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강론자료

2023-06-04.....삼위일체대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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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6-03 ㅣ No.2385

                                      삼위일체대축일 (가해)

탈출기 34,4-6.8-9      2코린토 13,11-13      요한 3,16-18

2023. 6. 4. (주일).

주제 :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뜻은?

우리는 세상에 질문을 많이 합니다. 이때 질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겠지만, 사람이 바라는 대로 답을 얻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질문의 형식을 빌려서 알고 싶다고 말하면, 원하는 만큼 다 알게 되는 일일까요? 내가 묻고 대답을 찾는 대상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대답을 얻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겠지만, 신앙의 내용에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질문하면 바라는 대로 대답을 얻을 가능성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늘은 사람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특성에 관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날이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대축일입니다. 삼위(三位)라는 말의 의미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가지 모습으로 사람에게 드러내셨는데, 그렇게 표현되는 그 삼위가 따로따로 구별되는 셋으로 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이신 하느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느님이 셋이 하나라고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느님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시는데, 그 하느님이 셋이라고 말하든지 아니면 하나라고 말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사람이 사용하는 말의 내용을 정리하면, 하느님은 하나라고 말하면 그 존재나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다고 할 것이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독립적인 판단이 있다고 하겠지만, 하느님을 셋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 관계에서 높거나 낮음이나 주인과 종의 관계를 생각할 것입니다.

 

높고 낮음이나, 두 대상의 주종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면 각각의 존재를 더 쉽게 이해하는 사람의 특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느님께는 사람이 알아들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생각대로 적용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신학의 설명입니다.

 

사람이 알아들을 때는 주종관계나 상하관계를 적용하면 이해하기가 쉽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한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높다는 역할을 하고, 명령하는 대상도 있고, 그 높은 대상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자기 의지는 말할 수 없는 대상이 있따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쉬운 표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세상의 일에 관해서는 잘 안다고 해도, 실제로 하느님의 관계는 유비(類比,=()어떤 사물 상호 간에 대응적으로 존재하는 동등성 또는 동일성.) 의 방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에 관한 신학의 설명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관리하는 분으로 사람들이 알아듣고, 성자이신 하느님은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당신을 희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성령이신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의 명령을 따라서 우리와 함께 세상에 머무시며 세상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도록 돕는 분으로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느님은 이렇게 셋으로 나누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고, 사람의 지혜로 알아듣기 위해서 이렇게 나누어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일 뿐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은 신비이고 계시라는 표현으로 신학에서는 설명합니다. 신비와 계시라는 신학의 용어는 사람의 지능과 지혜로 알아듣거나 해석할 내용은 아니라는 일입니다. 그 존재와 활동에 관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시면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계시의 해석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첫째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사람에게 십계명을 주신 의미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둘째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누리려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바오로사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정당한 심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고, 구원자를 보내셨다고 예수님께서 성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꿀 올바른 자세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해서 하신 일의 본보기를 깨닫고, 우리도 세상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올바른 자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향하여 하신 일처럼 우리도 심판보다는 사랑이 우선인 행동을 하도록 다짐하고 실천할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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