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강론자료

2018-05-22.....연중 제7주간 화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5-21 ㅣ No.2222

연중 제7주간 화요일 - 짝수 해

야고보 4,1-10               마르코 9,30-37

2018. 5. 22. 이태원. 석가탄신일. 06시미사.

주제 : 삶을 바라보는 태도

사람의 삶을 싸움이라고, 싸움의 연속이라고 해석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말하는 이론을 내가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누군가가 특별한 판단을 했다는 것은 적어도 몇몇의 사람들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근거는 될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싸움에서 해석하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것은 이기겠다는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일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 어떤 해석방법과 자세를 선택하겠습니까?

 

오늘 야고보서간은 사람의 삶을 욕정 다시 말해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에서 해석하는 내용이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예고를 통하여 죽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내용입니다. 듣는 내용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우리가 싫다고 거부하면, 우리의 삶에서 그런 일이 사라질까요?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의 삶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죽음을 생각할 이유는 없겠지만,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려면, 그에 상대적인 의미가 있는 죽음을 생각할 때만 본래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는 철학이론도 있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사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모른다고 하면서 살 때는 목표를 제대로 설정할 수 없으며 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결국 이 소리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조절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생기는 삶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은 없어도 되는 대상이고, 있으면 골치가 아픈 존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을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 적용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만들겠습니까?

 



1,23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