 품위에 알맞고 △ 참으로 신자들의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전례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121항).

 

헌장은 교회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정신에 젖어 성음악을 계발하고 그 보화를 발전시키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며 소명 의식을 지닐 것을 당부했다. 또 작곡을 할 때는 △ 진정한 성음악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 큰 성가대에만 아니라 작은 성가대에도 맞고 △ 신자 집단 전체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 곡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사와 관련해서는 △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고 △ 주로 성서와 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고 적시한다.

 

전례헌장의 성음악에 관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교황청은 1967년 ‘거룩한 전례의 성음악 훈령’을 발표했고, 전례헌장과 성음악 훈령을 토대로 한국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을 마련했고, 이 지침은 2008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승인을 얻었다.

 

성음악과 관련되는 모든 이들, 사제들을 비롯해서 교회 음악가, 성가대 지휘자와 성가대원들은 이 지침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전례헌장은 마지막 7장에서 성미술과 성당 기물에 대해 다룬다(122~130항). 공의회 교부들은 우선 “교회는 어떠한 미술 양식도 자기 고유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성미술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이렇게 명시한다. “우리 시대와 모든 민족과 지역의 미술은, 거룩한 예식에 마땅한 존경과 마땅한 경외로 봉사한다면, 교회 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123항).

 

 

교회는 성미술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 존중

 

하지만 성미술은 단순히 사치에 치우치기보다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향해야 한다고 공의회 교부들은 강조한다. 이는 제의와 성당 기물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한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 신앙과 양속, 그리스도교 신심을 거스르는 작품 △ 올바른 종교적 감정을 해치는 작품들은 멀리해야 한다. 형상을 왜곡하거나 예술성이 부족한 작품, 저속하고 허식이 깃든 작품들이 올바른 종교적 감정을 해치는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성당을 건축할 때는 △ 전례에 거행에 △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에 적합한 건축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124항).

 

공의회 교부들은 또 “신자들이 공경하도록 성당 안에 성화상을 전시하는 관행은 보존돼야 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신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도록, 또 덜 건전한 신심에 빠져들게 하지 않도록, “적절한 수량과 알맞은 순서로 배치해야 한다”고 제시한다(125항).

 

미술 작품을 판단할 때에 교구 직권자들은 교구 성미술위원회의 의견을 듣고, 필요하다면 교구나 전국 전례위원회는 물론 다른 유능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공의회 교부들은 밝힌다. 또 “하느님 성전의 장식인 성당 기물이나 귀중한 작품들이 처분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애써 돌보아야 한다”고 언명한다(126항).

 

헌장은 주교들에게는 “미술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깊은 사제들을 통해 미술가들이 성미술과 거룩한 전례의 정신에 젖어들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미술가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거룩하게 모방하고, 가톨릭 경신례와 신자들의 교화와 신심과 종교 교육에 이바지하는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면서 소명 의식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127항).

 

공의회 교부들은 아울러 성미술 관련 법규의 개정을 주문한다. 특히 △ 성당의 품위 있고 적절한 건축 △ 제대의 형태와 구조 △ 감실의 고귀한 외양과 배치와 보안 △ 세례소의 편리하고 품위 있는 설비 △ 성상들의 조화와 장식과 설비에 관한 규정들의 개정을 요청한다(128항). 성 미술과 관련한 요청은 1969년 바오로 6세 교황이 공포하고 이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에 수정 보완한 ‘미사경본 총지침’에 반영돼 있다. ‘총지침’ 5장 ‘성찬례를 거행하는 성당의 설비와 장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헌장은 또 성직자들에게 △ 성미술의 역사와 발전에 대해 △ 성미술 작품들이 바탕으로 삼아야 할 건전한 원리들에 대해 배워 교회의 존중한 기념물들을 존중하고 보완해야 하며, 미술가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129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5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 전례헌장 해설 (9)

 

 

전례헌장 해설을 마치면서 이번 호에서는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4월호 참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미사경본 총지침’에 우리말 전문이 번역돼 있는 이 ‘일반 규범’을 알고 나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보편 전례력(교회 달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날 전례에는 어떤 기도문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능동적 전례 참여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례일

 

교회는 모든 날을 전례, 특히 감사 제사(미사)와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통해 성화하지만, 특정한 날들에는 특별한 지향으로 전례를 거행한다.

 

우선 주일이 있다. ‘주간 첫날’인 주일은 특별히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내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사도 때부터 이어오는 전통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기원을 둔 파스카 신비를 거행한다.” 그래서 주일은 “근원 축일”이다(4항). 주일에는 신자들이 파스카 신비의 거행, 곧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 축일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모든 주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25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1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15일)을 의무 축일로 지낸다.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이 외에도 주님 공현 대축일(1월6일), 주님 승천 대축일(부활 후 40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 등을 의무 축일도 지낸다. 한국 교회에서는 의무 축일로 지내지는 않지만 그 축일의 중요성을 감안해 주일로 옮겨 지낸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2~8일 사이의 주일로, 주님 승천 대축일은 부활 제7주일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로 옮겨 지낸다. 이를 ‘이동 축일’ 혹은 ‘이동 경축’이라고 한다.

 

주일에 이어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들이 있다. 교회는 한 해를 주기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지만 아울러 하느님의 어머니인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하며, 또 신자들의 신심을 위해 순교자들을 비롯해 다른 성인을 기념하는 날도 함께 마련해 놓고 있는데, 그 등급에 따라 대축일, 축일, 기념일로 나뉜다.

 

전례일은 자연 일을 기준으로 보통 자정에서 다음날 자정까지이지만, 주일과 대축일은 그 전날 저녁부터 경축한다.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보면, 주일과 대축일에는 늘 제1 저녁 기도가 있는데 이러한 원칙 때문이다. 또 토요일 저녁에 거행하는 미사를 흔히들 토요 ‘특전 미사’라고 불러 왔는데, ‘특전 미사’라기보다는 주일 ‘제1 저녁 미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축일과 기념일은 자연 일을 기준으로 한다.

 

기념일에는 의무적으로 경축해야 하는 의무 기념일과 선택적으로 경축할 수 있는 선택 기념일이 있다. 의무 기념일이 12월17~14일 사이의 대림시기 평일과 사순시기 전체의 평일에 올 때는 의무 기념일일이 아닌 선택 기념일로 지낸다. 이 시기의 평일이 의무 기념일보다 앞선다는 의미다.

 

 

전례주년

 

전례주년이란 그리스도의 강생부터 성령 강림, 나아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한 해를 주기로 하여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파스카 성삼일 : 전례주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이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은 마치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파스카 성삼일은 성주간 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 기도로 끝난다. 특히 주님께서 부활하신 밤인 파스카 성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모든 밤샘 전례의 어머니”라고 불렀을 정도로 전례에서 탁월한 자리를 차지한다. 교회는 이 밤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깨어 기다리면서 성사들(세례성사와 성체성사)로 그분 부활을 경축한다. 파스카 성야의 모든 전례는 밤이 된 다음에 시작해야 하고 날이 밝기 전에 마쳐야 한다.

 

부활시기 :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 주일까지 50일을 부활시기라고 부른다. 이 “50일 동안은 마치 하루의 축일처럼, 나아가 하나의 ‘위대한 주일’로서 기뻐하고 용약하며 경축”(22항)한다.  특별히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시기도 이때다. 부활 주일부터 부활 제2주일까지의 8일은 부활 팔일 축제를 이루며 주님의 대축일로 지낸다. 부활 주일 다음 40일에는 주님의 승천을 경축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로 지낸다. 이날은 원래 의무 축일이다. 하지만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는 선교 지역에서는 부활 제7주일에 승천 대축일을 옮겨 지낸다.

 

사순시기 : 사순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시기로,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 직전까지 계속된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을 하고 머리에 재를 바른다. 이날부터 파스카 성야까지는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는다. 사순 제 6주일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주님의 수난까지를 기억하는 한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부른다. 성주간 목요일 아침에는 주교가 사제단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면서 전례 때에 사용하는 기름을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만든다.

 

성탄시기 : 성탄시기는 예수 성탄 대축일 제 1저녁 기도(12월24일 저녁)부터 시작하며 주님 공현 (1월6일, 한국에서는 1월 2~8일 사이의 주일) 다음 주일(주님 세례 축일)까지 계속된다.

 

부활 8일 축제와 마찬가지로 성탄 때도 성탄 대축일부터 8일 축제를 지내는데, 다음과 같이 지낸다. ㉠ 8일 축제 중에 주일이 오면 그날에, 주일이 없으면 12월30일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고 ㉡ 12월26일에는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을 ㉢ 27일에는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 성탄 팔일 마지막 날인 1월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낸다.

 

대림시기 : 대림시기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기념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때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두 번째 곧 세상 마지막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기다리는 때”(39항)다. 특별히 “12월17일부터 24일까지의 평일은 예수 성탄을 직접 준비하는 때”(42항)다. 대림시기는 11월30일 주일이나 이날과 가장 가까운 주일의 제1 저녁 기도부터 시작하여 예수 성탄 제1 저녁 기도 직전에 끝난다.

 

연중시기 : 이런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시기를 제외하면 한 해의 주기에서 33주 혹은 34주가 남는데,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경축하는 이 시기를 연중시기라고 한다. 연중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 다음 월요일에 시작해 사순시기 전 화요일까지 계속되며, 또 성령 강림 주일 다음 월요일에 시작해 대림 제1주일 제1 저녁 기도 직전에 끝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6월호, 이창훈 알퐁소(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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