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5-1202.....대림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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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2-02 ㅣ No.1926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이사야 25,6-10             마태 15,29-37

2015. 12. 2.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우리는 해마다 대림절이라는 특별한 기간을 지냅니다. 우리가 이 기간을 반복해서 기억한다는 말의 의미는 타성적(惰性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52주간으로 말하는데, 그 기간에 대림절로 기억하는 것은 꽉 찬 4주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 다른 기간 동안 살았던 자세가 대림절이라는 특별한 기간을 맞아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타성적이라는 말을 쓸 것입니다. 이 말은 또한 오늘이 어제와 비슷하고, 내일도 오늘보다 특별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도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타성(惰性)=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

 

복음말씀은 평일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이라면 수차례 들었을 말씀이기에, 완전히 새로운 다른 자세를 말하거나 전혀 새로운 자세로 알아듣기는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러하니, 우리가 지금 지내는 대림절이라는 기간에 비춰 해석할 모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사야예언서는 하느님께서 차려주시는 잔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차려주시는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의 자격은 개인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방적인 초대라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일을 하면, 그분께서 벌이시는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말씀드릴 정답은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말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의 장소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 주변에 머물러 있었던 일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한 자세로 움직인 삶의 결과가 그러한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존재들 가운데서 사람이 뛰어난 존재라고는 해도, 그 사람이 하느님앞에 머물 때의 자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삶의 본보기를 보여야한다는 압력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말을 듣기 싫다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충분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를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옳든 그르든 세상에서 내가 움직이는 행동은 결과를 맺게 돼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벌이시는 잔치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조건이라도 채우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일입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함부로 대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 삶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을 때, 부끄러운 요소는 모두 빼내고, 조금이라도 기꺼운 마음을 남길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잔치에 앉아 있는 즐거움을 더 크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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