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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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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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09 ㅣ No.341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1)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생각하면 「가난」이 자연스럽게 우리 머리에 떠오르듯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언급하게되면 즉시 「기도」가 연상된다. 실로 아빌라의 데레사는 하느님과 합일을 이루는 심오한 기도 체험과 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완벽한 묘사 등으로 학계 뿐 아니라 교도권으로부터 기도신학의 탁월한 권위자로 인정되었고 「교횡의 박사」로 선언된 분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데레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기도생활의 큰 귀감으며 출중한 스승이다. 기도할 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인간 협력의 결실이다. 따라서 「기도의 사람」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서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레사는 어떻게 기도의 사람이 되었을까? 먼저 그녀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와 어머니 베아트리스 사이에서 열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신앙심 깊은 어머니로부터 기도를 배웠고 좋은 성모신심을 물려받았다. 데레사는 당시 귀족 자녀들이 하던 대로 아주 어릴때부터 읽기를 배웠다. 그녀는 형제들과 함께 성인전을 읽었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순교자들에 관한 이야기 중엔 가슴 설레곤 하였다. 데레사가 겨우 일곱살 때 오빠 로드리고와 함께 순교의 열망 때문에 구걸하면서 무어인의 나라를 찾아나선 일이 있었다.

데레사는 나이가 좀 들면서 그녀의 마음에 어렸을 때부터 싹터오던 하느님게 대한 절대적 사랑의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어머니의 취미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사 소설을 읽는데 열중하였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몸단장하기에 바빴고 한편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멋진 기사가 나타나기를 꿈꾸었으며 「아빌라의 기사」라는 제목으로 서설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아버지 알론소는 그녀를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에 맡겨 그 연인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그 수도원에서 근 일년간 살면서 영원한 행복에 대한 소망이 싹트는 것을 느꼈으나 수도생활의 소명을 의식하진 못했다. 그녀는 중병에 걸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 열 여덟 되던 1532년이었다. 그러나 1535년 11월 2일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생활을 선택하여 강생의 갈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이로써 데레사는 그녀의 인생에서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데레사의 기도생활의 발전에 중요 계기를 이루 누것은 숙부로부터 받은 한 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였다. 그 책은 오수나 수사가 쓴 묵상방법론 「초보의 제 삼부」였다. 오수나의 묵상 방법에 따라 열심히 잠심하였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신비체험을 하였다. 하느님은 그녀의 마음 속 깊이 그분의 현존을 느끼게 하시어 그분께 대한 사랑에 그녀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도록 이끌어 주셨다.

데레사는 수도원 응접실에서 소임을 하던 중 그녀의 아름다움과 기지있는 말솜씨에 매료된 귀족 한사람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인간적 욕구 사이에 헤매면서도 수도회 규칙을 충실히 준수하고 있으므로 수도생활의 본질적 조건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녀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세속을 향한 인간적 마음의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러면서 약 일년 동안(1543~1544) 묵상기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내적인 싸움 중에 그녀의 고백 대로 「약」을 찾으면서 많은 영적 서적들을 읽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영적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고백록」을 읽는 순간 나는 내 이야기가 씌여진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이 영예로운 성인에게 나를 도와주십사고 부탁했습니다』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하나의 사건이 그녀의 회심을 마무리짓도록 했다. 그것은 기도실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영혼의 밑바닥부터 뒤흔들리는 듯한 강렬하고 경건한 열정을 느끼면서 한편 격심한 슬픔에 짓눌리면서 회환(悔恨)의 눈물을 금할 길 없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이 두 사건은 데레사를 그녀의 생애의 3단계로 들어서도록 하였다. 그녀의 영적 향상의 출발점은 이 두 사건을 통해 자신의 비참함을 마음속으로부터 자각한 데 있었다. 그녀는 묵상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한편 그녀는 여전히 세속적인 우정을 보존하고 있었기에 고독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었고 또한 그녀가 받은 신비적 은혜에 대한 분별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그녀가 자신의 영적 상태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알기 위해서 충고를 얻으려고 결심했다. 교회의 가르침에 자신의 체험을 비추어보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식별력 있는 사제들을 찾아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상담을 하였다. 일부 사제들은 신비적인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절히 조언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세티나 디에고, 프라다노스 요한 등 예수회 신부들은 그녀 안에 성령이 활동하고 계심을 보증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데레사가 비약하는 데에 장애엿던 마지막 끈은 그녀의 회심으로부터 일년 이상이 지난 1556년 성령강림대축일에 끊기게 되었다. 『오소서 성령이여…』를 읊으면서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라는 프라다노스 신부의 권고에 따라 묵상기도 후 그 시도를 시작하자 그녀는 탈혼 상태에 빠지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최초로 경험한 탈혼이었다. 데레사는 이 체험으로 드디어 마지막 신비적 단계에 들어서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마흔 하나였다 .1559년 6월 29일 그녀는 최초로 그리스도를 보는 지적환시의 은혜를 받았다. 그후 그녀는 거듭 환시를 체험하면서 그리스도를 보았다., 내적으로 더욱 굳세어지고 불타는 듯한 하느님의 사랑에 싸여 이제는 그녀의 남은 평판 같은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1560년 4월 그녀가 신비적 상태에 있을 때 심장의 「상처」라 표현하는 은혜를 받았다. 즉 천사의 화살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체험이 몇 차례나 거듭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영적인 고통이었는데 육체도 어느 정도로 그리고 때로는 심한 정도로 아픔을 느꼈다. 이러한 특별한 표징은 가끔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일어나곤 했는데 박해자들은 그녀가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을 부정적으로 판단하여 그 빌미로 더욱 그녀를 괴롭혓다.

1560년 9월 어느날 데레사가 몇 명의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알칸타라의 베드로 수사가 개혁한 맨발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생활 방법을 모방하여 가르멜의 원시 회칙을 지키는 새로운 수도회를 창립하자는 하나의 제안을 받았는데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그녀가 더 엄격한 생활을 소망해 오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 후 개혁 수도회 창립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데레사는 주변의 많은 반대와 큰 장애들로 인해 곤경을 겪었지만 불굴의 용기로 그것을 극복하여 결국 1567년 2월 가르멜회 총장 잔 밥티스타 로씨 신부로부터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성 요셉 수도원 창립 인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1568년 11월 28일엔 아비랄의 두루엘로에 남자 가르멜회 첫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그후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15년 동안 끊임없는 개혁 활동을 하며 수도원을 세웠는데, 여자 수도원이 열일곱, 남자수도원이 열 다섯이나 되었다.

1572년 11월 16일에 데레사는 「영적 혼인」이라는 은혜를 받게 되는데 이로써 그녀는 신비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섰다. 여태까지 미완성이었던 그녀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이제 완결되어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데레사는 수도회 개혁자인 동시에 탁월한 신비신학자이며 훌륭한 영성가였다. 그것은 그녀가 쓴 저서들 안에 잘 나타나고 있다.

데레사는 1582년 10월 4일 알바 드 도르메스 수도원에서 시편 50편을 읊고 묵상기도 속에 잠기면서 영혼을 하느님께 돌려드렸다. [가톨릭신문, 2000년 4월 30일]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2)


2.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영성사 안에서 획기적이고 현저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영성 생활의 스승이며 가르멜의 개혁자로서 16세기 당시 교회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그러했지만, 오늘도 저서를 통한 그녀의 영성적 가르침은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관심을 끌고 있다. 과연 데레사의 카리스마는 어떠한 것이었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가?

1) 데레사는 가르멜 개혁자로서 원시 회칙의 정신을 따르는 남-녀 맨발 가르멜회를 창설하였다.

데레사는 당시 가르멜 수도회 생활 안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것은 지나치게 인원이 많은 공동체 생활의 한계성(당시 공동체의 구성원이 보통 100여명이있는데 데레사는 개혁하면서 13명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했음) 지참금 액수에 따른 수도자들의 생활 방식의 차별 대우, 수덕 생활에 적합치 못한 회칙의 완화 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개혁 의도의 본질은 무엇보다 묵상기도와 관상기도를 강조한 원시 회칙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었다. 안일한 생활과 참된 묵상기도는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녀는 원시 회칙의 「엄격한 준수」라는 방법을 통해 수도회 전체의 기본이 될 목적인 완전성, 사랑의 완전성을 지향하고자 했다.

데레사는 1582년부터 그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끊임없는 개혁운동을 전개하면서 맨발의 여자 수도원 열 일곱, 남자 수도원 열 다섯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 수도회는 짧은 기간 내에 스페인 전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 퍼져나갔으며 오늘엔 오 대륙 전체에 맨발 가르멜회는 남자 수도원 660여 개, 여자 수도원 780여 개로 헤아려진다.

데레사의 개혁을 굳히기 위해 1580년 가르멜 관구들은 그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기 다른 총장과 회헌을 가지고 뚜렷이 구분되었고 마침내 완전히 두회로 분리되었다. 하나는 종전의 완화 회칙을 취하는 가르멜회(O.C.)였고 다른 하나는 데레사의 개혁의 정신을 따르는 맨발의 가르멜회라 불리는 수도회(O.C.D.)였다.

2) 데레사의 개혁활동은 가르멜 초기의 관상적 이상을 개혁하면서 동시에 사도적 임무를 재인식하도록 하였다.

데레사의 개혁은 단지 원시 회칙 실행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교회의 사명안에 가르멜의 영성을 재정립하는 일이었다. 데레사는 무엇보다 참된 의미의 설립자인 옛사부들의 정신에 고무되어 그들의 생활의 모습을 재현시키려 하였다. 따라서 개혁의 주요 기초를 묵상기도에 두엇으며 청빈도 초기 가르멜 은수자들의 모범을 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은둔생활의 전신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독수적(獨修的) 고독을 추구하는 은둔이 아니고 은둔적 공동생활이었다. 이같이 데레사는 가르멜의 관상적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충실한 후계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언뜻 모순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그것에서 분리될 수 없는 사도적 목적을 동시에 제시하고자 했다. 그녀는 딸들에게 자기성화에 힘쓸 것과 하느님의 봉사자들을 위해,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길 원했는데, 그들의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제들의 선교활동을 지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도적 목적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은 걷잡을 수 없는 내적 필연성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활짝 꽃피는 것이다.

이같이 데레사가 개혁으로 가르멜에 끼친 새로운 영향은 사도적 임무를 명확히 규정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의식 표면에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던 임무를 바로 자각하고 명료화 한 것이다. 그것은 가르멜의 소명이 띠고 있는 사도적 풍요성의 재인식이며 구체적으로 수녀들에게는 관상적 모습으로, 수사들에게 있어서는 관상적인 것과 동시에 활동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3) 데레사는 영성 생활의 스승으로서 교회 안팎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데레사는 내적 회심 이전에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참된 영적 스승으로서 영향을 끼쳤다. 강생 수도원 수녀들, 개혁 가르멜의 딸들, 많은 고해 신부들, 교구 및 수도회 사제들과 주교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내적 생활의 재생의 은혜를 받은 신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개혁의 정신을 일깨운 것도 데레사였다. 데레사는 그에게 하느님과 합일의 가장 높은 상태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과연 십자가의 요한은 그녀를 십비적 영역에서 권위자로 인정하여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조언을 따랐다.

데레사가 끼친 영향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것으로 한정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개혁을 통해 당시 교회와 사회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이단 심문 때 교도권에 대한 성실한 존경과 진리의 추구 안에서 살아있는 건전한 정신의 자유와의 사이에 모순됨 없이 양립성이 가능함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녀는 당시 종교 개혁이 교회의 일치를 위협했고 여러 이설들이 혼란을 초래하여 그녀의 영성의 진가가 의심받기 쉬웠던 상황에서 자신의 저서와 증거적 실생활을 통하여 영혼 안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의 사실과 교회에 대한 자녀로서의 복종의 중요성을 명백히 그러냈고, 또한 하느님과의 합일 위에 기초를 둔 사도직과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세례성사를 받은 이들의 초자연적 연대성을 강조하였다.

신대륙의 정복으로 스페인의 모험가들에 의한 전쟁, 살상, 노획물 등으로 흥분되어있던 사회 상황에 데레사는 하느님의 생명에로 향해져 있는 모든 인간들의 본래 소명을 강조하며 인종, 문화, 종교 여하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지닌 그들의 품위를 존중하도록 촉구하였다.

4) 데레사는 사후에 더욱 지대한 영향을 교회의 영성생활 뿐 아니라 사회의 문학에까지 미쳐왔다.

1583년 「완덕의 길」과 「영적 보고서」가 에보라에서 출판되면서 즉지 거듭 재판되었으며 데레사의 저작 전집이 1588년 살라망카에서 출판된 뒤 계속 판을 거듭했다. 16세기에 13판, 17세기에 125판, 18세기에 243판, 19세기에 269판 그리고 20세기엔 530판을 넘어섰다. 그녀의 저서는 유럽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오늘엔 한국어를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의 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어 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서 데레사가 시성된 후 역대 교황들은 그녀의 가르침에 찬사를 보내면서 저서들을 읽고 그녀의 영성을 본받도록 권유하였다. 그리고 바오로 6세는 1970년 9월 27일 데레사를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신학자들은 신비생활의 여러 문제를 식별하고 해명하기 위하여 데레사의 가르침을 참고했으며 그 권위를 존중하면서 따랐다. 특히 하느님과의 합일에 있어 최고봉에 이른 뛰어난 인식, 관상 기도의 단계에 대한 완벽한 묘사, 관상기도와 사랑의 완전함과의 상호관계 그리고 영혼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삼위일체 신비의 생생한 전망 등을 데레사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또한 17세기의 정적주의와 반 정적주의 논쟁 때에도 학자들은 데레사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반론과 맞섰다.

데레사의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등 많은 교회 학자들에게 뿐 아니라 파스칼, 리술리에 등 사회의 문학인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으며 큰 영향을 미쳤다.

데레사의 딸들 중 그녀의 정신을 성화(聖化)로 가장 잘 구현시킨 이닌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1873~1897)이다.

19세기에 이어 20세기 내내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성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갔다. 그것은 3천년기에 들어서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놀라운 심리학적 통찰과 자기 반성을 통해 내적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며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녀와 친교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관상하며 사랑했는지를 상세히 묘사해 주는 데레사의 저서들은 오늘 심리학자들, 철학자들, 모든 종파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까지 관심있게 읽혀지며 연구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0년 5월 7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3)


3. 데레사의 저서들

데레사는 탁월한 신비 철학자이며 뛰어난 영적 저술가였다.

그녀에게 회심과 기도의 발전에 주요 계기를 주었으며 때론 영적 무기력에서 벗어나도록 결정적 역할을 해준 몇 권의 주요 서적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오수나의 묵상 방법론 「초보의 제삼부」,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성 그레고리오의 「윤리학」, 라레도 베르나르딘의 「시온산의 등정」등이었다.

그러나 데레사의 영성은 그 영성가들의 사상을 종합해 좋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삶 안에서, 특히 기도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언한 것이었다. 물론 영성가들의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자신의 체험을 확인 받긴 했지만 그녀의 가르침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이셨던 것이다.

그녀의 영성을 담고있는 저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무슨 내용을 지녔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요 저서들

▲ 자서전 ‘천주 자비의 글’

데레사는 이 책을 고해 사제이던 톨레도의 가르시아 신부의 명령에 의해서 1562년 저술하였으나 그 후 1565년까지 근 3년간 일부분을 추가하고 보완하여 완성시켰다. 데레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생애 안에서 받은 은총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데, 수도생활 특히 기도생활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영혼의 상태 변화를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즉 그녀의 묵상방법과 주님이 주신 신비로운 은총을 체험하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고해신부에게 순명의자세로 진솔하게 쓰고 있다.

이 책은 뒷날 쓴 다른 저서들만큼 체계적이진 못하지만 그녀의 인간적, 심리적 변화와 영적성숙 과정을 살펴보도록 해준다. 대체로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제1부(1~10장)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회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기록한다.

제2부(11~22장)는 묵상 기도와 신비적 은혜에 관한 논술이다.

제3부(23~31장)는 그녀의 회심에서부터 하느님과 완전한 합일의 은혜에 이르기까지 여정의 기록이다.

제4부(32~40장)에서는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의 창립과 그녀의 생애 전 과정에서 받은 여러 종류의 은총에 관해 기술한다.

▲ ‘완덕의 길’

이 책은 지도 사제 바네즈 신부의 권고로 1566년에 성 요셉 수도회 수녀들을 위해 쓰였다. 그 후 데레사는 모든 가르멜 수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1569년 수정 증보판을 출간했고 1576년에 다시 한 번 개정하였다.

이 책은 영적 스승이며 어머니로서 딸들에게 주는 영적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개혁을 시작에서 끝까지 설명해 주고 있으며 개혁 수도원의 수녀들이 수행해야 할 기도의 방법과 수덕에 관해 혼신을 다 해 가르치고 있다. 데레사의 저서들 중 가장 수덕적인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1부(1~25장)는 수도회 개혁의 이유와 목적, 수덕적 권고 그리고 묵상 기도 생활에 필요한 마음의 자세 등을 설명한다.

제2부(26~42장)는 묵상 기도, 신비적 여러단계, 주님의 기도 해설 등을 다룬다. 데레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관상의 길로 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 ‘창립사’

이것은 데레사의 수도회 창립 활동을 기록한 책으로 1574년 리팔다 신부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몇 차례 중단되었다가 그녀가 죽기 두 달 전 부르고스에서 완성되었다. 수도회의 창설자로서, 수녀원의 장상으로서 데레사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면서 체험했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한 이 책은 그녀의 과감성과 예찌를 돋보이게 하며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데레사는 딸들에게 교육과 양성에 도움되도록 그녀가 겪고 체험한 수많은 여행과 스페인 전역에 걸친 수도원 창립의 파란 만장한 역사 이야기를 영적 권고를 곁들여 기록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트리덴틴 공의회 이후 스페인 교회의 상황, 당시 필립 2세 통치하의 스페인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연관된 인물들을 엿볼 수 있다.

▲ ‘영혼의 성’

그라시안 신부의 명으로 1577년에 쓰인 이 책은 데레사 자신의 내적 체험을 묘사한 신비신학적 걸작으로 묵상 기도와 영성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종합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영혼이 묵상 기도 또는 하느님과의 친밀 관계를 이루는 영적 여정의 단계를 일곱 개의 궁방들로 구분된 성으로 비유되고 있다. 여섯 개의 궁방들은 하느님이 거주하시는 일곱째 궁방을 에워싸고 있다. 일곱째 궁방에 들어가기 앞서 영혼은 외부의 여섯 궁방들을 거쳐가야만 한다. 여기서 궁방들이라는 것은 물리적 장속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생생한 인격적 친교와 일치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점전적 단계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 궁방에 이르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들이 있다. 친교의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의 생생한 현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수덕적 노력,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책밍감 있는 응답으로서 변형 그리고 받은 은총과 실천적 응답이 기도 안에 갇혀 하느님의 이끄심에 끌려감 등이다.

(2) 소품들

▲ ‘영혼의 증언’

이것은 연속성이 없는 68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565년에 이르기까지 데레사가 받은 특수한 은혜와 영적 삶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에 대해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 중 8개장은 데레사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고해 신부들에게 보낸 보고서들이다. 그녀의 생애와 영적 은혜에 대한 연구에 중요하다. 이것은 자서전의 보충적 연장이라 할 수 있다.

▲ ‘하느님 사랑에 관한 생각’

데레사는 이 책의 서론에서 그리스도께 나아가려는 수녀들과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저술했다고 밝힌다. 이것은 영혼이 갈망하는 평화를 주제로 하여 「아가」의 몇 구절을 해설한 것이다. 즉 유일한 참 평화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자필 원고는 남아있지 않고 몇 개의 미완성 사본만이 있다. 이단 심문시 저촉될 것을 염려하여 디에고 신부의 명령에 따라 데레사가 손수 원고를 소각시켰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 대한 영혼의 외침’

데레사가 영성체 후 종이 쪽지에 급히 기록한 것들인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 원의, 고뇌, 희망 등의 진실된 마음의 외침이다. 주님의 성체를 모신 후 영감을 받아 하느님께 바친 화살 기도인 것이다.

▲ ‘서간집’

데레사가 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서간들 중 457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여러 계층에 보낸 서간은 병을 위한 약 처방부터 시작해 부엌의 자질구레한 일, 수도원 개혁에 관한 여러가지 일, 영적 지도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이 서간들은 데레사의 영성과 인품 뿐 아니라 당시 교회와 사회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귀중한 역사자료들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수도회 개혁을 위해 쓴「회헌」, 교회법적 시찰을 수녀들이 영적으로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주의와 조언을 주는 「수도원 시찰법」이 있다. 그리고 수도생활 중 여러 축일의 상황이나 특별한 기회에 데레사의 풍부한 감성을 드러내며 작성한 「시」, 교육 및 묵상자료가 될 수 있는 짧은 격언들을 기록한 「충고와 격언」, 수련자들의 교육을 위해 영적 영역의 주제를 선정하여 논쟁하고 답을 주는 「도전에 대한 응답」,「박해」등의 소품들이 있다. [가톨릭신문, 2000년 5월 21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4)


4. 데레사의 영적 가르침

데레사의 가르침은 그녀가 하느님과 합일해 가는 성숙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겪은 체험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녀는 교회의 권위의 지도에 의존하면서 성서나 성전에 근거하는 객관적 사실에 자신의 체험을 비추어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녀는 체계적 신학 지식이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체험을 능력이 및는 범위에서 심리적 분석과 함께 묘사하여 지도 사제 및 신학자들에게 보고하면서 식별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의 신비적 체험을 예리한 관찰력과 천부적 표현 능력으로 훌륭히 분석해 냈다. 그녀는 초보적 첫 걸음에서부터 신비적 일치의 절정까지 단계들을 저서에서 체계적으로 서술하면서 하느님을 향한 여정의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도권은 여러 차례 예찬하면서 공인하였다. 여기서 그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영적 가르침을 몇 가지 살펴본다.

1) 하느님의 현존의식

유년기부터 수도생활 초기까지 데레사는 하느님을 멀리 계신 분, 하느님 나라에 계시는 절대자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신비적 체험 후 하느님 현존 의식이 생동적이었다. 초보자로서 묵상시도를 시작했을 무렵 그녀는 자기 안에 하느님의 활동을 감지했으며 영적인 큰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더욱 강한 하느님의 개입을 깨달았다. 그분은 바로 곁에서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까지 들어주고 응답해주는 사람처럼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마침내 어느 날 하느님의 현존은 하나의 확신으로 그녀의 영혼에 다가왔다. 하느님의 현존은 마치 그릇과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의 관계와도 같이 느껴졌다.

하느님께 대한 신비적 인식은 그녀를 점진적인 자아인식에로 이끌어갔다. 그녀는 자신안에 무한한「부의궁전」에 비교될 만한 참된 내적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중심, 영혼의 가장 내밀한 장소, 바로 그곳에 하느님께서 머무시고 계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2)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남

하느님의 현존 체험은 삼위일체의 신비적 인식 안에 심화되어갔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시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존의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인성을 제시하신 그리스도와의 생생한 접촉으로 점차 완성되어 갔다. 그녀는 어느 날 묵상기도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곁에 계심을 느꼈다. 그것은 지적인 현시(現示)였다. 이것은 상상적 현시와는 대조적으로 영혼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에 그녀는 주님의 손만을 보았다. 며칠 후엔 그분의 얼굴을 그리고 드디어 인성 전체를 보았다. 상상적 현시와 지적 현시가 후에 번갈아 일어났는데 그녀의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는 후자가 더 많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데레사는 의심할 수 없는 참된 시현(示3現)을 체험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3) 삼위일체의 내주(內主) 체험

그리스도의 현존의식과 체험은 그녀 안에 「한없이 부드러운 사랑」을 더욱 더 성장시키는 결심을 얻도록 했고 동시에 삼위일체의 현위 안으로 데레사를 맞아들이는 은총을 받도록 했다. 그녀는 성부의 품속에 감추어져 있는 성자를 보여주시는 시현을 보았다. 성자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성부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이 진리를 체험으로써 확신하게 되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누린 후 데레사는 성삼위가 은총 상태의 영혼과 함께 계시다는 성서의 말씀을 자신 안에서 체험하였다. 그녀의 영혼이 물을 빨아들인 해면처럼 신성(神性)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듯했다. 그녀는 자신 안에 내재하시는 세 위격의 존재를 자신안에서 누렸다. 성삼위는 단순한 관상의 대상이나 사랑과 인식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그녀 안에서 활동하셨다. 그녀는 체계적 신학지식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체험에 따라 상세히 그리고 놀라우리 만큼 정확하게 그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4) 하느님과의 대화인 묵상기도

묵상기도는 데레사의 정의를 요약하면 「하느님과의 친밀한 우정의 나눔」이다. 그녀의 저서들은 모두 묵상기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자서전」은 그녀가 묵상기도를 통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완덕의 길」은 묵상기도의 훌륭한 교본이다. 「영혼의 성」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한 진보의 단계에 대응시켜 묵상기도의 심도를 묘사한 체험기이다.

데레사의 묵상기도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의 본질적인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믿으을 모으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의 세계에 대해 초연해야 함을 뜻한다. 묵상기도 중엔 보고 듣는 것에 정신이 흩어지지 않게 습관을 들여 고요중에 머무르도록 해야한다. 그녀는 이러한 기도의 자세를 거둠(잠심)이라고 했는데 영혼이 모든 능력을 거두어 들여 자기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같이 있는 것이다. 묵상의 둘째 요소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묵상기도에서 하느님은 현실적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시고 우리가 그분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묵상기도의 중심은 그리스도께 대한 영혼의 시선과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시선이다. 그녀가 말하는 하느님과 신앙인의 「시선」은 실제로 직접적인 개인적 관계, 상호간의 존재의 현실적인 사랑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묵상기도의 세 번째 요소는 하느님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하느님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묵상기도의 형태는 두가지 습인데 그것은 단순한 대화의 모습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꾸밈없이 말씀드리는 것과 복음을 주제로 한 대화이다.

묵상기도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또 생각이 의지를 지배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영적 진보는 생각이나 추리를 많이 하는 데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이 사랑하느냐에 있기 땜누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묵상기도를 「많이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5) 관상과 신비적 현상

데레사에게 묵상기도란 완전함에로 점차 인도해 가는 길이며 특별한 은총을 받은 이들에게는 신비적 일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영혼의 성」에서 데레사는 발전 단계를 일곱 개의 방으로 구분하고 있다. 앞 단계의 궁방들에서 초심자들은 단순한 묵상, 잠심의 기도 상태에서 「고요함」이라는 묵상의 단계로 넘어가며 초자연적 관상에 들어선다. 초자연적 관상이라 자신의 여러 능력을 사용해서 영혼 안에 실제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영혼이 합일하는 체험을 뜻한다. 먼저 하느님과 영혼의 단순한 만남에서부터 시작하여, 제 4,5궁방, 다음에 제 6궁방의 「혼약」그리고 드디어 완전한 신비적 합일인 「영적 결혼」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데레사는 그러한 신비적 은례가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을 잘못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신묘한 은혜는 사랑의 성장과 덕 실천에, 교회를 위한 봉사에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곤경, 고통과의 대결에서 영적으로 힘있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같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다.

신비적 상태의 본질 요소와 거기에서 부수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을 혼동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식별해야 한다. 이상한 현상들이 때론 신경병적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수적 결과란 심리적,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황홀, 상승(上昇), 정신의 비상, 탈신(脫身), 희열 등 탈아(脫我) 현상이다. 데레사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영혼들을 회심케 하려는 목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로 탈아가 일어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신비적 관상의 은혜를 바라는 것은 옳고 좋은 일이나 이상한 은례를 열망하지 않길 권한다. 데레사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가장 확실한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은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더구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를 그분의 손안에 맡깁시다』 [가톨릭신문, 2000년 6월 4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5)


데레사의 기도단계

데레사는 하느님이 보여주신 신비 체험에 따라 기도의 단계를 저서 「영혼의 성」에서 설명한다. 그녀는 영혼을 금강석이나 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궁성에 비유한다. 그 궁성엔 여러 방들이 있는데 그 중 제일 가운데 방에 하느님이 왕으로 좌정하고 계시다. 각자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이 영혼의 성에 들어 갈 수 있으며 기도의 진보에 따라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갈 수 있고 6개의 방을 통과한 후 마침내 가장 중앙에 있는 제 7궁방에 도달하게 된다.

데레사의 체계적인 기도와 완성의 단계의 묘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의 신비가들이 가르쳐온 기도의 성숙과 성성의 상승적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인위적으로 위계질서를 엄밀히 구분할 순 없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데레사는 저서들을 그녀의 시대에 봉쇄수도원의 수녀들을 위해서 상징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며 썼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성소가 각기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든지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완성에 불렸으며 이 완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종 목표로서 최고의 사랑인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데레사는 그것을 상징적 용어로 영적 결혼이라 일컬은 것이다.

제1궁방의 영혼은 은총 지위에서 살지만 아직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착한 열망을 버릴 위험에 있는 기도의 초보 상태에 있다. 그는 아직 세속적인 것에서 이탈하지 못했으므로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오는 유혹에 약하다. 세속적 유혹에서 오는 분심은 영혼의 중심에서 비추이는 빛을 약하게 만든다.

제2궁방에 들어가면 영혼으로 하여금 노력을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무미 건조함과 고난이 닥쳐온다. 사탄의 간계에 대항하기 위해 데레사는 이성, 기억, 믿음 등 영혼의 기능과 힘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주님은 이성의 빛 안에서 영혼에게 빛을 주신다. 명확하고 철저하며 선한 사고는 사탄의 거짓을 쫓아 버린다. 여기서 영혼은 묵상기도를 열심히 해야한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기도의 특성은 추리적 묵상이다. 추리적 기도가 반성적인 기도의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추론이 아니라 사랑으로 끝나야 한다. 묵상기도란 하느님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 하느님과 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며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이다. 지성을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이들에게 데레사는 그리스도께 관해 묵상하고 그분과 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성실한 영혼은 세 번째 궁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궁방에서 그들의 전 생애를 보낸다. 이 궁방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공간이 넓어서 미지근한 영혼부터 용감한 영혼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거처할 수 있다. 사람들이 더 깊이 들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청년(마태 19, 16~26 참조)같이 계명을 지키고 의무를 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귀담아 들을 만큼 마음을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제3궁방에서 영혼은 습득적 잠심기도라 부르는 수덕적 기도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영혼은 일상적인 은총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노력으로 마음을 한 곳에 모은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 기도는 모든 기능이 집중 상태에서 하느님과 결합하는 매우 분명한 현존의식이다.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영혼이 자기 안에 하느님의 현존의식을 기르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려고 습관적으로 노력한다면 이런 유형의 기도는 발전될 수 있다고 데레사는 조언한다. 이 단계는 수덕적 단계에서 신비적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묵상에서 사용된 추리는 이제 단순한 지적 응시와 사랑에 가득 찬 주의력으로 바뀌게 된다.

제4궁방의 영혼은 신비적 기도의 첫 유형인 고요의 기도의 단계에 이른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지성과 하느님과의 친밀한 결합에 있는 주입적 또는 수동적 잠심 기도로서 영혼은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인식한다. 데레사는 기도의 진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고요의 기도는 의지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흠뻑 젖어 최고선으로서의 하느님과 일치하는 기도의 유형이다.

이러한 기도 중에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감겨지고 고요가 그리워지며 감각이나 바깥 사물들에 대한 관심은 약화되어 가는 반면에 영혼은 잃어 버렸던 힘을 되찾게 된다. 기억과 상상은 아직도 자유롭거나 해방된 상태이므로 그것들은 때때로 영혼을 산란케 하려고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데레사는 하느님 앞에서 조용히 잠심해야 하며 자신을 그 사랑의 품속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제5궁방에서 영혼은 일치의 기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 여러 정도의 차이가 있다. 단순 일치 기도에서 영혼의 모든 기능은 하느님 안에 잠심한다. 그리고 영혼이 자기 자신으로 향할 때 자신이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이 자기 안에 계심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다. 데레사가 말하는 일치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서 이것이 그녀가 평생토록 소망했던 일이며 하느님께 간구했던 은총이다.

하느님과 일치에 이르게 되면 고행과 고독에 대한 열망은 강해지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눈에 띌 때 못 견디게 슬퍼지며 혈육, 친구, 재산 등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로워지고 영혼은 아주 큰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두 가지로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일치의 상태에 도달한 이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 자신을 믿지 말고 자신의 영혼을 살펴 이웃 사랑과 겸손, 나날의 의무에 있어서 전진 혹은 퇴보했는지 주의 깊게 성찰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느님이 영혼을 더욱 온전히 지배하게 되어 그것을 당신의 빛과 위로로 넘쳐흐르게 할 때 영혼은 탈혼적 일치의 기도를 체험하는데 이것은 제6궁방의 시작이고 「신비적 약혼」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과 일치하고 싶어하던 데레사는 자신의 갈망과 그 상태를 「약혼」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신비적 약혼」이란 한 영혼이 하느님과 결정적인 일치인 「신비적 결혼」에 도달하기 전에 그분께 대한 갈망과 고독 중에 겪게 되는 다양한 신비적 체험(시현, 말씀, 탈혼 등)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최고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이 신비적이고 수동적인 정화로서 큰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고통과 시련 중에도 영혼이 초자연적 신앙을 견지하면서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신비적 결혼」이라는 행복에의 확신과 징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영혼이 제 7궁방에 들어가면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이 사람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 21)라고 하신 청원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신비적 결혼」또는 「변형일치의 상태」이다. 데레사가 말하는 기도의 최고 단계인 「신비적 결혼」은 신앙으로 믿은 것을 영혼이 온몸으로 깨쳐 「본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제부터 성삼위가 이 차원에 도달한 영혼을 떠나지 않고 그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뚜렷이 의식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의 경지에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혼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되며 앞으로 다시는 아래의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을 떠나자마자 그 크나큰 은총을 잃게 되므로 작은 일에도 하느님을 거스르지 않도록 꾸준히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신비적 결혼의 은총은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형일치 안에서 영혼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고 하느님의 영광만을 찾으며 고독과 고통받기를 열망하고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또한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한 큰 열의를 갖게 된다. 따라서 신비적 관상 기도의 절정은 사도적 열정으로 마무리된다. 데레사는 그것을 「마르타와 마리아가 함께 일하게 된다」고 표현한다. [가톨릭신문, 2000년 6월 11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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