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5-1127.....연중 제3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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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1-26 ㅣ No.1922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홀수 해

다니 7,2-14                 루카 21,29-33

2015. 11. 27. 이태원

주제 : 심판의 모습

세상일에 심판(審判)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건을 심리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라고 그 뜻을 규정하는 낱말인데, 세상을 마치는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하시는 일에도 같은 용어를 쓸 것입니다. 심판을 반길 사람이 있을까요?

 

낱말의 뜻을 세상에서 우리가 알아듣는 일처럼 규정한다면, 반길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내게 다가올 심판의 내용을 먼저 알아야한다는 조건이 있겠지만,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내게 복이 온다는 보장이 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내게 도달할 심판의 결과를 모른다거나 예상할 수 없을 때, 그 상황은 심각해질 것입니다. 반길 수 없다는 얘기겠지요?

 

오늘 다니엘예언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에 있을 상황을 상상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기에 제가 상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실제로 이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일을 그렇게 사용합니다만, 사람이 세상에 살면 얼마나 오래 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100년 전후인 짧은 시간(!)에 체험하지 않는 일이라서 모르는 일이라거나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오만일 것입니다.

 

다니엘예언자도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 이들에게 다가올 영광이 어떤 것인지는 표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글자로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일까요?

 

두려워하거나 반기는 일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낫겠습니까? 당연히 반기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주신 축복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은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하는 것만큼 실제로 내 삶에 이루어진다면 더 없이 좋을 일입니다.

 

아무리 멋있게 설명을 해도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기쁜 일은 아닙니다. 그 일을 맞이하는 자세가 기뻐야 한다고 이론은 말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 일이 가능할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 드러나는 징조들을 보고, 우리가 하느님나라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올 심판의 때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쁜 순간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저희의 삶을 당신 앞에 떳떳이 드러내도 괜찮을 만큼의 삶의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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