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120.....연중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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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20 ㅣ No.1963

 

연중 제2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사무 17,32-33.37.40-51       마르코 3,1-6

2016. 1. 20. 이태원

주제 : 내가 믿고 사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은?

내가 하느님을 믿는다면, 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여러분의 그 말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 말의 뜻을 해석하겠습니까? 같은 말을 들어도 해석하는 자세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려는 모습에 따라 그의 삶은 아주 다른 모양을 가질 것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선과 악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그럴 수도 다른 사람을 선하게 봐야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은 여러 가지 법칙과 규칙으로 싸여있습니다. 세상의 삶이나 법칙과 규칙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라도 어길까 노심초사(勞心焦思,=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그런 대상은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내가 어떻게 하든 그 대상은 나 같은 대상은 관심을 갖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내가 그분의 관심에 들지, 들지 않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로 나를 둘러싼 다른 대상의 판단과 결정이전에, 내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이미 삶의 결과를 만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예언자로서 내 삶을 누군가 판단하기 전에,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볼 줄 안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에는 안타까움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만 말한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살기 편하다고 말해야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상식일텐데 사람은 끊임없이 많을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안식일에 대해서 행동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와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내가 안식일의 율법을 제정한사람의 입장이라면 삶의 정신이 잘 드러나기를 바랄 것이고, 율법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지켜야 할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고발할 생각만 가졌거나 드러나는 모습대로만 법을 대했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함부로 삶의 결과를 판단할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는 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너는 어린아이이니,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는데, 제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라는 2가지 판단이 부딪힐 때 어떤 것이 더 이롭겠습니까?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내 삶에 좋고도 훌륭한 일을 해주실 거라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다윗은 어려서도 전쟁에 나갔고 싸움에 이겼을 것이며, 덩치가 큰 이방인의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하느님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내가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일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일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든든한 보루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이 큰일을 하시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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