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5-1206.....대림 제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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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2-05 ㅣ No.1929

대림 제2주일 (다해)

바룩 5,1-9 필리피 1,4-6.8-11 루카 3,1-6

2015. 12. 6. 이태원. 인권주일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사람의 권리를 생각하는 인권의 날이 가까운 대림시기 제2주일, 인권주일이 되었습니다.

 

신앙과 신앙생활에 더 관심을 갖는 교회공동체에서, 사람의 권리를 말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담아주신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하여 존경하는 태도를 갖자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늘 대림2번째 주일의 독서와 복음은 인간의 권리를 말하는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입장이라고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 전례말씀과 인권의 관련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모두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한 가지를 얘기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다른 부분까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요한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가 선포한 내용이 무엇인지, 복음은 자세하게 전하지는 않습니다만, 요한은 사람들이 삶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는 방법으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다고 루카복음사가는 쓰고 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신앙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살겠다고 약속하고 자기의 삶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면, 그의 삶에 자리를 잡은 원죄도 없앨 수 있게 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의 삶에 달라붙어있던 대죄와 소죄도 모두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세례의 역할이며 효력입니다. 그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하느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베푸실 구원으로 다가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救援)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 구원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돈의 단위에서 ‘10원보다 1원이 적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낮아지며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는 일이라고 루카복음서는 말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구원은 사람들의 삶에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저절로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협조가 없는 저절로는 없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좋게 행동하든, 나쁘게 행동하든 사람이 행동한 결과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 성공이나 실패, 만족이나 불만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신앙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기본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나는 지금 나이가 많으니 내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느님나라를 만들면 거기에서 살고는 싶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지금 건강이 좋지 않으니 내가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하느님나라를 만들면 나는 거기에 가서 살지 뭐라고 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편할 대로 생각하고, 편할 대로 행동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겠지만, 사람의 생각과 다가오는 현실은 다른 법입니다. 좋고 훌륭한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거나 내 삶에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룩예언서에 나온, 예루살렘이 처한 힘겨운 현실은 실제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잘못한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이 잘못한 삶의 결과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겠습니까? 이 표현을 잘 생각하면, 201512월이라는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가 드러내는 태도와 삶의 자세에 따라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되겠는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심판하여 우리의 미래에 다가올 힘겨운 현실이 준비되겠는지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현실에 경고를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할 줄 안다면, 심판을 좋아하거나 반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한다면, 경고를 담은 그 말씀이 모습을 달리하여 내게 기쁨을 주는 내용으로 바뀔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다양하게 할 우리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말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현실을 읽는 태도에 따라 행동할 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들 각자의 삶에 행복으로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의도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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