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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10: 안혜택 수녀의 매괴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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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03 ㅣ No.612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0) 안혜택 수녀의 ‘매괴의 성모’


토속적이고 수수한 성모 모습, 우리네 어머니 닮아

 

 

- 안혜택 수녀의 ‘매괴의 성모’. 간결한 필선으로 소박하게 표현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한국의 평범한 어머니 모습을 담고 있다. 서울대학교미술관 제공.

 

 

원작의 실물 확인할 수 없어

 

지난 호까지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중 원작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했다. 김정환의 ‘삼왕’은 함께 출품한 ‘성모영보’와 같이 거론되며 예외적으로 흑백사진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남아 있는 박득순의 ‘노 주교상’을 포함한 작품 6점은 실물을 촬영한 컬러 이미지와 함께 작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글부터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조소과 1회 입학생인 성낙인이 촬영했던 흑백사진 이미지만으로 출품작들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작품의 재료와 색채, 질감, 크기, 표현 양식 등을 상세히 파악하고 서술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동시대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주요 특징들을 유추해보고 비록 흑백이지만 사진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부 사항들을 꼼꼼히 관찰하며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나가고자 한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 자료가 남아 있기에 6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도 전람회 출품작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이제부터 진정한 숨은 성미술 보물찾기에 함께 나설 시간이 아닐까 한다. 고인이 되셨지만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사진을 촬영해 남겨준 성낙인 선생과 출품작들을 소개할 수 있도록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서울대학교 미술관 측에 깊이 감사드린다.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출품작 중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안혜택(알렉산드라, 1914~2007) 수녀의 ‘매괴(玫瑰)의 성모’다. 안 수녀는 남용우 작가와 함께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했던 여성 작가 2명 중 한 명이고 출품 작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수도자다. 필자의 편견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처음 작가 목록을 접했을 때 이름만 보고는 남용우, 안혜택 두 작가 모두 여성 작가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남성 작가 일색이던 출품 작가 가운데 이 두 여성 작가의 존재는 참으로 크게 와 닿았다.

 

안혜택 수녀는 1914년 경기도 왕림에서 출생해 1937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했다. 수녀회에 입회하기 전에는 장호원의 매괴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바 있는데 남용우 작가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었다고 하니 참으로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안 수녀는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 동양화를 연구하고 1950년에 졸업했다. 한국 첫 수도회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한국인으로 첫 수련장을 했던 그는 계성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역임하면서 수녀원 내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는 주로 화조화를 그렸는데 장미를 즐겨 소재로 삼았다.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매괴의 성모’는 한복 차림에 동정성을 상징하는 하얀 베일을 드리우고 5단 묵주를 오른쪽 손목에 걸어 길게 늘어뜨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고 있다. 부드럽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성모의 모습에서 고요함과 함께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매괴는 아름다운 구슬을 지칭하며 장미 꽃다발을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의 중국식 한자 표기로 묵주를 의미한다.

 

 

한복 입은 성모, 성미술 토착화 드러내 

 

작품 속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무염시태, 無染始胎)의 도상인 12개의 별이 빛나는 후광, 초승달을 연상시키는 작품 하단의 음영과 함께 표현됐다. 이와 같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도상은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반포 100주년을 기념한 1954년 성모성년을 기념하는 전시의 성격에 부합하고 있다.

 

비록 흑백 이미지이기는 하나 작품 속 성모는 흰색 저고리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푸른색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장 없는 간결한 필선으로 그려진 둥그스름한 얼굴과 베일 뒤로 살짝 드러난 쪽 찐 머리, 별다른 장식이나 꾸밈이 없이 소박하게 표현된 성모의 모습은 한국의 평범한 어머니 모습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이 작품도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폭 화조화같이 단순하게 표현된 배경에 그려진 꽃가지는 안혜택 수녀가 즐겨 다루었던 소재인 장미이다. 장미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안 수녀가 소속돼 있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제작한 제의의 자수 문양에도 즐겨 사용되던 모티프이기도 하다.

 

이처럼 당시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복 차림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 성인들의 표현은 토착화된 성화의 표현으로서 성미술 전람회의 의의와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안 수녀는 대학 재학 시절에도 수도자로서 다른 학생들의 신앙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일례로 지난 글에서 소개한 조각가 김세중도 재학시절 안 수녀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녀 화가인 안 수녀는 이렇게 예술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영성과 신앙을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안혜택 수녀의 작품으로는 주로 화조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매괴의 성모’는 그의 인물화 풍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이 어떤 규모로 어떠한 재료와 표현기법으로 그려졌는지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나 증언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 속 작품의 요모조모를 살피다 보니 원작의 모습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이제 작품의 모습을 알았으니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을 계기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원작품을 함께 찾아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3월 3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 교수)]

 

제보를 기다립니다

 

※ 가톨릭평화신문과 정수경 교수는 숨은 성미술 보물찾기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의 소재나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 나서는 진정한 성미술 보물찾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보 문의 : 02-2270-2433 가톨릭평화신문 신문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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