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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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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1 ㅣ No.261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9)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상)


지구 반바퀴 돌아 주교좌성당 복음의 빛으로

 

 

-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1898.

 

 

19세기 유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영국 라파엘 전파(1848년 시작한 예술운동)의 등장과 아르누보 양식의 대두, 그리고 비올레 르 뒤크(Viollet le Duc, 1814~1879)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던 프랑스 고딕 성당의 보수 작업을 통해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중세 교회 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워크숍들을 중심으로 중세에 사용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고 이를 재현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워크숍에는 건축가, 중세학자, 화학자, 유리연구가들이 함께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포함한 중세 교회 건축의 보수 계획을 세우고 서로 협력했다. 184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의 르망대성당, 부르주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괄목할만한 기술적 진보를 이끌었고, 유리 생산에 있어서도 얇은 색유리 층을 포함한 플래시드글라스(flashed glass)와 사각 판형의 색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분업화로 예술적 조화 · 세심함 부족

 

프랑스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은 19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산업화, 대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형화된 공방에서 대량 생산되는 스테인드글라스들이 교회 곳곳에 설치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업화된 과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렇게 대량 생산으로 제작되다 보니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예술적인 조화를 세심하게 고려하기 어려웠으므로 상대적으로 작품의 예술적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주교좌 성당인 서울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프랑스를 통해 직접 수용됐다.

 

 

명동성당 유리화 제작 비용은 어디서

 

-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서명, 1898.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제작, 설치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에 ‘GESTA 형제들’(GESTA Frres)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어 여러 가지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뮈텔 주교 일기를 살펴보면 명동주교좌성당 건립 당시 스테인드글라스에 관한 몇몇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제작처와 제작 비용 등에 대한 설명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봐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프랑스에서 들여오는 과정이나 그 비용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의문점이기는 하다.

 

 

유리화 도입에 관한 주장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유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1896년 명동대성당 건립 시 토지 문제로 일이 어려워지자 뮈텔 주교는 베네딕토 성인에게 기도하며 만일 일이 잘 해결되어 성당이 건립되면 성 베네딕토의 제단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였고, 성당이 무사히 완공되자 성인의 제단을 성당 오른쪽에 마련하고 베네딕토 성인상을 모시게 되었다. 이에 성 베네딕도회와의 연관성과 형제들이 ‘수사들’을 뜻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프랑스 성 베네딕도회의 수사들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그리고 프랑스 투르(Tours) 혹은 툴루즈(Toulouse)에서 들여왔다는 주장도 있다.

 

-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서명, 1902.

 

 

대구 계산성당 유리화와 유사점

 

그런데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를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찾을 수 있다. 역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대구 계산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서명이 남아 있는데, 명동대성당의 서명과 같이 ‘Gesta’가 등장한다. 다만 GESTA가 모두 대문자로 표기된 명동대성당의 그것과 달리, 첫 글자 외에는 소문자로 표현되었다는 점, 그리고 Henri Gesta fils Toulouse, France라는 좀 더 긴 서명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명동대성당에서와는 달리 프랑스 툴루즈라는 보다 정확한 지명을 확인하게 되어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출처를 밝히는 실마리를 찾는 데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12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0)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하)

 

나뭇잎 하나 꽃 한송이에 새겨진 신앙의 의미

 

 

-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탄과 삼왕 경배.

 

 

VIDIUS ENIM STELLAM EJUS IN ORIENTE VENIMUS ADORARE EUM(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 2,2).

 

EUNTES DOCETE OMNES GENTES BATIZANTES EOS(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라 - 마태 28,19).

 

위의 문장은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트렌셉트(transept) 스테인드글라스 하단에 쓰여 있는 라틴어 성경 구절이다. 

 

명동대성당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의 대표적인 성당이지만 그곳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스테인드글라스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한 성당에서 100컷 이상의 많은 사진을 촬영하곤 한다. 큰 그림, 작은 그림, 아주 자세한 디테일까지 두 다리를 삼각대 삼아 촬영하고 컴퓨터 모니터로 관찰해 가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서명이나 문구, 독특한 문양 등을 발견하게 된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구상과 추상적 표현이 함께 이루어져 있다. 앱스 쪽에 다섯 개의 긴 창에 표현된 ‘로사리오 십오 현의도’와  트렌셉트 양쪽 창의 ‘성탄과 삼왕 경배’,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는 프랑스에서 작품이 수용된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양식대로 인물과 풍경이 묘사된 구상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신자석 측창들(아케이드, 클리어스토리의 창)을 비롯한 나머지 창들은 포도 잎, 떡갈나무 잎, 백합 등을 모티프로 한 간결한 구성의 그리자유(회색계통으로만 그리는 회화기법, grisaille) 기법으로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티프인 포도나무 잎은 떡갈나무, 단풍나무 잎 등과 함께 중세 그리자유 창에서 즐겨 사용되던 나뭇잎 문양이다. 이러한 나뭇잎 문양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는 포도나무 잎과 단풍나무 잎 등이 즐겨 사용됐다. 이는 장식 역할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특히 포도는 성경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된 비유로 하느님과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이러한 포도 잎이 신자들의 시선이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아케이드 창의 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인간과 하느님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일한 그리자유 창이지만 성당 상부 클리어스토리의 창들은 도식화된 백합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백합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가시관 한가운데의 백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클리어스토리 스테인드글라스의 백합 문양은 명동대성당의 수호성인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 문양을 아케이드보다 높은 클리어스토리에 둔 것은 ‘천상의 모후’로서의 성모님의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 꽃잎으로 나뉜 창미창. 물고기 형상을 한 포도 잎이 묘사되어 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중세의 거대한 장미창은 아니지만 작은 장미창들이 놓여 있다. 모두 8개의 꽃잎으로 나뉜 장미창에는 물고기 형상을 한 포도 잎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상징에서 숫자 8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8일째 되는 날 무덤에서 부활했으므로 ‘부활’을 상징하는 수이고, 물고기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 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명동대성당의 장미창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분들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로운 시선으로 대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제작자 서명은 어느 위치에 몇 개가 남아 있을까? 장미창은 총 몇 개이며 글 서두에 언급했던 라틴어 성경 구절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떡갈나무 잎과 포도 잎, 백합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표현되었는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창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나뭇잎, 꽃 한 송이의 그리스도교적 상징과 의미에 대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19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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