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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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잘못된 겸손(바보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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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06 ㅣ No.858

[레지오와 마음읽기] 잘못된 겸손(바보증후군)

 

 

다음 7가지 질문에 나의 대답은 어떠한가?

 

1.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위축된다. 2. 잠들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고 자책한다. 3. 항상 남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한다. 4. 상대방이 나한테 왜 그런 얘기를 했을지 계속 분석한다. 5. 힘든 일이 생기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6. 대화할 때 상대방의 기분을 자주 확인한다. 7. 칭찬을 받으면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질문에서 만약 다섯 개 이상에 ‘그렇다’라고 했다면, 나는 일명 ‘바보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일시적이라도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남 탓을 먼저 하게 된다. 이는 다소 무의식적인 심리작용이어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늘 남 탓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며,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경계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때도 있다. 크든 작든 일이 잘못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책임감일 수도 있고, 서로 남 탓만 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피하려고 선의(善意)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내 탓을 먼저 생각하며 나를 살피는 사람이니, 이런 행위들은 착한 사람이나 성숙한 인격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책임감이나 선의는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즉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반성과 자책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를 ‘바보증후군’이라고 한다. 지나친 반성과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모습이 바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바보증후군’의 특징은 타인에게 혼날 때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해도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부당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하지 못하여 피해가 크다. 또한 공동 업무의 경우에도 그 결과가 좋지 못하면 마치 자신 때문에 일을 망쳤다거나 자신이 맡은 부분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개인의 준비 부족이나 실력, 성향 등이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불합리한 자책으로 괴로워한다.

 

 

‘바보증후군’은 낮은 자존감이 원인

 

또한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건네는 진심 어린 칭찬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처럼 자책이 심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결국 삶이 무거운 짐을 진 여행처럼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낮은 자존감을 주요 원인으로 본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의 줄임말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는 마음이다. 그러니 낮은 자존감이 주는 부정적 영향은 생각보다 커서 상당수의 심리적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S 자매는 재혼 가정에서 새엄마의 또래 자녀들과 비교당하며 아동기를 보냈다. 자연히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눈치를 보게 되었고,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심리학 공부도 하고 영세도 하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그녀의 대모는 그녀의 생일과 축일을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성체조배와 성경 공부 등도 권하면서 신앙을 키워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 속 문제들도 함께 고민해 주며 그녀에게 친엄마같이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제 부족함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저를 사랑해보고자 ‘나 칭찬하기’, ‘감사일기 쓰기’, ‘나를 위해 요리하기’, ‘나에게 선물하기’ 등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제 자존감을 높여주기는 했지만 갈등 상황이 되면 다시 불안과 자책이 몰려와 힘들었어요. 그러다 대모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모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시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같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제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요즘은 대모님을 따라 레지오도 해 보고 싶은 의욕도 생겼습니다.”

 

“그때 내가 ~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가? 그렇다면 나는 우월감에 찬 상태일 수 있다. 그 당시에 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괴로운 감정인 자책은, 나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들은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그분 앞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며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은혜이다.(교본 51쪽 참고)

 

그리고 참된 겸손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교본 51쪽 참고)이니 지나친 자책은 반성도 겸손도 아니다. 그러니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나의 잘못과 남의 잘못을 구별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다음 혹여 나의 잘못이 컸다면 그때는 자책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레지오 활동이 뿌리라면 그 뿌리가 내린 땅이 바로 겸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성경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을 넘어 죄인인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자격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교만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레지오 단원에게 교만은 치명적이다. 활동이 뿌리라면 그 뿌리가 내리고 있는 땅이 바로 겸손이니, 겸손은 레지오 사도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교본 50쪽 참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본에 ‘하느님께서는 겸손이 있는 곳에 은혜를 베푸시며, 겸손이 사라지면 은혜를 모두 거두어 가신다’(50쪽)라고 되어 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라는 말씀처럼 우리들의 활동은 기쁨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며 그 뜨거운 사랑을 전하는 것인 레지오 활동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성모님의 군사가 아닌가! 기도와 활동을 통하여 성모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우리는 마침내 성화의 길을 완주할 수 있으리라!

 

“잘못된 겸손을 일컬어 ‘마귀의 기분을 맞추는 죄’라고 읊지 않았던가.”(교본 188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2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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