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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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용서 - 만인이 만인을 욕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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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953

[행복을 찾아서 – 용서] 만인이 만인을 욕하는 사회

 

 

모두가 모두를 욕하고 비난한다. 크고 작은 집단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너는 틀렸다고 저주를 퍼붓는 세상이다. 점잖은 사람도 키보드만 잡으면 날 선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작은 잘못은 큰 잘못이 되고, 순간의 실수는 본디 글러 먹은 본성으로 비화한다. 세상에는 착한 나, 선한 우리 편과 나쁜 놈, 악한 너희 편만 있는 것 같다.

 

정말 삶이란 선과 악으로 나뉜 두 종류의 사람 또는 집단이 싸우는 거대한 아마겟돈(하르마겟돈; 묵시 16,16)일까? 아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은 모두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다만 그 옳음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악한 것인 줄 예상하면서 일을 벌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도소에서 영화 ‘어벤저스’를 보여 주면, 죄수들은 악한 무리에 감정 이입을 할까? 그럴 리 없다.

 

 

옳고 그름에 관한 입장

 

터무니없이 주장하면서도 뻔뻔하게 우기는 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까지 강퍅하지 않다. 잠깐 우기다가도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네.’라고 자성하고 금세 주장을 꺾는다. 그런데도 거친 갈등과 충돌이 생기는 것은 바로 각자가 가진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옳고 그름은 냉정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바로 정(情)이다. 우리의 도덕관념은 기본적으로 감정에 좌우된다. 사리에 맞게 주장하더라도 그 과정이 냉정하면 ‘저런 냉혈한!’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인간이다. 법에도 규정에도 모두 ‘정’이 있다.

 

인류는 네 가지 기본적인 정을 갖고 있다. 첫째, 가족과 친족에 대한 돌봄이다.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나 자녀를 돌보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을 보면 우리는 공분한다. 어떻게 가족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 타인에 대한 동정이다. 불쌍하고 어려운 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동냥은 못 하더라도 쪽박은 깨지 않는 마음이다. 셋째, 호혜성이다. 받았으면 갚아야 하고, 주었으면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고받음이 공평하지 않으면 우리는 곧 분개하고 화를 낸다. 넷째, 사기꾼 처벌이다. 거짓말이나 협잡꾼을 미워하는 이유다.

 

기준은 명확하다. 이것만 잘 지키면 크게 문젯거리가 될 일도, 타인에게 원한을 살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옳음의 우선순위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치료제는 부족하다.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수 없다. 의사는 감염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치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감염된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면 약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자녀를 돌보는 것도, 환자를 공정하게 대하는 것도 모두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충돌하면 어떤 가치에 손을 들어 주어야 할까? 진료소에 이름을 올린 순서대로 치료한다면, 딸은 곧 죽는다. 그렇지만 딸에게 약을 주면, 누군가가 대신 죽을 것이다. 그도 한 집안의 귀한 자식일 것이다.

 

당연히 순서대로 약을 주는 것이 옳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재산을 팔아 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가?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을 주지 않고, 불우 이웃 돕기에 희사할 수 있는가? 반대로 딸에게 약을 주는 것이 옳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당신의 자녀, 당신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직장보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어떤 결정도 불완전하다.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고, 누군가에게 욕먹을 일이 생긴다. 인간 세상에 무조건 옳고 무조건 바람직한 일은 아주 드물다. 다만 자신의 ‘옳은’ 기준에 따라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피할 도리는 없다. 숙명이다.

 

 

도덕의 여섯 가지 기준

 

사람들이 가진 옳고 그름의 기준은 각각 다르다. 대략 여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돌봄, 둘째 공정, 셋째 충성, 넷째 권위, 다섯째 정결, 여섯째 자유다.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우선순위는 다르다. 당신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돌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의사가 딸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서대로 치료할 것을 요구한다. 충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여긴다. 세상에 더 필요한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은 법과 규정을 따르라고 한다. 주민 투표도 좋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의사의 개인적 자유 의지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정답은 없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뿐이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소홀히 한 채 응급실에서 토막 잠을 청하는 의사를, 주말도 없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을, 평생 외롭게 철책을 지키는 군인을 칭찬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땀 흘려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의 가치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미움과 원한의 편협함

 

절대 잊을 수 없는 원한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러기를 수십 년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나에게 저지른 일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원한은 원한으로 굳어지고, 평생의 고통으로 남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입은 상처와 비슷한 사건을 볼 때마다, 그 고통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댓글 창은 저주로 가득하고, 청와대 청원은 분노로 타오른다. 사형을 요구하는 글에 수십만 개의 ‘동의합니다.’가 달리고, 추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수만 명이 군집한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집단적으로 뭉치고 격화되어 거대한 분노의 장으로 변한다.

 

한쪽에서는 딸에게 치료제를 먼저 주었다고 욕한다. 다른 쪽에서는 딸에게 치료제를 주지 않았다고 욕한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 또는 세상에서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했던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 이러한 트라우마(사고 후유 장애)는 손쉽게 투사된다.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하면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욕한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사과하면 꾸며 낸 연기라며 비난한다. 그렇게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어 세상에서 추방하고 돌을 던진다. 이 땅에서 ‘천하의 죽일 놈’으로 비난받는 이의 대부분은 이런 가치 충돌의 희생양이다.

 

 

사회적 용서

 

용서를 위해서는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일률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용서할 만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일임에도 용서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던 깊은 상처를, 유령처럼 굳어진 오랜 기억을 내보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들 힘든 시기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자신에게 잘못한 이가 그 모든 것을 배상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빌 때, 짐짓 너그러운 태도로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며 용서해 주는 것을 누가 못하겠는가? 상대와는 상관없이, 세상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내리는 위대한 내적 수용의 과정이자, 자기 치유의 과정이 바로 용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2) 말이다.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무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8월호, 글 박한선 ·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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