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훈화4: 레지오 신심의 개요, 성모님께 대한 단원의 의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8 ㅣ No.108

레지오 마리애 훈화 (4)


2. 레지오 신심의 개요(교본 제5장 1-7항 : 36-45면)
 
1)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교본 37-38면)
2)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교본 38-39면)
3) 원죄 없으신 마리아(교본 39-40면)
4)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교본 40-41면)
5) 레지오의 성모 신심은 레지오 사도직의 뿌리(교본 42-43면)
 
6) 성모님을 알고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일(교본 43-45면)
 
성모 신심을 받아들이는 데에 대개 세 가지 유형의 신자들이 있다. 첫째는 성모 신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신자들이고, 둘째는 성모님을 공경하지만 성모 신심이 약한 신자들이고, 셋째는 성모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성모 신심을 실천하는 신자들이다. 첫째와 둘째 유형의 신자들은 성모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모 신심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영국의 훼이버(F. W. Faber) 신부는 프랑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 책의 서문에서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If Mary were but known!)이란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사실 이 성인의 저서 [참된 신심]에는 사목적인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성인은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을 알려 주어 신앙 생활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목적으로 중요하다고 하였다.
 
프랭크 더프는 성모 마리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음으로써 영혼들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훼이버 신부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사목과 선교에 애를 먹고 있는 사제들을 위해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냉대받지 않으시고 우리의 신앙도 빛나고 영성체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더 거룩해지고 예수님을 더 닮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모 신심은 우리에게 크나큰 변화와 은총을 가져다주고 영혼들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 건설에 놀라운 효력을 나타낸다는 내용이다.
 
성모 신심이 이처럼 놀라운 변화와 효력을 가져온다면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일을 할 사도적 단체가 필요하다. 그 단체가 바로 레지오 마리애이다. 레지오는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성모님은 당신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레지오의 협력에 의존하고 계신다. 레지오의 존재 자체와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성모님을 알리고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것이다.
 
시골의 어느 외딴 공소에 레지오 지단을 하나 설립하였는데 10여 명의 단원 대부분이 연로하였으며 문맹자들도 있었다. 저녁 회합 시간에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그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훈화 시간에 마침 본당에서 방문한 수녀가 그런 태도로 주회를 하려면 차라리 레지오가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 중 한 단원이 대답하기를, 레지오 지단이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되었지만 레지오 덕분에 냉담자가 많이 교회로 돌아왔다고 하더란다. 비록 그 단원들은 무식하고 고단해서 제대로 주회를 치르지 못해도 레지오를 통해 성모님을 모심으로써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가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많은 것들 중에서 하느님께서 성모님의 모습을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데에 레지오 마리애를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사람들에게 성모님을 알리고 성모님을 모셔다 드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들, 외롭고 가난한 이들, 병들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성모님을 모셔다 드리는 단원들이 되어야겠다.


3.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교본 제6장 1-5항:46-69면)
 
1) 성모 신심을 묵상, 실천하고 앙양해야 할 의무(교본 46-49면)
 
성모 신심이란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있어서 탁월한 지위와 역할과 성덕을 지닌 구세주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인 성모님께 자녀다운 애정과 각별한 공경을 드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자세' 라고 하겠다.
 
가톨릭 교회는 성모님과 관련된 대축일과 축일, 기념일과 성월을 통해 성모께 대한 신심을 권장, 앙양하고 있다. 그것들을 여기에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윌 1일)로써 새해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축일(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7월 16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8월 5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9월 8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월21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등이다.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축일(예수 성탄 다음 주일)도 성모 신심과 관련이 있다. 특히 5월 '성모 성월'과 10월 '묵주기도 성월' 그리고 매월 '첫토요일 성모 신심'을 통해 교회에서는 성모께 대한 각별한 신심을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어서인지 성모 신심이 강하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는 두드러진 성모 신심을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께 드리는 신심과 성모님을 닮으려는 노력으로부터 그 생명력을 얻고 있기"(교본 494면) 때문이다. 그래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실천함으로써 성모 신심을 드높여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이 의무는 본질적인 것이며, 단원이 지켜야 할 모든 의무 가운데 가장 앞서는 것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차지하시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므로 성모 신심이 없는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레지오의 목표에서 동떨어져 있게 된다. 그러나 굳건한 성모 신심으로 성모님과 일치하게 되면 놀라운 개인 성화의 은총을 얻게 되며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모든 신심 행위나 활동 중에 성모님께서 자신의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오로지 성모님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모습과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몸이 공기를 마시듯 내 영혼은 성모님을 마신다."(참된 신심, 217항)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영혼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성모님의 영혼 속에 깊이 깃든 레지오 단원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 사업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힘써야 하며 미사, 영성체, 묵주기도 등의 신심 행위를 할 때에도 성모님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성모 신심을 드높여야 한다.
 
2)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할 의무(교본 49-55면)
 
겸손이란 자신의 처지를 알아 스스로 높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면서 남을 존중하고 모든 것이 하느님 덕분이라고 여기는 자세이다. 곧 하느님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자신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레지오 조직에서는 겸손이 독특한 역할을 한다. 단원들은 대인 접촉 활동을 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활동 대상자들에게 부드럽고 소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겸손이야말로 효과 있는 활동의 요람이며 도구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악의 뿌리이다. 천사도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던 것이다. 레지오 단원에게 악마가 접근하는 방법은 먼저 단원의 귀부터 즐겁게 만든다. 곧 사도직 활동을 할 때 찬사와 칭찬을 받게 한다. 그리고 칭찬과 찬사에 집착하도록 단원을 유인해서 서서히 교만해지도록 한다. 일단 단원이 교만하게 되면 악마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면 떨어지고 낮추면 안전하다. 언젠가 미국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신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귀중한 골동품을 남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진열장 위에 두고 신통치 않은 물건은 진열장 맨 아래에 두었단다. 지진이 나자 위에 있던 골동품은 모조리 떨어져 박살이 났으나 맨 아래 있던 물건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겸손은 모든 덕의 바탕이다. 주님의 강생도 겸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는 교만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예수님과 성모님은 겸손 때문에 새 아담, 새 하와가 되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셨다. 성자께서 하필이면 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겠는가?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나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 때문이었다.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대답한 마리아의 겸손으로써 강생이 이루어졌고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라는 마니피캇의 예언도 실현되었다.
 
몽포르의 성인이 말한 대로 "성모 마리아는 지극한 겸손으로 항상 세상 사람들 몰래 숨어 살기를 원하셨고 오직 하느님만 자기를 알아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셨다"(참된 신심, 2항).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활동을 할 때 겸손의 표본인 성모님을 닮아야 한다. 레지오 사도직은 성모님을 통하여 움직인다. 성모님이 지닌 겸손의 덕을 갖추지 않고서는 성모님을 닮았다고 할 수 없다. 겸손은 모든 레지오 활동에서 성모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활동이 뿌리라면 그 뿌리가 내린 흙이 겸손이다. 흙은 뿌리를 부드럽게 감싸 주면서 생명을 성장시킨다. 겸손하지 못한 레지오 단원은 흙에서 뽑혀진 뿌리처럼 그가 하는 사도직 활동도 시들어 말라 버릴 것이다. 겸손한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물리치는 싸움을 치러야 한다. 늘 '내 탓'으로 돌리고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삶의 초점을 맞출 때 사도직 활동이 성공할 것이다. 다행히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겸손되이 봉사하는 단원들이 많다. 그들은 성모님을 본받아 자신이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알고 보잘것없는 일도 기꺼이 떠맡으며 남의 멸시와 박해도 견디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은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인 성모님의 겸손을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
 
3) 참된 성모 신심으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교본 55-59면)
 
성모님의 소원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믿게 하고 쉬고 있는 신자들을 회두시켜 온 인류가 구원받는 것이다. 성모 신심을 실천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그러한 소원을 들어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한다. 성모님은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도들의 모후이다.
 
성모님의 생애는 구세주와 온 인류의 어머니로서 구원 사업을 위한 사도직의 생애였다. 그래서 사도직 활동과 성모 신심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레지오 회합에서 사도직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를 하는 것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사도직 활동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부터 구세주의 어머니와 인류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 시작하셨다. 이 역할은 나자렛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온 세계로 확대되어 지금도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이러한 성모님의 역할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성모님과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모님과 일치하려면 성모님의 고귀한 성품과 사명의 온갖 측면을 생활 속에 재현하고 그분의 모성적 역할에 참여해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어머니 구실은 성모님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성모 신심은 영혼들에 대한 봉사와 사도직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 역할이 없는 성모님이 있을 수 없듯이 사도직 활동이 없는 레지오 단원은 있을 수 없다.
 
레지오는 마리아와 사도직이라는 두 원리가 아니라 마리아라는 단일 원리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왜냐하면 마리아라는 원리가 사도직과 신자 생활 전부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이 사도로서 헌신하려면 말로 봉사할 것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으로 봉사해야 한다. 봉사하는 사도직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다. 의사는 그 환자의 환경을 알아보았지만 별로 나쁘지 않았다. 병의 원인은 환자 자신에게 있었다. 의사는 처방전을 주면서 지금부터 보름간 매일 남을 어떻게 기쁘게 해 줄 수 있는지, 남에게 봉사할 만한 일은 없는지 힘써 찾아서 기꺼이 봉사하라고 하였다. 병의 치유를 위해 처방전에 적힌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봉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 환자는 의사의 지시대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힘써 찾아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이 치료되었단다. 그 환자는 사랑을 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렸던 것이다. 이처럼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봉사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도 생기고 정신 건강도 좋아진다.
 
레지오 단원이 사도가 되는 단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봉사 능력을 발휘하여 사도직 활동에 착수하는 것이다. 일단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면 성모님의 어머니 역할을 도와 드리게 된다. 성모님은 어머니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우리가 도와주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참된 성모 신심으로써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하고 성모님께서 마음껏 활용하실 수 있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
사목, 2001년 5월호, 최경용(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4,49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