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114.....연중 제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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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14 ㅣ No.1958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4,1-11            마르코 1,40-45

2016. 1. 14.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람의 삶에는 저마다 귀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건강이, 세상의 삶이 힘겨웠던 사람에게는 그 중심에 돈이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세상의 것들이 아닌 입장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것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피조물중에서 한 객체인 사람이 하느님을 모시고 사네, 중요한 대상이네..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그것은 조용한 가운데서 하는 생각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바쁘고 정신이 없게 지냅니다.

 

필리스티아민족과 벌인 전쟁에서 히브리백성은 4천명이 죽는 일을 당합니다. 그러자 자기들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고, 계약궤를 갖고 전쟁에 다시 한번 나서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하느님의 계약궤도 빼앗깁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분명히 내가 하느님을 모셨는데, 사제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시다니...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흔히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면, 하느님은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좋게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이 복음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한 사람을 고쳐주신 다음, 사제를 찾아가서 몸을 보이고 예물을 드릴 것을 명하셨지만, 나병환자였던 그 사람은 그 일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몸미 멀쩡해졌는데, 무엇 때문에 그 다음의 일을 하겠느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에게 다시 나병이 생겼다는 표현은 없습니다만, 사람이 하는 행동이 이러할 때, 그 사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은 어떤 판단을 하실까요? 제가 하느님은 아니니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일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거나 이런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릅니다. 그 숫자가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계신 덕분에 만사형통하리라고 생각했던 히브리인들은 전쟁에서 졌습니다. 나병이 치유된 사람이 동네방네 떠들고 돌아다닌 얘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선포는 제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들의 삶에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던 일들에서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은 결과는 사람에게 손해로 드러납니다.

 

문명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모시고 대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잘해봐야 소용없는 일일까요? 잘하면 뭐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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