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앙인에게 기도는 - 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03 ㅣ No.861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앙인에게 기도는 - 숨

 

 

신앙인에게 기도는 숨을 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숨이란 모든 생물체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공기를 교환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숨을 쉬는 것, 호흡(呼吸)은 산소를 이용해서 영양소를 분해하여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얼마 전 대기오염이 해마다 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더러운 공기는 조기 사망을 유발하는 위험 요소로 신체활동 부족과 알코올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합니다. 심혈관 계통 환자의 4분의 3이 더러운 공기의 영향으로 사망했고, 오염이 심한 날에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은 느리고 고른 호흡을 합니다. 긴장이 증폭되면 호흡이 빨라지고 불규칙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호흡이 안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도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흔히 사람이 숨을 쉬는 행위로 비유합니다.

 

제가 강의할 때 “여러분들은 언제 열심히 기도하십니까?”라고 자주 질문합니다. 그러면 보통 “힘들고 어려울 때 열심히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의 경우 시험 전날 기도를 아주 열렬히(?)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기도는 하느님께 무언가를 청하는 기도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라고 하면 하느님께 소원을 빌어서 부족함을 채우고 행복을 찾는 기원행위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도에도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가톨릭 교리에서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대화는 보통 인격체가 서로 상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와 목적은 서로의 뜻을 알고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래서 기도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히 기도는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필립 2,5) 우리가 기도할 때 결국 나의 뜻의 구현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 나를 의탁하고 맡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선 기도에도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로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30년 후 추적조사해 목표와 인생 상관관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10%는 인생의 목표를 분명하게 세웠는데, 자신들의 목표에 도달하여 큰 성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70% 정도는 목표가 일관되지 않고 불분명했는데 보통 그러저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20% 정도는 인생을 포기했는데 이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이나 마약 등에 빠져있거나 많은 경우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외적 물질적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연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목표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려면 하느님께 믿음 안에서 맡겨야 합니다. 하느님께 의탁하고 이후에는 의심하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립 4,6) 그리고 기도는 끊임없이 인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과부가 재판관에게 호소하자 귀찮아서 들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 합격을 바라는 사람이 공부는 안 하고 골방에서 기도만 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많은 신자들이 기도에 관해서 질문을 할 때 꼭 듣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습관에 의해 삶이 이루어지는데 기도가 습관이라면 정말 좋은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운동이 습관화된 사람은 운동을 쉬게 되면 몸이 찌뿌둥해져서 신호를 준다고 합니다. 기도도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도를 빼먹거나 건너뛰면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마음이 찜찜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인생의 습관이 되면 그야말로 몸과 뼛속 깊이 믿음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 태아 때부터 믿음의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면 몸과 뼛속 깊이 믿음이 자리 잡을 것

 

정진석 추기경님은 저녁식사 후 항상 홀로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를 바쳤습니다. 언젠가 정 추기경님과 기도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장에 부임하면서 가졌던 기도는 보좌신부 기간이 너무 길어진다기에 성당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느님! 100개 성당을 지어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렸답니다. 내가 “서울의 땅값이 얼마나 비싼데 100개라고요?” 하니 정 추기경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들어주시겠지. 내 능력으로 하면 기도를 왜 하겠어? 내가 못 하니까 하느님께서 해달라고 떼를 쓰는 거지…”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정 추기경님의 재임 기간에 100개가 넘는 성당을 신축했습니다.

 

내가 “청주교구장으로 가셔서는 무슨 기도를 하셨어요?” 여쭤봤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청주에 처음 가니까 대부분 외국인 사제였고 한국 신부님은 열 분도 안 되었어. 그래서 사제회의도 영어로 진행할 정도였어. 그래서 그날부터 기도 제목은 ‘하느님 한국 사제 100명을 만들어주세요’ 였어. 본당 신부님들은 자립하는 데 신경 쓰고, 나는 신학생 양성에 힘을 썼지. 서울대교구로 발령 나기 전 정말 100명을 넘었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국 영화의 전설, 윤정희 데레사 자매님의 마지막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詩)’ 시사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 영화 촬영 장면들을 미리 TV에서 소개했습니다. 그 화면에서 윤정희 자매님이 스텝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메모지에 무엇을 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더 가까이서 메모를 찍었는데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윤정희 자매님을 만났을 때 질문을 했습니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 무언가를 메모지에 막 쓰시던데요. 뭘 그렇게 열심히 쓰셨어요?” 그러자 윤정희 자매님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오래 연기를 했어도 촬영 직전엔 사실 긴장을 많이 해요. 마침 그때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 긴장해서 메모지에 나도 모르게 무엇을 썼는데 나중에 보니 요즘에 사용 안 하는 옛날 천주성교공과*였어요. 어릴 때 배운 기도문을 내 마음 깊은 속에서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뼛속 깊은 신앙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뼛속 깊은 신앙인이 되도록 매일 매 순간 기도해야겠습니다.

 

* 현재 우리에게 「가톨릭기도서」가 있다면, 신앙선조들에게는 「천주성교공과」가 있었다. 「천주성교공과」는 1862년 목판으로 인쇄돼 1969년 새로운 기도서인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기도서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3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