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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 교회행정,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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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8 ㅣ No.496

[경향 돋보기 - 교회행정] 교회행정,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행정,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 원고를 요청받았다. 사실 나는 행정의 개념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행정이란 정부 기능의 계획, 조직, 관리, 조정, 통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곧 입법, 사법, 행정 중에서 행정은 집행을 의미하며 교회 안의 행정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운영하고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목자들은 행정의 집행자임을 쉽게 연상할 수 있고, 본당 안에서도 행정 집행이 제대로 되려면 많은 협조자들과 훌륭한 평신도들의 조직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다행히도 한국 교회는 역사적으로 평신도들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외국 선교사들이 남겨놓은 많은 서류와 편지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기록들을 남겨놓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여기서 행정에 관한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고 내 직무가 사무처장인 관계로 주로 문서(서류) 행정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2000년 1월에 관리국장으로 임명받고, 2003년에는 사무처장까지 겸임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교구청에 머물고 있다. 사무처장의 소임을 받았을 때 은퇴하신 김창렬 주교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주교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 교통이 불편했을 당시 교황님한테 주교 임명을 받으면, 주교는 임명장을 가지고 해당 교구에 가서 맨 먼저 사무처장을 만나 임명장을 보여주고, 사무처장이 그 임명장이 진본인지 아닌지를 조사하여 발표한 뒤에야 임명된 주교는 자기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사무처장 역할의 중요성과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충고를 해주셨다. 솔직히 교구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무처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사무처장은 무엇을 하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 직무를 맡게 되면서 하나씩 알게 되었지,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몇 박스의 서류들만 사무처와 관련된 것이라고 받았다. 업무지침서도 없고 인수인계서도 없었다. 그러니 내 경험으로 봤을 때, 본당사목만 열심히 한 신부들이 교회행정이 무엇이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계획의 수립과 집행

 

서품식 준비가 한창인 어느 날 주교님께서 부르셔서 갔더니 새 신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특히 전례에 대한 부분과 교구장 명의로 발송된 공문 중에 사제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 있는데 그에 대한 내용들을 교육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러고서 우연히 “교회법전”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접했다.

 

“사제들은 개별법의 규정에 따라 사제 수품 후 사목 강의 수업에 참석하여야 하고 또한 그 개별법으로 정해진 시기에 그들에게 거룩한 학문과 사목 방법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는 기타의 강습회들과 신학 모임들과 협의회들에도 참석하여야 한다”(교회법 제279조 2항).

 

제주교구에는 몇 가지 규범들은 정해져 있지만 개별법은 없다. 있어서 좋은지 없어서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조문을 읽어보면 개별법이 있어야 하겠고 그때그때 교구장이 지시하기보다는 정례적으로 교육의 장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청원서, 미사예물대장 기록 요령, 지난 몇 년간의 교구장 사목지침의 내용과 방침 등 신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곧 행정에 조직, 관리, 목적사업에 대한 계획 수립 등이 있는데, 이 경우 해야 할 일들은 있는데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경우이다.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기에 마구잡이식의 집행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문서행정의 중요성과 본당신부의 역할

 

성품을 받고 대부분의 신부들은 보좌로 발령을 받는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보좌생활을 1년이나 2년만 하면 본당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적어도 5년은 기다려야 하고 큰 교구에서는 이것도 어림 없는 소리일 것이다. 보좌는 주임신부를 잘 만나야 한다. 신부에 따라서는 행정에 관심이 있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신부들도 부지기수다. 공문 작성 요령, 성사대장 정리, 특히 혼인문서 작성에 대해서 신학교 때 배우기는 했어도 본당신부로 발령받고 난 뒤에야 처음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교적에는 무엇을 기입하고, 병자성사를 주고 난 뒤에는 어떤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지? 대부분은 사무장에게 기록하라고 지시만 하고, 기록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조차도 안 해보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모든 사무는 사무장이나 사무원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신부들이 사무를 보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세례성사를 주었으면 주임신부는 반드시 세례대장을 확인하고 서명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목방문을 나가보면 주임신부의 서명과 도장을 사무장이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출결의서나 수입결의서도 마찬가지다. 사목방문을 준비하면서 한꺼번에 찍다가 종이가 겹쳐서 그냥 넘어가는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지적이 되기도 한다.

 

시골본당의 경우 재정 형편상 사무장을 채용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장을 채용하지 못하면 본당신부 자신이 사무일을 보든지 열심한 신자들에게 몇 가지 업무들을 분배하여 맡기든지 해야 하는데 아예 관심조차 안 두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공문은 팩스로 보낸다. 그러나 본당사무실에 얼씬 거리지도 않으니까 공문을 받지 못하여 모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교구청에서는 이런저런 노력과 준비를 하여 신자들이 많이 와서 교육받기를 원하는데 본당신부가 행정과 사무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 신자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사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 문서의 전달과 처리

 

교황청의 문서들은 대사관을 통하여 주교회의에 전해지고 주교회의에서는 번역을 하여 원본과 번역본을 각 교구에 보낸다. 어쩌다가 교구청 직원 책상에서 며칠을 더 방치하게 되면 각 본당에 전달될 때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다. 그러다보니 교황청에서는 발표한 지가 꽤 되었는데 지역교회에 전달되는 것은 늦어지게 되고, 특히 시행 날짜가 있는 경우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주교님께서 어떤 문서를 찾으라 한다. 그러나 그 문서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다가 비서실에서 그 문서를 찾는 경우가 있다. 물론 비서실이 사무처의 한 부서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공문을 발송하고 접수하고 보관을 하는 곳은 사무처이다. 교구장에게 직접 전달된 문서인 경우, 이 문서를 사무처에 보관하라는 지시가 없으면 비서실에 보관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문서들은 사무처를 경유하고, 어떤 문서들은 주교님께 직접 전달되기도 한다. 물론 주교회의에서는 모든 것을 잘 판단하여 공문을 발송하겠지만, 그리고 주교 개인에게 보내는 문서는 사무처에 보내서도 안 되지만, 사무처의 본 업무가 문서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류하여 보관하는 부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시행 날짜에 관한 것이다. 요즘 우편물은 국내 3일이라 하지만 제주도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어떤 경우에는 발송 날짜가 일주일이 지난 문서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오늘 접수했는데 보고 날짜는 내일이다. 이럴 때는 정말로 짜증난다.

 

어떤 교구에서는 친절하게도 발송되는 모든 공문을 각 교구에 보내주고 어떤 교구는 일체 타교구에 발송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공문양식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주로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문 형태를 따라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오랜 관습과 교황청에서 보내는 공문의 형식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대내용 공문양식이 있고 대외용 특히 관공서에 보내는 공문양식이 다른 경우도 있다. 굳이 공문의 양식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만일 한다면 누가 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어떤 수도회에서는 회원이 종신서원을 받으면 반드시 출신 교구청과 본당에 종신서원 통지서를 보내어 문서고에 있는 세례대장에 서원 사실에 대해 기록해 주기를 청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도회에서는 종신서원 통지서를 보내지 않는다. “세례대장에는 견진뿐 아니라 혼인, 입양, 성품의 수령, 수도회에서 발원한 종신 선서 및 소속예법의 변경으로 인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교회법적 신분에 속하는 것들도 기입되어야 한다.”(교회법 제535조 2항)는 교회법에 따르면 종신서원에 대해서 기록을 해야 하지만, 통지서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수도회가 어느 지역으로 진출하려면 해당 지역의 교구장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계약서의 표본은 수도회장상연합회와 주교회의 쌍방에서 합의한 양식이 있다. 그럼에도 어떤 수도회에서는 이 양식을 쓰지 않고 그 수도회에서 만든 양식으로 계약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어떤 교구에서는 받아주는데 왜 그러느냐고 해버리면 참 속상하다.

 

 

사제 서품대장 문제

 

교구청의 업무가 불어나면서 각 교구마다 성소국이 생겼다. 중고등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모아 피정도 하고, 여러 번의 모임을 가져 성소의 길을 제시하면서 관찰하기도 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도와주기도 한다. 입학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잘 챙겨서 신학교에 보내기도 하여 사무처 일의 일부를 떠맡아 하는 셈이 되었다. 독서직과 시종직에 필요한 서류들을 신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러나 부제품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부제품을 받으면 서품대장(성품대장)에 기록을 해야 한다. 부제품을 받기 전까지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서품대장에 기록을 못하게 되어있고, 부제품을 받는 동시에 같이 기록하게 되어있다. 세례 및 교적본당에 서품통지서도 보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사무처장이 확인하고 서품대장에 서명을 하게 되어있다.

 

신학교에서는 부제품과 사제품에 관련된 서류들을 사무처가 아닌 성소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성소국에서 모든 서류를 잘 정리하여 사무처로 넘겨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수품자에 해당되는 서류를 사무처로 이관해 달라고 해야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성소국 담당 신부가 다른 일을 겸하고 있으면 더 그렇다. 수품자 개인마다 폴더를 만들어 서류를 정리하고 그 정리된 서류를 문서고에 비치하게 되는데 과거의 폴더들을 들춰보니 미비된 서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신학교에서는 적어도 서품관련 서류들은 사무처로 직접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처장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면 곤란하다. 처음 임명되었을 때는 서품대장(성품대장)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거기에 내가 서명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교황청에 보내는 문서 중에는 ‘Sigillo’라는 표시가 된 문서들이 있다. 주교님께서는 ‘Sigillo’에 찍을 도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스탬프와 고무로 된 도장을 가져갔더니 쇠로 된 것이 없냐고 물으셨다. 없다고 하자 만들라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한글로 ‘압인기’라고 한다. 누르면 눌려진 종이 부위에 문장과 글자가 볼록하게 나타난다. 옛날에는 금가루를 뿌려서 눌렀다고 한다. 그러면 문장과 글자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 서류가 바로 진본인 것이다. 복사본은 서류 한 귀퉁이에 올록볼록한 부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품한 주교는 각 수품자에게 공증된 서품증명서를 주어야 한다. 만일 수품허가서에 따라 자기 소속이 아닌 주교에게 수품된 자는 수품 사실이 문서고에 보관될 특별한 대장에 기재되도록 소속 직권자에게 이 증명서를 제시하여야 한다”(교회법 제1053조 2항).

 

나는 서품증명서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주교님께서 왜 서품증명서를 주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신학교에서 보내온 양식을 참고하여 만들기는 했지만 위의 조문에서 ‘공증된’이라는 단어가 맘에 걸린다. “법률적 효과를 내도록 되어있는 교구청의 기록문서들은 유효 요건으로서 이를 발행하는 직권자와 함께 교구청의 사무처장이나 공증관에 의하여 서명되어야 한다”(교회법 제474조). 이처럼 ‘공증된 서품증명서’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사무처장이 서명만 하면 공증이 되는 것인지, 공증에는 어떤 양식들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문서 관리 문제

 

어떤 서류가 역사적 가치가 있고 어떤 서류를 보관해야 하고, 어떤 서류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할 뿐이다. 내가 제주 중앙본당 보좌로 있을 때 거의 100년에 해당되는 세례대장을 컴퓨터에 입력시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만들게 된 동기는 세례증명서를 요구할 때 라틴어를 모르고 필기체로 쓰인 알파벳 문자 해독이 어려워 세례증명서 하나를 발급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리기 때문이었다. 한글로 전부 번역을 하여 검색할 수 있도록 했고, 대부모명을 치면 대자 대녀를 전부 출력할 수도 있었다. 만일을 위해 가나다 순으로 한 부를 인쇄했다. 몇 년 뒤 컴퓨터를 바꾸면서 데이터베이스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내다버렸다. 내가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른다. 관리 소홀이다. 이제는 그 인쇄된 것마저 너덜너덜해져 가고 있다. 다시 인쇄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마치며

 

지금까지의 글을 요약해 보면 교회행정의 문제점에는 행정 집행자의 자기 직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책임감 결여, 행정절차에 대한 무지, 역사의식의 결여, 형식적인 조직관리, 조직을 운영하는 업무지침 등의 부재 등을 볼 수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교회행정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데 있다. 행동 면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는 것 같지만, 정보 수집을 위한 기록과 평가, 분석, 새로운 이론과 프로그램의 개발 등은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경향잡지, 2009년 12월호, 윤성남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제주교구 사무처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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