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5-1211.....대림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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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2-10 ㅣ No.1934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이사야 48,17-19               마태오 11,16-19

2015. 12. 11. 이태원

주제 : 내가 아는 하느님(!)

사람에게 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먹고사는 방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을 배경도 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안다고 말하는 방법 외에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더 좋을 일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안다고 하는 것은 신앙에 적용되는 일보다는 세상일에 적용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일에 이러한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신앙의 일에는 어떤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말로하기 좋아서 세상의 일과 신앙의 분야를 구별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 이 문제를 정확하게 구별하기는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싶은 하느님의 모습이 아니라,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 모습은 드러나는 형태나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을 설명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게 올바른 설명이 될까요?

 

이사야예언서의 말씀은 계명에 관한 내용을 담습니다. 계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주 빨리 생각한다면, 사람의 평안한 삶을 하느님이 시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힘든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참으로 다행이지만, 실제로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모세가 하느님의 뜻을 담은 십계명을 받은 이래,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싫어서 요동친 결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가 복음에 나옵니다.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이라는 특별한 분을 만났는데, 그가 우리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 것을 보고 비난하는 소리입니다. 소리로 드러난 것만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고 얼마나 비판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 뜻대로만 살고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두려운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자세를 잘 돌아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겨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구가 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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