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113.....연중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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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12 ㅣ No.1957

연중 제1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3,1-10.19-20                  마르코 1,29-39

2016. 1. 13. 이태원

주제 :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때, 듣는다는 것은 내 귀에 들려오는 대로, 그리고 그 소리가 내게 좋은 결과를 맺을 거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할 때 평가하고 판단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귀로 뭔가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나를 비난하는 소리라든가, 남을 욕하는 소리라면 듣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습니다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옳고 좋은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은 옳게 행동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순리에 어긋나는 것은 우리가 굳이 생각하려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이론은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초청이나 부르심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논리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미사에 참여한 우리가 성체를 영하기전에 듣는 소리는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된 이는 복되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내 발로, 미사에 왔는데, 누가 나를 초대했다는 것이냐고, 어제 저녁 미사시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성격의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집에서 젖을 뗀 1살 때부터 대략 10년쯤 살았을 사무엘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도 스승사제 엘리에게 뛰어갑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내가 귀로 듣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렇게 듣는 소리가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제대로 구별할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반대로 하면, 내가 원해서 골라서 듣는 하느님의 소리는 실제로 하느님에게서 온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서글픈 전제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도 됩니다. 이 소리를 좀 더 다른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내가 입을 벌려 하느님을 부르고 찬양하는 소리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하느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소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향한다면서, 순전히 자기의 소리만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누가 제대로 해주겠습니까?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드러난 원칙은 없습니다만, 누구나 그 입장에 있는 사람의 개인적인 소양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표현을 따르면, 내가 하는 말이 올바른 결실을 맺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영광을 입는 것을 즐기지 않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영광보다는 복음을 더 널리 선포하시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개인의 생각을 담기 전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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